20년을 안고 모이다 20년을 안고 모이다 미숙이는 서울에서, 희영이는 수원에서, 유진이는 안동에서, 미화는 영천에서, 현옥이는 상주에서 내가 사는 문경을 찾아왔다. 모두 20년을 안고 왔다. 세찬 바람이 불던 1월의 어느 토요일 한낮, 미화와 현옥이가 제일 먼저 달려오고, 유진이 그리고 미숙이와 희영이가.. 청우헌수필 2013.02.03
회관의 모둠밥 회관의 모둠밥 “여럿이 먹으이까 얼매나 맛있노!” “하마, 이레 먹으마 반찬이 뭐 필요하노?” 점심때가 되면 마을회관에서는 동네사람들이 모여 모둠밥을 짓는다. 밥을 짓는 사람들은 주로 좀 젊은 할매들이지만, 먹을 때는 동네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와서 함께 먹는다. 남녀노소.. 청우헌수필 2013.01.30
한촌에서 혼자 집보기 한촌에서 혼자 집보기 한 생애를 마감하고 제2막의 삶을 찾아 한촌으로 옮겨온 지도 만 이태가 되어 갑니다. 제가 사는 한촌은 조그만 동네지만 아침에 해가 뜨면 제일 먼저 따스한 볕살이 내려앉는 곳입니다. 이 한촌에서 혼자 집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가 등쌀대거나 성가시게 .. 청우헌수필 2013.01.11
눈 속에서 맞는 새해 눈 속에서 맞는 새해 새해 새 날 첫 아침, 한두 점 흩날리기 시작하던 눈이 날이 밝아오면서 송이가 점점 크고 많아지더니, 마침내는 함박눈이 되어 산야를 휘덮어가고 있었다. 밝아오는 새해를 방 안에 앉아서만 맞이하기는 송구한 일이라며, 두어 이웃과 함께 주지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청우헌수필 2013.01.04
눈길을 거닐며 눈길을 거닐며 눈이 많이도 내렸다. 산에도 들판에도 강둑에도 집들 위에도 모두가 눈이다. 순백의 고요한 세상이다. 눈 덮인 풍경을 두고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고은, ‘눈길’)라 한 시구가 눈앞에 그림이 되어 펼쳐져 있다. 대.. 청우헌수필 2012.12.14
20년 전 20년 전 “선생님. 20년 전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으셨던 의흥중 2학년1반 김희영입니다. 20년 만에 선생님 찾게 되네요. 이제야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어제 같은 시간이 20년이나 될 줄 몰랐어요. 이 반가움을, 이 긴 세월을 다 적기엔…….” 20년 전의 시간들이 내게로 찾아온 것은 참으로 .. 청우헌수필 2012.12.06
가을 보내기 가을 보내기 오늘도 해거름 주지봉을 오른다. 해가 백화산 마루에 얹힐 무렵이면 언제나 오르는 산이다. 낙엽이 발목을 잠기게 하는 숲길을 따라 오른다. 나무들은 노랗고 붉었던 이파리들을 다 내려 앉히고 푸른 하늘이며 하얀 구름자락들을 걸어놓았다. 층계진 가르맛길을 가쁘게 올라.. 청우헌수필 2012.11.30
서로 그립다는 것은 서로 그립다는 것은 -조병화문학관을 찾아서 조병화 시인을 찾아간 것은 낙엽들이 제 자리를 찾아 모두 내려앉고 나무들은 깊은 사색에 잠 겨가고 있던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시인으로 하여 문화마을이 된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양지바른 동산 자락에서 시인은 전시실을 가득 메.. 청우헌수필 2012.11.27
이를 뽑고 나서 이를 뽑고 나서 뽑으려고 벼르던 이를 드디어 뽑았다. 고통이 시원스레 끝난 것을 두고 ‘앓던 이 뽑은 듯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앓고 있는 이를 뽑는 일이란 이토록 시원할 수도 있을진대, 오늘 뽑은 이는 시원치만은 않은 미련을 남겨 놓고 나에게서 떠나갔다. 오른쪽 위어금니가 고.. 청우헌수필 2012.10.17
생일 풍경 생일 풍경 생일이라고 아이들이 왔다. 생일날이 마침 주말이라 아들네 식구는 금요일 밤을 돋우어 달려오고 딸 식구는 생일날 왔는데, 사위는 일요일에도 비상근무가 있다며 못 오고 축하 전화만 했다. 딸이 외손녀 예지를 데리고 오니 제일 좋아 하는 건, 손녀 승윤이다. 생일날 아침에 .. 청우헌수필 201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