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420

해어지다 헤어지다

해어지다 헤어지다 여름밤 잠자리가 좀 시원 하라고 삼베 침대보를 내어 침대에 깔았다. 아내가 베를 뜨다가 침대 너비에 맞게 잘라 가장자리를 박음질하여 만든 것이다. 몇 해를 여름만 되면 깔고 자면서 뒤척이고 비비대고 하다 보니 가운데 자리가 떨어져 해어졌다. 색깔 맞는 실을 골라 꿰매어 보기도 하지만, 낡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웃 자리가 또 해어진다. 아내가 있다면 어떻게 손보아 해어지지 않게 깁거나 다시 천을 뜨다가 새로 마련해 주겠지만, 그렇게 해줄 아내와 떨어져 헤어졌다. 다시 못 돌아올 세상으로 가버렸다. 어떤 물건이라도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이 쓰다 보면 낡고 해어지지 않는 게 있을까만, 사람 살이도 그러하지 않으랴. 누구라도 만나서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마음과 몸이 해어질 수도 ..

청우헌수필 2026.08.17

내가 일기를 쓰는 까닭

내가 일기를 쓰는 까닭 아침에 일어나면 물 마시고 체조하고 변 보고 세수하고, 무엇이든 잠시 글줄을 읽다가 컴퓨터를 연다. 일기장을 불러 ‘몇 시에 누워 무얼 하다가 언제 눈을 감았다.’로 시작하여 소변은 언제 언제 보고, 그렇게 깨고 자고 하는 사이에 무슨 꿈결이 흘러가고, 몇 시에 일어났다며 밤을 정리한다. 그 속에 변비로 어려움을 겪는 배변 정황도 그려 둔다. 이어서 홀로 사는 생활을 도와주는 분이 와서 정성으로 차린 아침 밥상을 함께 마주하는 정경을 적는다. 식후 운동을 겸한 산책으로부터 계속 이어지는 일과를 한 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빠뜨리지 않기를 애쓴다. 가치의 유무는 내 관심 밖이다. 그러다 보니 내 일기장은 매일 같은 말이며 일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온종일 일기장과 함께 지낸다..

청우헌수필 2026.07.19

댑싸리 전설(6)

댑싸리 전설(6) 고샅 양쪽 길섶 댑싸리 자리에 잡풀이 잔뜩 솟았다. 뿌리가 깊어 잘 뽑히지도 않는 바랭이가 대부분이다. 풀에 묻혀 댑싸리가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 같다. 더 두고 볼 수 없어 호미로 땅을 찍으며 풀을 뽑아나갔다. 댑싸리가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뽑고 있는데 고샅 끝 동네 길로 누가 지나가고 있는 기척이 들린다. 허리도 펼 겸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 운동을 하며 마당을 한참 서성이다가 다시 고샅으로 나가 계속 뽑았다. 댑싸리에 난 풀 뽑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내 차린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가다가 보고 나한테 말을 걸어올까 봐서다. 거기 풀은 왜 뽑느냐, 곡식도 아닌 댑싸리를 뭐 하려고 그리 힘들여 가꾸느냐며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댑싸리를 ..

청우헌수필 2026.07.08

친구를 만나러 간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 난병을 앓고 있다. 아직 별 큰 증상은 없지만, 그냥 두면 어느 땐가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치료를 받아나갔다. 병소를 확인하는 몇 단계 진료를 거쳐 약물과 주사 치료를 시작했고, 양성자 치료 일정까지 잡아 놓고 있다. 양성자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병소 부위와 인근 장기를 떼어놓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질 주입술 치료를 하고, 병소 조직에 정확하게 양성자를 전달하기 위한 모의치료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그러고 난 한 달 뒤 본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했다. 쉽지 않을 그런 치료를 받아나가자면 치료 과정마다 후유증도 있을 것이고, 복용해야 할 약도 많을 것이어서 움직임에도 적잖은 제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치료 후에도 경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

청우헌수필 2026.07.02

들꽃은 들꽃대로

들꽃은 들꽃대로 강둑길을 걷는다. 날마다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강둑길을 걸으면 맑게 흐르는 강물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길섶에 피어나는 온갖 풀이며 꽃들을 보는 재미도 내가 강둑을 즐겨 걷는 큰 까닭이다. 물은 물대로 풀꽃은 풀꽃대로 모두 길동무다. 철마다 다 다른 풀이며 꽃이 피고 지고 하지만, 오늘 강둑길에는 금계국 노란 꽃잎이 하늘거리고, 갈퀴덩굴 환삼덩굴이 우거지고, 쑥대며 큰김의털, 소루쟁이가 머리를 흔들고, 개망초가 큰 키 위에 노란 꽃술 하얀 꽃잎을 앙증하게 피워 내고 있다. 길섶 강 쪽 가장자리 온갖 풀들이 자욱한 가운데 보일 듯 말 듯 언뜻 보이는 저 붉은 것은 무엇인가. 풀숲에 가려 있어 지나칠 뻔했다. 풀을 헤치고 들어가 보니 마치 접시꽃 모양 붉은 잎을 어여쁘게 펼치고 있다..

