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49

난병 일기(9) -성공의 조건

난병 일기(9)-성공의 조건 오늘 치료는 성공했다. 관장 상태도 적절하고 내장된 소변량도 적정하여 치료가 잘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양성자가 목표 위치에 잘 도달하여 제 에너지를 병소에 집중적으로 발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무슨 어려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듯한 안도감이 몸을 녹게 했다. 어제는 실패했었다. 첫 번째 양성자 치료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해주는 자세대로 꼼짝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다가 잠깐 떠보니 원통형 방의 천장이 두 갈래가 져 서로 엇바뀌며 돌고 있고, 내려다보는 기계는 나를 덮을 듯 내려오다 올라가고 했다. 첫 치료 때 소음으로 들렸던 소리들은 천장이 움직이는 소리였던 것 같다. 다시 눈을 감고 치료가 잘되고 있는 상상에 젖었다. 소리가 멎더니 일어나라 했다. 관장이 ..

청우헌일기 2026.08.16

난병 일기(8)-신경 쓰지 마세요

난병 일기(8)-신경 쓰지 마세요 커다란 원통형의 방문 없는 방이었다. 돌아눕지도 못할 좁다란 치료대가 놓여 있고 천장에서 여러 개의 무슨 렌즈 같은 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네모난 검은색 계기판 같은 게 높다랗게 달려 치료대를 향하고 있었다. 남녀 치료사 두 사람이 나를 부축하여 세 개의 계단을 밟고 치료대에 오르게 했다. 앉으면서 신발을 벗고 머리를 안쪽으로 두고 누우라 했다. 무릎 부분을 돋우는 보조대를 받쳐 주면서 발과 다리 고정판을 갖다 대고 끼워주며 치료가 끝날 때까지 꼼짝하지 말라 했다. 속옷도 없는 환자복을 아예 벗겨내고 타올로 몸을 덮었다. 환부 거죽에 무슨 물질을 바르며 소변량을 측정한다 했다. 몸 여러 부위를 살피는 듯하더니 준비 과정이 다 끝난 듯 이제 시작하겠다 했다...

청우헌일기 2026.08.10

난병 일기(7) -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난병 일기(7)-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옷을 벗고 큰 타올로 몸을 가리고 CT실 촬영대에 누웠다. 방사선 치료를 위한 모의 치료 과정이라 했다. 촬영 기사가 방광 주변에 무얼 바르고 한참 살피더니 일어나라 했다. 소변이 너무 많이 차 있다며 안쪽에 눈금이 새겨진 종이컵을 쥐여주었다. 눈금 어디까지 소변 보고는 변기에 쏟고 오라 했다. 옷을 걸치고 화장실로 가서 그렇게 하고 와 다시 누웠다. 눈을 감았다. 움직이지 말라 하고는 몸을 기계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라 했다. 관장이 덜 되어 있어서 약 처방해 놓았다며, 약을 받아 20분 동안 관장하고 다시 오라 했다. 대기실로 나오니 나를 바라지하는 딸이 벌써 알고 병원 약국에 가서 관장약을 받아 왔다. 화장실로 가서 투약하고 나와 ..

청우헌일기 2026.08.03

난병 일기(6)-고진감래

난병 일기(6)-고진감래 대처 병원까지 가기에는 차비 부담이 녹록지 않지만,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관장하고, 금식 상태로 정해준 시각까지 병원에 도착하자면 다른 수단으로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타의보다는 자의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대가라 할까. 병원이 원하는 시각에 도착했다. 딸과 손녀가 바라지 마중을 나왔다. 오늘의 주 치료인 생분해성 물질 주입술 시술을 위해 항생제와 진통제 주사를 먼저 맞으라 했다. 넘치는 환자들 속에서.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살아가면서 기다려야 하는 일이 어디 이뿐일까. 치료는 치료로 이어진다. 오늘 치료는 다음 치료들로 나아갈 전 단계다. 다음의 모의 치료를 거쳐서 본격적인 방사선 양성자 치료로 들어간다 했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오늘만..

청우헌일기 2026.07.24

난병 일기(5)-왜 내 몸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걸까.

