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18

얼마나 달려가야

얼마나 달려가야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에는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푸르고 누르다가 떨어져야 할 철을 알아 모두 제 자리를 찾아내려 앉았다. 떨어지는 것은 잎새뿐만 아니다. 가지도 떨어진다. 뻗어 오르는 나무에서 가지도 제 할 일을 다 했다 싶으면 누울 곳을 찾아 내린다. 저렇게 내려앉는 잎과 가지들 가운데는 줄기가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도 줄기의 손길을 무정히 뿌리치고 내렸거나 무참히 베어내진 것은 없을까? 줄기의 마음이야 어떻든 제 갈 길을 찾아 가버리거나 아프게 떨어져 나간 것들은 없을까, 줄기에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아, 저 나무 저 모습, 누가 가지 하나를 무자비하게 베어버렸나. 나무는 그 상처를 끌안은 채 숱한 세월을 두르고 있다. 둥치는 그 상흔을 감싸듯 주위를 제 살로 둘러치고 있다. ..

청우헌수필 2023.12.10

그리움의 힘

그리움의 힘 고사목이 된 긴 소나무 하나가 누워 있다. 큰 소나무가 아니라 긴 소나무다. 길이가 네댓 길은 족히 넘을 것 같다. 굵기는 가장 밑동 부분의 지름이 고작 한 손아귀를 조금 넘어서고, 꼭대기 부분은 엄지손가락 굵기에 불과하다. 이 나무는 살아생전에 굵기는 별로 돌보지 않고 키만 죽을힘을 다해 키우려 했던 것 같다. 가지도 별로 없다. 주위에는 큰 나무들이 늠름히 서 있다. 아마도 이 나무는 큰 나무가 떨어뜨린 씨앗에서 생명을 얻어 움이 트고 싹이 솟아 나무의 모습을 이루어간 것 같다. 대부분 나무는 바람이나 무엇의 힘을 빌리더라도 자신의 종자를 멀리 보내기 위해 애를 쓴다. 어미의 발치에 나서 어미와 서로 빛과 양분을 다투어야 하는 몹쓸 짓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씨앗은 불행히(?)도 어..

청우헌수필 2023.01.10

쓰러진 그리움

쓰러진 그리움 이 일 배 “굽은 소나무가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나이테가 수십 줄은 처져 있을 것 같은 이 나무의 굽은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라며 시작하는 나의 글이 있다. 삼 년 전에 썼던 「나무의 그리움」(『경북문단』 제36호)이라는 글이다. 그 나무는 뿌리 박은 땅에서 자라 올라가다가 무슨 까닭에선지 거의 직각이라 할 만한 굽이로 몸이 굽어져 버렸다. 굽어진 그대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몸을 조금씩 들어 올리다가 다시 직각도 더 넘게 고개를 쳐들었다. 하루 이틀에 그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세월을 안고 그렇게 추슬러 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곧추서서 한참을 올라가다가 다시 앞쪽으로 조금 굽어졌지만, 다시 몸을 세워 바로 올라갔다. 오직 한곳을 바라면서-. 다 커서 그렇게 굽어진 건지, ..

청우헌수필 2022.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