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개진 강둑 말개진 강둑 아침 강둑을 걷는다. 날마다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한쪽으로는 강물이 맑게 흐르고, 한쪽으로는 논들이 펼쳐져 있다. 계절마다 다른 물소리며 논들의 풍경을 듣고 보고 걷노라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청량해질 수가 없다. 걷다보면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외고 있던 시들이 흘.. 청우헌수필 2013.10.06
승윤이의 선물 승윤이의 선물 승윤이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내 손녀다. 추석이라고 아비, 어미, 아우와 함께 시골의 할아비, 할미를 찾아왔다. 학동이 된 탓일까. 제법 의젓해졌다. 주말에 가끔씩 와서 놀다 가곤하지만, 배우고 듣보는 것이 달라 그런가, 올 때마다 조금씩 더 커 보인다. 다소곳이 절을 .. 청우헌수필 2013.09.29
사랑 이웃 사랑 이웃 마당 둥근 탁자에 안 씨를 비롯하여 이웃 몇 사람이 둘러앉았다. 아내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에서 돼지고기를 건져내어 썰었다. 술을 따라 함께 잔을 들었다. “이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안 씨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린 안 씨 덕분에 잘 먹네, 하하하” 이 씨.. 청우헌수필 2013.09.18
매미 매미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마을과 논들이 폭염에 주눅이 들어 숨을 죽이고 있는 한여름 대낮, 생기 찬 소리로 살아 있음을 외치고 있는 것은 오직 매미 소리뿐인 것 같다. 매미는 혼자서 외치기도 하고 여럿이서 목소리를 합쳐 외치기도 한다. 하나가 외치면 또 하나가 따라서 외치기도 .. 청우헌수필 2013.09.07
샐비어 샐비어 샐비어 붉게 핀 강둑 자전거 길을 달린다. 푸르고 맑게 흐르는 강물에 반짝이는 윤슬이 꽃빛을 더욱 짙게 한다. 자전거 바퀴 안으로 샐비어의 손길이 감겨든다. 그 붉은 삶이 감겨든다. 어제 천지 모든 것을 짓이길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한바탕 내리치던 우레비가 작달비 되어 퍼.. 청우헌수필 2013.09.01
행복하다 행복하다 산을 오른다. 해거름이면 늘 오르는 산이지만 오를 때마다 새롭다. 나뭇잎의 빛깔이 새롭고, 바람에 일렁이는 가지의 모습이 새롭고, 가랑잎 밟는 소리가 새롭다. 나무들 사이로 피어나는 꽃들이 철마다 날마다 새롭고, 나무들 사이를 날며 혹은 나뭇가지에 앉아 우짖는 새소리.. 청우헌수필 2013.08.18
오르고 달린다 오르고 달린다 오후 4시, 오늘도 자전거를 달려 나간다. 자전거를 달리기 전까지는 그 시각에 매일 산에 올랐다. 한 시간 남짓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집 근처의 조그만 봉우리다. 산을 오르는 걸음이 좋고, 푸른 숲이 좋고, 새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가 좋았다. 건강을 다스리기 위해 .. 청우헌수필 2013.08.10
시로 새기는 한여름 밤의 꿈 詩로 새기는 한여름 밤의 꿈 콘서트가 끝났다. 출연자들은 무대에 모두 올라 손을 잡고 객석을 향하여 절을 한다. 관객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파도치던 갈채의 기억을 남겨두고 일어섰다. 낭송의 열기가 가득 차 있던 무대에서 기념촬영으로 북적대던 관객들과 회원들도 모두 홀을 빠져 .. 청우헌수필 2013.07.28
그리운 능소화 그리운 능소화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피어나고, 뜨거운 햇살이 온갖 것들 위로 제 자리인 양 내려앉았다. 대문간의 능소화가 그리도 오랫동안 다물고 있던 봉오리를 드디어 터뜨리기 시작했다. 다른 집 것은 다들 활짝 피어나는데, 삭혀야 할 것이 무에 그리 많았던지 우리 집 것만 피어.. 청우헌수필 2013.07.07
세월이 흐른 자리 세월이 흐른 자리 언제 움이 틀까 싶었던 뒷집 살구나무는 어느 새 무성해진 잎 속에 아기 주먹만 한 살구를 달고 있다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툭툭 떨어뜨리고 있다. 초봄에 사다 심은 감나무 묘목이 봄이 다 갈 무렵에야 겨우 촉을 내밀더니 지금은 제법 넓적한 잎사귀를 피.. 청우헌수필 2013.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