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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인은

내 삶의 주인은 이 일 배 차를 탄다. 내가 타기 편할 시각에 출발하는 차는 없어졌다. 내 편리와는 맞지 않는 차지만 기다려 탈 수밖에 없다. 차는 제 갈 길로 달려나간다. 내가 가고 싶은 길과는 상관이 없다.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는 차에 실려 가고 있다. 차는 내 목적지에만 데려다주면 저의 할 일은 끝나는 거라고 여길 터이지만, 차가 당도하는 그 목적지라는 곳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다. 차가 정해 놓은 곳을 맞추어 내 목적지로 삼아야 한다. 차는 저의 목적지에 나를 내려놓을 뿐이다. 멀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자면 외방을 달려온 차에서 내려 다시 동네로 오는 차를 갈아타야 한다. 차와 차 사이의 시간 틈을 나를 위하여 적절하게 조절해 주지는 않는다. 그 틈이 얼마이든 올 차를 간절히 기다렸다..

청우헌수필 2022.06.12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이 일 배 나에게 언제 죽음이 와도 기꺼이 맞이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이제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나 갚아야 할 빚이 별로 없는 홀가분함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특별히 무슨 깨달음을 얻어 죽음 앞에서 유달리 초연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풀도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목숨을 가진 모든 것들이란 태어남이 있듯이 죽음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는 평범한 상념에서일 뿐이다. 죽지 않고 살아 있기만 해서도 안 되고, 그런 일이란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철이 되면 미련 없이 가지를 떠나는 나뭇잎처럼 나도 그렇게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래서 나라에서 관리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것도 쓰면서 죽음에게 순순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

청우헌수필 2021.12.15

나뭇잎 삶

나뭇잎 삶 오늘도 산을 오른다. 진달래 작은 몽우리가 수줍게 솟아오르고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터뜨리고 있다. 채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이 앙상한 가지 아래서 대롱거린다. 이제 저 꽃과 더불어 잎의 움이 돋고, 마른 잎은 새 움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잎은 나뭇가지에서 움이 트는 것으로부터 한살이를 시작한다. 가지도 애채로부터 생애를 시작하지만, 애채가 힘을 가지게 되면서 움을 돋우고 그 움에서 애잎이 피어난다. 애잎은 연녹색을 띠면서 조금씩 자라나 진녹색으로 살빛을 바꾸며 세상을 차츰 푸르게 만들어 간다. 애잎은 마침내 짙푸른 큰 잎이 되어 꽃의 어여쁜 모습을 더욱 곱게 해주고, 열매가 맺히면 튼실히 자라게 해준다. 찾아오는 친구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제 난 가지를 싸안아 ..

청우헌수필 2021.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