난병 일기(5)-왜 내 몸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걸까. 병원 양성자치료센터를 찾아갔다. 의사가 내 병에는 수술, 약물치료. 방사선 치료가 있다고 하면서 수술은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사와 투약 치료는 이미 시작했고, 방사선 치료에 관해 상담하고 예약하기 위해서다. 치료센터는 병원 본관과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치료 기관은 전국에서도 몇 곳 안 된다 했다. 차례를 기다려 아들과 함께 의사 옆에 앉았다. 의사는 화면에 뜬 자료를 보면서 말했다. “전이 된 곳은 없어서 국소 치료만 하면 될 것 같군요. 지난번 주사가 효력을 발휘할 때를 기다렸다가 격일로 다섯 번 정도 치료해 봅시다.” 지난번 내가 맞은 것은 병소 세포의 먹이 공급을 차단해서 굶겨 죽이거나 자라지 못하게 하는 주사..

청우헌일기 2026.06.27

난병 일기(4) -내 삶이 남다른 건 아니다

난병 일기(4)-내 삶이 남다른 건 아니다 마중 나온 아들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아들의 손은 운전대에 얹혀 있지 않다. 핸들은 저절로 돌아가고, 달리고 멈추는 것도, 차선을 바꾸는 것도 제가 알아서 척척 다 해낸다. 첨단 기술을 가진 차를 새로 마련했단다. 첨단 의료기기 개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은 ‘첨단’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병원에 이르렀다. 병원에 어찌 그리 사람들이 많은가. 규모가 아주 큰 상급 병원인데도 불구하고 복도에는 오가는 사람들, 의자에는 대기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세상 모든 사람이 환자들인 것 같고, 모든 환자가 이 병원에 다 모이는 것 같다. 차례를 한참 기다려서야 의사 옆에 앉을 수 있었다. 의사 앞에는 두 대의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한 대에는 ..

청우헌일기 2026.06.19

난병 일기(3)--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난병 일기(3)-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치료 스케줄은 병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병원 스케줄에 맞추어야 하는 것 같다. 두어 주 전에 전신 골 스캔을 했다. 방사성 의약품을 몸에 주사한 뒤, 전신의 뼈를 촬영하는 핵의학 검사라며 뼈에 뭐가 옮아져 있는지 어떤지를 본다고 했다. 페트 시티는 오늘로 날짜가 잡혀 먼 길을 달려가서 검사하고 왔다. 한 주일 후에 결과가 나온다 했다. 페트 시티는 몸속 세포의 대사 상태를 보여주는 PET와 몸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CT를 결합한 최첨단 영상 검사라 한다. 먼저 무슨 약물 주사를 먼저 놓았다. 그러고는 방을 하나 주면서 한 시간쯤 자라 했다. 자고 있으니 나오라 하여 좁다란 자리에 눕히더니 염하듯 몸을 묶고, 둥근 굴속으로 집어넣었다. 기계 도는 소리를 들..

청우헌일기 2026.06.13

난병 일기(2)-혼자만의 일이 아닌 걸

난병 일기(2)-혼자만의 일이 아닌 걸 아이들이 건강식품이며 영양제 같은 것을 잇달아 보내더니 오늘은 옷을 한 상자 보냈다. 먹으라고 보낸 것은 물론 병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옷도 그랬다. 병원 나들이에 간편하게 입으라며 가볍고 부드러운 바지며 점퍼 같은 것이었다. 먹을 것도 많이 있고 입을 것도 많이 있다고 해도 보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많이 드시고, 낡은 옷은 좀 버리고 새뜻한 것으로 바꾸어 입으시란다. 아비를 살펴 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게 여겨지면서도 가슴 한자리가 떨려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느 때는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간혹 무얼 부쳐 와 어디 어디에 쓰라고 했지만, 병 진단을 받고부터 그 마음 씀이 더욱 잦은 것 같다. 제 어미 없이 홀로 지내고 있..

청우헌일기 2026.06.13

난병 일기(1) -익숙한 기도

난병 일기(1)-익숙한 기도 의사는 모니터를 보면서 일상의 일인 듯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담담하고 싶었다. “……일단, 전신 골 스캔과 펫 시티를 보고 치료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의사의 말에 방점은 ‘치료 방법’에 있는 것 같았다. 병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는 어투다. 알겠다 하고 진료실을 나와 절차에 따라 골 스캔을 하고 펫 시티 예약 날짜를 받았다. 두어 달 전부터 오른쪽 가슴 한쪽이 가끔씩 뜨끔거렸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라서 저절로 삭아질 때를 기다리며 지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하니 무슨 장기나 몸 안 조직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계속 두었다간 더 어려운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 처방을 받으러 병원에 ..

청우헌일기 2026.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