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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병 일기(10)-잘 껴안고 있다 보면

난병 일기(10)-잘 껴안고 있다 보면 양성자 치료도 고비를 넘겨 막바지로 가고 있다. 치료 한 시간여 전쯤에 치료 대기실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늘 하는 대로 소변을 보고 물 300cc를 마셨다. 1시간 뒤 치료할 때 필요한 적정 소변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간호사의 호명을 기다렸다. 드디어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며 데리러 왔다. 외부인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양성자 치료실로 들어가며 간호사가 관장은 잘하셨느냐고 물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표정이 아주 밝아 보이시네요.” 관장이 잘 이루어져 보인다는 말일 것이다. 관장이 그런대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나의 지극한 보호자 노릇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며, 쾌유를 간곡히 빌어주는 사람들 생각이며, 그 응원의 힘으로 치료를 잘 ..

청우헌일기 2026.08.22

해어지다 헤어지다

해어지다 헤어지다 여름밤 잠자리가 좀 시원 하라고 삼베 침대보를 내어 침대에 깔았다. 아내가 베를 뜨다가 침대 너비에 맞게 잘라 가장자리를 박음질하여 만든 것이다. 몇 해를 여름만 되면 깔고 자면서 뒤척이고 비비대고 하다 보니 가운데 자리가 떨어져 해어졌다. 색깔 맞는 실을 골라 꿰매어 보기도 하지만, 낡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웃 자리가 또 해어진다. 아내가 있다면 어떻게 손보아 해어지지 않게 깁거나 다시 천을 뜨다가 새로 마련해 주겠지만, 그렇게 해줄 아내와 떨어져 헤어졌다. 다시 못 돌아올 세상으로 가버렸다. 어떤 물건이라도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이 쓰다 보면 낡고 해어지지 않는 게 있을까만, 사람 살이도 그러하지 않으랴. 누구라도 만나서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마음과 몸이 해어질 수도 ..

청우헌수필 2026.08.17

난병 일기(9) -성공의 조건

난병 일기(9)-성공의 조건 오늘 치료는 성공했다. 관장 상태도 적절하고 내장된 소변량도 적정하여 치료가 잘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양성자가 목표 위치에 잘 도달하여 제 에너지를 병소에 집중적으로 발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무슨 어려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듯한 안도감이 몸을 녹게 했다. 어제는 실패했었다. 첫 번째 양성자 치료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해주는 자세대로 꼼짝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다가 잠깐 떠보니 원통형 방의 천장이 두 갈래가 져 서로 엇바뀌며 돌고 있고, 내려다보는 기계는 나를 덮을 듯 내려오다 올라가고 했다. 첫 치료 때 소음으로 들렸던 소리들은 천장이 움직이는 소리였던 것 같다. 다시 눈을 감고 치료가 잘되고 있는 상상에 젖었다. 소리가 멎더니 일어나라 했다. 관장이 ..

청우헌일기 2026.08.16

난병 일기(8)-신경 쓰지 마세요

난병 일기(8)-신경 쓰지 마세요 커다란 원통형의 방문 없는 방이었다. 돌아눕지도 못할 좁다란 치료대가 놓여 있고 천장에서 여러 개의 무슨 렌즈 같은 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네모난 검은색 계기판 같은 게 높다랗게 달려 치료대를 향하고 있었다. 남녀 치료사 두 사람이 나를 부축하여 세 개의 계단을 밟고 치료대에 오르게 했다. 앉으면서 신발을 벗고 머리를 안쪽으로 두고 누우라 했다. 무릎 부분을 돋우는 보조대를 받쳐 주면서 발과 다리 고정판을 갖다 대고 끼워주며 치료가 끝날 때까지 꼼짝하지 말라 했다. 속옷도 없는 환자복을 아예 벗겨내고 타올로 몸을 덮었다. 환부 거죽에 무슨 물질을 바르며 소변량을 측정한다 했다. 몸 여러 부위를 살피는 듯하더니 준비 과정이 다 끝난 듯 이제 시작하겠다 했다...

청우헌일기 2026.08.10

난병 일기(7) -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난병 일기(7)-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옷을 벗고 큰 타올로 몸을 가리고 CT실 촬영대에 누웠다. 방사선 치료를 위한 모의 치료 과정이라 했다. 촬영 기사가 방광 주변에 무얼 바르고 한참 살피더니 일어나라 했다. 소변이 너무 많이 차 있다며 안쪽에 눈금이 새겨진 종이컵을 쥐여주었다. 눈금 어디까지 소변 보고는 변기에 쏟고 오라 했다. 옷을 걸치고 화장실로 가서 그렇게 하고 와 다시 누웠다. 눈을 감았다. 움직이지 말라 하고는 몸을 기계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라 했다. 관장이 덜 되어 있어서 약 처방해 놓았다며, 약을 받아 20분 동안 관장하고 다시 오라 했다. 대기실로 나오니 나를 바라지하는 딸이 벌써 알고 병원 약국에 가서 관장약을 받아 왔다. 화장실로 가서 투약하고 나와 ..

