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서로 그립다는 것은

이청산 2012. 11. 27. 15:33

서로 그립다는 것은
-조병화문학관을 찾아서

 

 조병화 시인을 찾아간 것은 낙엽들이 제 자리를 찾아 모두 내려앉고 나무들은 깊은 사색에 잠

겨가고 있던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시인으로 하여 문화마을이 된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양지바른 동산 자락에서 시인은 전시실을 가득 메운 그의 시들과 함께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인은 베레모에 던힐 파이프를 문 채 말이 없는데, 해설사가 시인으로, 화가로, 스포츠맨으로, 교육자로 살았던 다채로웠던 생애와 사랑과 그리움으로 점철된 그의 시 세계를 들려주고 있었다.

난실길 4-11, 하얀 문설주 위에 해태상이 얹힌 대문을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인이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거나 쉼터로 삼았던 청와헌(聽蛙軒)과 커다랗게 새긴 자와 함께 꿈의 귀향이라는 시를 새긴 시비였다.

청와헌 아래 표지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가니 잔디 마당 한쪽에 시인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학관이 늦가을 맑은 햇살을 받으며 자리 잡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동희 해설사가 오랜만에 만난 지인처럼 반겨 맞았다. 관장은 시인의 자제가 맡고 있지만, 자기가 안성시의 위탁을 받아 상주하면서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고 한다.

두 개의 전시실 중에 제1전시실은 시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기획물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2전시실에는 시인을 추모하는 문인들의 시화와 방명록, 안내 팸플릿을 갖추어 놓았다.

해설사는 고향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를 테마로 하여 내 고향 난실리’, ‘출발이란 시로부터 시작되는, 시인의 생애를 자작시로 엮은 벽면의 시화를 보면서 생애와 문학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생애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시화 아래에는 시인이 평생 펴낸 시집들이며 여러 가지 저작물들, 그리고 여행을 통해 모은 소품들이며 즐겨 썼던 베레모와 파이프, 화가로, 스포츠맨으로 살았던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유품들이며 여러 가지 상훈 자료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었다.

발간 연대순으로 진열되어 있는 시집을 보다가 문득 눈길이 멈추어졌다. 몇 장의 흑백사진으로 장정된 낙엽 빛깔 표지의 제15시집 가을은 남은 거에를 보는 순간, 아련한 향수 같은 느낌이 명치를 스치며 40여 년 전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문학 서클을 함께 하던 한 여학생이 내게 선물로 준 시집이었다. 해외여행을 하며 스케치를 곁들여 기행시를 엮은 시집이었던 것 같다. 그 때 우리는 밤의 이야기를 비롯한 조병화 시인의 시 읽기를 좋아했다. 그 시들이 그 때의 우리들의 정서와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청순했던 모습의 그 여학생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회상에서 돌아왔을 때 해설사는 시인의 어머니와 부인에 대한 사랑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삼취(三娶)를 하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시인은 평소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에 편운제(片雲齋)’라는 산막을 짓고, ‘살은 죽으면 썩는다고 한 때때로 생각나는 당신 말씀을 벽에 새겨놓고 어머니의 사랑을 기렸다고 한다.

살면서 당신에게 사랑이 아니라 눈물이었다면 용서하소서./ 살면서 당신에게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다면 용서하소서./ 살면서 당신에게 그리움이 아니라 미움이었다면 용서 하소서./ 살면서 당신에게 사랑이 아니라 노염이었다면 용서하소서.”<황혼의 노래>라며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고백했다고도 한다. 그 생애의 시편들 어느 하나도 가슴에 와 닿지 않고, 가슴을 두드리지 않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참 놀라운 일이었다. 그 다양하고 역동적인 생애는 물론, 창작시집 53, 선시집 28, 시론집 5, 화집 5, 수필집 37, 번역서 2, 시 이론서 3권 등을 비롯하여 총 160여 권의 저서를 펴내고, 어느 해는 3권의 시집을 잇달아 내기도 했던 그 열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엇이 시인을 그리도 열정적으로 살게 했을까.