청우헌수필 2026.06.07

댑싸리 전설(5)

댑싸리 전설(5) 이웃 밭에 난 댑싸리 싹을 괭이로 긁어 매주었다. 콩밭 고랑에 댑싸리가 듬성듬성 났다. 고샅에 서 있던 댑싸리에서 날아간 씨가 퍼뜨린 것이다. 밭 옆에 작물도 아닌 것이 나서 씨를 퍼드리는 것이 성가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웃은 말이 없다. 고샅의 댑싸리를 떠나보낼 수 없는 내 속내를 모르지는 않는다. 아내가 댑싸리를 기르려 했던 자리기 때문이다. 아내가 만든 밭의 한 부분을 떼어 이웃에 부치라 하고, 아내는 밭과 담장 사이에 나 있는 고샅에 댑싸리 씨를 뿌렸다. 그 씨에서 싹이 새파랗게 돋아날 무렵 아내는 댑싸리도, 밭도 볼 수 없는 곳으로 멀리 가버렸다. 병 자리에서 댑싸리가 좀 자라거든 고샅 양쪽에 한 줄로 심어 달라 하고는, 그렇게 심어진 댑싸리를 아내는 볼 수 없었다...

청우헌수필 2026.05.20

그때가 오면

그때가 오면 해사하고도 화사하게 강둑을 수놓던 강둑의 왕벚꽃이며, 산을 무늬 짓던 산벚꽃이 다 지고, 꽃의 자리를 푸른 잎들이 차지하고 있다. 꽃이 피었을 때가 먼 옛적인 듯 아스라하다. 저 꽃 속에 있을 때는 나의 복지인 듯 아늑했는데, 푸른 잎들은 나를 내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달력이 봄을 알려 와도 벚꽃이 피기 전에는 나의 봄은 아니었다. 강둑을 걷는 아침마다 벚나무의 꽃눈을 보고 또 보았다. 아주 조금씩 눈을 떠가는 모습이 신기하고도 애가 타기도 했다. 달라져 가는 게 없다 싶을 때는 애가 탔지만, 하루 건너서 보면 조금은 눈을 틔운 것 같아 신기하고도 반가웠다. 올해만이랴, 해마다 그렇게 기다려 왔지만, 반갑게 기다리는 마음은 그제나 이제나 다르지 않았다. 그렇..

청우헌수필 2026.05.09

벚꽃 약속

벚꽃 약속 몇 달에 걸친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던 날, 의사는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불전佛典의 가르침에 깊은 관심을 두고 공부도 하고 있는 그가 나에게 준 책은 ‘마음을 잘 쓰는 법’을 이야기한 불교심리학에 관한 책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 책 뒤표지 속에 “귀한 인연에 감사드리며 몸도 마음도 늘 평안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벚꽃 보기 좋은 날 꼭 초대해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정중한 서명을 해놓았다. 진료를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봄이 되면 우리 마을 강둑에는 왕벚꽃이, 뒷산에는 산벚꽃이 찬란하게 피어나 꽃 대궐을 이룬다고 자랑한 적이 있었다. 그 현란한 풍경을 꼭 한번 보여드리고 싶다 했다. 내 그 말이 기억에 깊이 남았던 것 같다. “예, 잊지 않겠습니다...

청우헌수필 2026.04.20

모처럼의 외출

모처럼의 외출 지난 한 해 동안 나들이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저 동네 강둑을 거닐며 물을 보고 풀꽃을 보듬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사이에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갔다. 봄이 오고 있었다. 나에게도 봄이 좀 오려는가. 내 몸이 한창일 때 내가 운영해 오다시피 하던 문화 모임에서 아무 날 남도 문화 답사 예정이라는 기별이 왔다. 추진하고 있는 이가 참여 여부를 물어 왔다. 참여하겠다고 했다. 답사지는 저 남쪽 구례, 하동 쪽으로 가서 창연한 운조루 고택을 보고, 유명한 화개장터며 십 리 벚꽃길을 달려 박경리문학관도 탐방하고 올 것이라 했다. 십여 년 전에 가 본 곳도 있지만, 기꺼이 가겠다 했다. 봤다 한들 느낌..

청우헌수필 2026.04.06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나이라는 생물학적 제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스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볼 수도 있고,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라는 자기만의 삶의 속도를 중시하고자는 긍정적인 심리를 느낄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나는 늙어가고 있다.’라는 자각과 함께 노화에 대한 저항 심리를 볼 수 있다. 또한 ‘아직 나는 건재하다.’라는 사실을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선언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려는 심리적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높이는 그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노화를 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반향이 아닐까. 나이는 죄가 없다. 나이는 나이이지..

청우헌수필 2026.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