청우헌일기 2026.08.03

난병 일기(6)-고진감래

난병 일기(6)-고진감래 대처 병원까지 가기에는 차비 부담이 녹록지 않지만,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관장하고, 금식 상태로 정해준 시각까지 병원에 도착하자면 다른 수단으로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타의보다는 자의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대가라 할까. 병원이 원하는 시각에 도착했다. 딸과 손녀가 바라지 마중을 나왔다. 오늘의 주 치료인 생분해성 물질 주입술 시술을 위해 항생제와 진통제 주사를 먼저 맞으라 했다. 넘치는 환자들 속에서.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살아가면서 기다려야 하는 일이 어디 이뿐일까. 치료는 치료로 이어진다. 오늘 치료는 다음 치료들로 나아갈 전 단계다. 다음의 모의 치료를 거쳐서 본격적인 방사선 양성자 치료로 들어간다 했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오늘만..

청우헌일기 2026.07.24

내가 일기를 쓰는 까닭

내가 일기를 쓰는 까닭 아침에 일어나면 물 마시고 체조하고 변 보고 세수하고, 무엇이든 잠시 글줄을 읽다가 컴퓨터를 연다. 일기장을 불러 ‘몇 시에 누워 무얼 하다가 언제 눈을 감았다.’로 시작하여 소변은 언제 언제 보고, 그렇게 깨고 자고 하는 사이에 무슨 꿈결이 흘러가고, 몇 시에 일어났다며 밤을 정리한다. 그 속에 변비로 어려움을 겪는 배변 정황도 그려 둔다. 이어서 홀로 사는 생활을 도와주는 분이 와서 정성으로 차린 아침 밥상을 함께 마주하는 정경을 적는다. 식후 운동을 겸한 산책으로부터 계속 이어지는 일과를 한 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빠뜨리지 않기를 애쓴다. 가치의 유무는 내 관심 밖이다. 그러다 보니 내 일기장은 매일 같은 말이며 일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온종일 일기장과 함께 지낸다..

청우헌수필 2026.07.19

댑싸리 전설(6)

댑싸리 전설(6) 고샅 양쪽 길섶 댑싸리 자리에 잡풀이 잔뜩 솟았다. 뿌리가 깊어 잘 뽑히지도 않는 바랭이가 대부분이다. 풀에 묻혀 댑싸리가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 같다. 더 두고 볼 수 없어 호미로 땅을 찍으며 풀을 뽑아나갔다. 댑싸리가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뽑고 있는데 고샅 끝 동네 길로 누가 지나가고 있는 기척이 들린다. 허리도 펼 겸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 운동을 하며 마당을 한참 서성이다가 다시 고샅으로 나가 계속 뽑았다. 댑싸리에 난 풀 뽑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내 차린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가다가 보고 나한테 말을 걸어올까 봐서다. 거기 풀은 왜 뽑느냐, 곡식도 아닌 댑싸리를 뭐 하려고 그리 힘들여 가꾸느냐며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댑싸리를 ..

청우헌수필 2026.07.08

친구를 만나러 간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 난병을 앓고 있다. 아직 별 큰 증상은 없지만, 그냥 두면 어느 땐가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치료를 받아나갔다. 병소를 확인하는 몇 단계 진료를 거쳐 약물과 주사 치료를 시작했고, 양성자 치료 일정까지 잡아 놓고 있다. 양성자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병소 부위와 인근 장기를 떼어놓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질 주입술 치료를 하고, 병소 조직에 정확하게 양성자를 전달하기 위한 모의치료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그러고 난 한 달 뒤 본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했다. 쉽지 않을 그런 치료를 받아나가자면 치료 과정마다 후유증도 있을 것이고, 복용해야 할 약도 많을 것이어서 움직임에도 적잖은 제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치료 후에도 경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

청우헌수필 2026.07.02

난병 일기(5)-왜 내 몸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걸까.

난병 일기(5)-왜 내 몸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걸까. 병원 양성자치료센터를 찾아갔다. 의사가 내 병에는 수술, 약물치료. 방사선 치료가 있다고 하면서 수술은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사와 투약 치료는 이미 시작했고, 방사선 치료에 관해 상담하고 예약하기 위해서다. 치료센터는 병원 본관과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치료 기관은 전국에서도 몇 곳 안 된다 했다. 차례를 기다려 아들과 함께 의사 옆에 앉았다. 의사는 화면에 뜬 자료를 보면서 말했다. “전이 된 곳은 없어서 국소 치료만 하면 될 것 같군요. 지난번 주사가 효력을 발휘할 때를 기다렸다가 격일로 다섯 번 정도 치료해 봅시다.” 지난번 내가 맞은 것은 병소 세포의 먹이 공급을 차단해서 굶겨 죽이거나 자라지 못하게 하는 주사..

청우헌일기 202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