그 폭발적인 열정은 바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그리움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나는, 나의 90%는 영혼이고/ 10%는 육체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99%가 영혼이 되고/ 1%가 육체로 되며// 또 머지않아 100%가 영혼으로 0%가 육체로 되려니// 영혼의 100%는 그리움이며/ 그리움의 100%는 당신을 생각하는 그 사랑이다. <지금 나는>

 

100%의 그리움에서 시인의 모든 생애를 점철케 했던 열정이 분출된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가슴속에 들어앉았다.

내가 수백 키로를 달려 시인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도 그 그리움때문인지도 모른다.

쉼 없이 나를 빠져 나가는 세월 속에서 한 생애를 내려놓고 새로운 생애를 시작했다. 바람소리 새소리 삽상한 어느 한촌에 새 삶의 터를 잡아 살면서 세속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게 있었다.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하고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며 사는 일은 멈출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도 그리움의 등짐만은 언제까지나 지고 가리라 했다. 사랑과 그리움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파삭하고 팍팍할 것인가를 느끼고 생각하면서-.

어느 날엔가부터 사랑과 그리움의 시인이 내 속으로 들어왔다. 어느 시낭송회에 출연할 기회에, 이 시인의 서로 그립다는 것은을 별 어려움이 없이 나의 낭송시로 택했다. 낭송했다. 그리고 갈채를 받았다.

즐겨 낭송하는 조병화 시인의 시가 있다고 했더니, 해설사는 2층 세미나실로 안내했다. 세미나실은 마이크 시설을 갖춘 강연장으로 꾸며져 있었고, ‘편운문학상을 받은 문인들의 자취와 함께 시인의 생애를 비춰주는 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느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내용이라 했다. 해설사는 마이크를 주었다.

 

서로 그립다는 것은/ 조병화// 살아 갈수록 당신이 / 나의 그리움이 되듯이 / 나도 그렇게 / 당신의 그리움이 되었으면// 달이 가고 / 해가 가고 세월이 가고/ 당신이 / 내게 따뜻한 그리움이 되듯이 / 나도 당신의 /아늑한 그리움이 되었으면 …….

 

관객이 된 해설사가 박수를 쳤다. 감정이 잘 살아있는 낭송이라 했다. 그의 말대로 그리움의 감정이 잘 살아났다면, 오늘 시인을 찾아온 보람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사는 편운재와 청와헌, 그리고 묘소를 안내해 주었다. 시인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편운재며 집필실이었던 청와헌은 열려 있지 않아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등에 업은 아기를 달래면서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며 고샅 어귀에 눈길을 모으고 있는 편운재 앞의 여인상이 보는 이를 애틋한 마음에 젖게 했다.

친척이 기거하고 있다는 살림집을 지나 묘소로 갔다.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것을 기념하여 , 조국의 하늘이 나의 하늘이로다라 새긴 비석 옆으로 시인과 아내 김준 여사, 그리고 어머니 진종 여사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어머니의 묘소 옆에는 평소 독실했던 어머니의 불심을 기려 자를 크게 새긴 비석과 함께 어머니의 말씀을 시로 새긴 해마다 봄이 되면시비가 서 있다.

늦가을 찬바람도 불지 않았다. 하늘은 맑고 따스한 햇살을 내려 보내고 있었다.

시인의 무덤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조용히 시를 외웠다.

 

……

그리움이

그리움으로 엉겨 꿈이 되어서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 긴 인생이듯

이 인간사 나의 그리움

당신의 그리움 서로 엉겨서

늙을 줄 모르는

달이 되고 해가 되고 쓸쓸해도

쓸쓸하지 않은 세월이 되었으면

 

,

서로 그립다는 것은

(서로 그립다는 것은)

이러한 것을…….

(이러한 것을…….)“

              <서로 그립다는 것은>

 

묘소가 있는 동산을 내려 가랑잎 날리는 원정을 지나 해태상이 얹힌 하얀 문설주의 대문을 나설 때, ‘난실길 4-11’은 또 하나의 그리움이 되어가고 있었다.(201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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