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20년을 안고 모이다

이청산 2013. 2. 3. 11:21

20년을 안고 모이다

 

미숙이는 서울에서, 희영이는 수원에서, 유진이는 안동에서, 미화는 영천에서, 현옥이는 상주에서 내가 사는 문경을 찾아왔다. 모두 20년을 안고 왔다.

세찬 바람이 불던 1월의 어느 토요일 한낮, 미화와 현옥이가 제일 먼저 달려오고, 유진이 그리고 미숙이와 희영이가 차례로 당도했다. 경북 제일경이라는 진남교반의 어느 객사에 모여 앉았다. 모두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 끝에 만났다. 해후의 감격을 프롤로그로 하여 기억 속에 묻어둔 그날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미숙이가 20년 전의 제자라며 내 카페의 방명록 속으로 찾아왔다. 김춘수의 이라는 시를 검색하다가, 내 글 속에 인용되어 있는 그 시를 보고 내 카페를 알았다고 했다. 수업 첫 시간에 아이들과의 새로운 인연을 기리면서 들려 준 시였다. 그 때의 정경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면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기억 속을 더듬으니 매사에 성실했던 미숙이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반가웠다.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만나자고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시댁이 마침 문경이란다.

수원 사는 희영이가 미숙이에게 소식을 들었다며 역시 나의 카페를 찾아왔다. 희영이는 20년 전의 일들을 추억하며, 그 때의 일들을 되새겨 볼 수 있는 몇 장의 빛바랜 사진들을 보내오기도 했다. 토요일 어느 날을 잡아 연락이 닿은 몇 친구들과 함께 내가 사는 곳에 모이기로 했다며 전화를 했다. 뜻밖이었다. 오랜 세월의 강을 건너서 만나는 모습은 어떻게들 변해 있을까. 오랜 이산가족과의 만남 마냥 가슴이 설레어왔다.

드디어 약속의 날이 왔다. 그 때의 단발머리 앳된 소녀들과 함께 앉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고 변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그 옛날의 모습들이 조금씩은 그대로 남아 있어 지난 일들이 새로이 새겨져 왔다. 20년의 세월 뒤에서 나와만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끼리도 처음이라고 했다. 서로 잡은 손들을 놓을 줄을 몰랐다.

시간의 두꺼운 더께가 낀 일들이 허물을 벗듯 눈앞의 일들로 살아났다.

그 때 누구는 공부를 잘했고, 누구는 노래를 잘 불렀고, 누구는 장난이 심했고, 누구는 새침때기였고, 누구는 참 예뻤고, 누구는 참 정이 많았고, 누구는 선생님 속을 좀 썩였고……. 나중에 누구는 동급생 누구와 결혼했고, 누구는 아직도 시집 안 가고 있고, 누구누구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고…….

학급신문을 만들어 돌려보던 일, 생일기념품을 나누면서 축가를 함께 불러주던 일, 합창대회를 위해 함께 열심히 노래 부르던 일, 교지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일, 그리고 내가 수업시간에 들려주었던 유머까지도 세월의 먼지를 떨고 다시 태어났다.

그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모두들 깔깔대며 흐드러진 웃음꽃을 피웠다. 아프고 힘든 일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것들이 그리움으로 남았을 뿐이라고 했다.

잠시 지난 세월을 빠져나와 모두 삼십대 중반의 주부요, 어머니요, 사회인이 되어있는 오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시작한 직장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고, 농업 경영인으로서 특수작물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그리고 회사에, 공직에, 자영업에 종사하는 남편을 내조하며 모두들 열심히 단란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희영이는 아들딸을 넷이나 두고, 미화는 아들만 둘이고, 다른 사람들은 남매, 삼남매의 아이들을 두고 있는데 제일 먼저 결혼한 유진이는 맏이가 벌써 중학생이란다. 저마다 충실하게 잘 자라고, 학교에도 잘 다닌다고 했다. 안부를 서로 나누는 저들의 얼굴에 잠시 세월의 그림자가 스쳐가기도 했지만, 줄곧 미소며 홍소가 떠나지 않는다.

