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촌 20

외로움과 고독

외로움과 고독 이 일 배 좋아서 찾아와 살고 있으니 타향 아닌 애향이라 해야 할까. 한 생애를 정리하고 티끌세상을 떠나 이 한촌에 와 산 지 강산이 변하는 한 세월을 성큼 넘어섰다. 그 세월 그런대로 잘 껴안고 살고 있다 싶으면서도, 두고 온 사람들이며 그 바깥세상의 그림자는 곁을 떠나지 않는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어딜 봐도 사방 모두 우람한 산이다. 인가 몇 채에 텅 빈 들판, 벚나무가 늘어선 강둑도 보이지만, 적막하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날고 그 아래로 간혹 나는 새가 보일 뿐 정물화 같은 풍경이다. 지난날의 사람들이 그립다. 그는,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따금 달려가거나 불러서 차라도 술잔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다. 이 넓은 세상에 사람이라곤 오직 나 하나뿐인 것 같다. 혼자서 ..

청우헌수필 2022.01.10

어리적어서 어쩔꼬

어리적어서 어쩔꼬 어쩌다 지나온 삶을 한번 돌아보는데, 문득 ‘어리적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모님은 나를 두고 가끔씩 ‘어리적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군대엘 갈 때도,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딜 때도 이따금 엷은 미소와 함께 나를 쳐다 보시며 ‘어리적어서 어쩔꼬?’라 하셨다. 나중에 그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지만, 어떤 곳에도 그런 말은 없었다. 가장 가까운 말이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를 뜻하는 ‘어리석다’였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하는데, 설마 자식을 두고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을까. ‘어리적다’와 ‘어리석다’의 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생각할 때마다 나를 보며 미소짓던 부모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여덟 살 때까지 막내로 자라면서 부모님의 온갖 귀염을 다 받았다...

청우헌수필 202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