나의 근황에 대한 관심도 빼놓지 않았다. 장년시절에 저들을 만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이며 끊임없이 변전하는 세월 속에서 여러 가지 변화를 겪어온 일들을 잠시 돌이키고, 그 세월 끝에 한 생애를 마감하고 이 한촌으로 흘러와 살고 있는 모습을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나를 위로해주는 말일까. 그 때의 왕성한 기운과 정겹던 모습이 그대로이신 것 같아 기쁘고도 고맙다며 축복의 손뼉을 쳐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은 나였다. 오늘 저들에게서 참 크고도 아름다운 선물을 받았다. 별 감동도 준 것 없는 사람을 찾아 원근 여러 곳에서 달려와 준 정성이 큰 선물이고, 모두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자기실현을 해가면서 살고 있는 모습들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선물이 아니런가.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선물로 줄 수 있으랴.

기왕 이곳을 찾아온 김에 풍광 좋은 몇 곳을 둘러보자고 했다. 내가 안내를 하겠다고 하니 좋아들 했다. 추억을 풀어내며 삶의 모습을 나누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유구한 역사와 유서를 가지고 있는 진남교반의 고모산성 고적지로 갔다. 하도 많이 걸은 탓에 바위가 닳아 얼굴이 비칠 듯한 토끼비리(兎遷, 영남대로의 일부)를 함께 거닐다가, 석현성, 진남문을 지나 성황당을 돌아 2세기경에 축조되었다는 고모산성으로 올라갔다. 복원된 성의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성 위에서 진남교반의 절경을 조망하게 하면서 고성의 역사며 풍광에 읽힌 유래담을 들려주었다. 이곳에 사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것을 다 아시느냐고 감탄해 주면서 아름답고 기묘한 경치를 찬탄했다. 저희들을 위해서 내가 애써 좋은 여정을 준비해 준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차를 두 대로 줄여 문경의 특징적 볼거리라 할 수 있는 가은의 석탄박물관으로 향했다. 섯밭재를 넘으며 순직 광부들의 추모비인 산업전사의 탑을 참배하고 석탄박물관으로 갔다. 석탄과 관련된 갖가지 전시품과 광부들의 곤고했던 생활 모습이며 탄광 갱도를 안내하며 내가 아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상하게 가르쳐 주려고 애쓰시는 마음은 조금도 변치 않으신 것 같다며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역사 속의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을 재현해 놓은 영화 촬영 세트장으로 갔다. 갖가지 소품이며 풍물들을 둘러보면서 저들의 지난날을 추억해내기도 하고, 오늘 저들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는 사이에 해는 뇌정산 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한겨울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가르기도 했지만 추위도 느낄 겨를이 없다며 홍조 띤 얼굴에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아자개장터의 어느 국수집에 앉았다. 커다란 그릇 하나에 담은 국수를 나누어 먹으며, 오늘 참 즐거웠다며, 뜻 깊은 여행이 되었다며, 오랜 세월을 안고 다시 만날 수 있어 너무 감격스러웠다며, 선생님의 정정한 모습을 뵐 수 있어 기쁘고도 영광스러웠다며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는데 창밖의 땅거미는 점점 짙어져 갔다.

차를 세워둔 진남교반으로 다시 왔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20년을 안고 모인 오늘이 흐르면 다시 또 얼마만큼의 세월을 안아야 할지, 아쉽고 안타깝기만 했다. 만날 때도 그러했던 것처럼 헤어지는 순간에도 잡은 손을 쉽사리 놓지 못했다. 꽃피는 봄이나 단풍진 가을에 다시 한 번 만나자며 기약 없는 기약을 맺고, 저마다의 차에 올라 차마 닫지 못한 차창 밖으로 손길만 허공을 젓고 있었다.

석별의 아린 정을 오늘의 에필로그로 가슴에 담으며 헤어져 돌아설 때, 배움을 주고받은 인연이란 참 따뜻하고도 애틋한 삶의 끈이라는 생각이 소로시 고여 왔다. 돌아서는 발자국 위에 젖은 눈동자 같은 겨울밤 맑은 별빛이 소리 없이 내려와 앉고 있었다.(201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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