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매미

이청산 2013. 9. 7. 10:58

매미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마을과 논들이 폭염에 주눅이 들어 숨을 죽이고 있는 한여름 대낮, 생기 찬 소리로 살아 있음을 외치고 있는 것은 오직 매미 소리뿐인 것 같다.

매미는 혼자서 외치기도 하고 여럿이서 목소리를 합쳐 외치기도 한다. 하나가 외치면 또 하나가 따라서 외치기도 하고, 외치다가 소리를 그치고 다른 것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저 외침은 울음인가 노래인가.

 

웃으며 살기에도 모자라는 날랜 세월/ 목 놓아 울며 건너는 별난 생명 있다니/ 생애가 워낙 짧아 단벌옷도 과분하다. (권숙월, ‘매미’)

 

시인은 운다고 했다. 웃으며 살기에도 모자라는 세월을 울고만 있다고 했다. 매미는 울고 있는 것일까. 울음일지도 모른다. 그리움이 서러워 울부짖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타는 긴 울음 끝에 어미가 울던 그 나무에서 알로 태어났다. 몇 날 며칠이 흘렀을까. 어쩌면 계절이 한 고비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에 알은 애벌레가 되어갔다. 알에서 몸을 바꾼 애벌레는 태어난 보금자리 둥치의 줄기를 타고 내려와 땅속으로 든다. 뿌리의 수액을 빨며 기나긴 세월을 두고 날개를 준비한다. 어둠 속의 숱한 세월을 두고 소망을 빌고 갈고 닦아야 했다. 적어도 대여섯 해를. 길게는 십 수 년을 두고 네 번의 허물을 벗으면서 애타게 빌어온 소망이다.

5령의 애벌레가 되어서야 비로소 땅속을 나와 나무 위로 오른다. 빛살에 익숙하지 못한 탓일까, 야반을 타고서 태어난 자리로 돌아온다. 얼마나 노심초사로 고대했던 세월이었던가. 태어난 곳에서 마지막 허물을 벗으리라며 초심을 다해 갈망하던 나무 위의 날이었다.

우화(羽化)-. 마지막 허물을 벗으며 드디어 날개돋이를 하는 매미. 이 순간을 위하여 숱한 시간을 고행하고 고뇌해 왔다. 이제 날개를 달았다. 자유를 얻었다. 날개를 펼친다. 하늘이 어디인가. 푸른 하늘이 날개 속으로 곧장 들어올 것 같았다.

그러나 매미의 하늘은 그리 가깝지 않았다. 날개의 자유 시간은 그리 길지를 못했다. 그에게 허여된 시간은 고작 보름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그 한생을 위해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얼마나 많은 어둠의 시간을 뚫어왔던가.

매미는 그러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 게 그에게 주어진 한생임을, 운명임을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아니 받아들인다.’는 것에조차도 생각을 걸 겨를이 없다. 이 짧은 생이 다하기 전에 생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생명이 세상에 왔다 간 것을 증거하고 싶다. 새로운 생명을 남기는 일이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그에게도 이것은 본능인 동시에 의무다.

짝짓기를 해야 한다. 암컷에게 구애를 해야 한다. 진동막 소리통을 가진 수컷이 소리 내어 암컷을 부른다. 참매미는 맴맴’, 말매미는 치르르르’, 유지매미는 지글지글’, 쓰름매미는 쓰름쓰름’, 털매미는 ~~~’,

타고난 목청대로, 모습대로 열심히 구애의 짝짓기 노래(mating song)를 부른다. 이 노래는 수컷들의 애절한 절규요, 극진한 사랑 교향곡이다. 합창 소리가 점점 커진다. 사랑도 다툼이다. 다투어서 차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압도할 듯이 커지기도 한다.

누가 이 소리를 시끄럽다 하랴, 누가 이 애절한 몸부림을 냉소할 수 있으랴. 찰나의 한생을 속절없이 마감해야 하는 절박함 앞에서 순정의 뜨거운 외침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길지 않은 생애를 위하여 무엇으로 열정을 다하고 있는가. 이 무상의 한 생애를 무엇으로 불태우고 있는가. 저들의 저 뜨거운 몸짓 앞에서 우리는 어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저들은 종족을 퍼뜨리기 위한 애정 행각을 위해서만 일생을 살지는 않는다. 우리는 저들의 청순하고도 덕스러운 생애를 알고 있다. 그리하여 예부터 저들의 문(), (), (), (), () 오덕(五德)을 말해오지 않았던가.

두 줄 뻗은 입술은 선비의 늘어진 갓끈을 상징하여 '학문'을 뜻하고, 평생을 깨끗한 수액만 먹고 사는 '맑음'이 있고, 사람이 가꾸어 놓은 채소며 곡식을 해치지 아니하는 '염치'가 있고, 집 없이 살아가는 '검소함'이 있고, 죽어야 할 때를 알고 기꺼이 생을 마치는 '신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저들이야 그런 삶을 산다고 여기랴. 인간의 눈으로 본 저들의 모습일 뿐이지만, 꽃이 아름답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듯, 백곡이 인간을 이롭게 하기에 그들의 삶을 바치는 것이 아니듯 인간들이 저들의 삶에서 시사를 받는 것이 어찌 부질없는 일이라 하랴.

창밖에서 매미가 울고 있다. 점점 목청을 돋우며 짧은 생애를 치열하게 태워 가고 있다. 길지 않은 생애를 결코 한탄하지 않고, 더할 수 없는 열정을 태우다가 가는 삶, 그 한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천성을 잃지 않는 자태-,

세상이 괜스레 시끄럽기만 한 날, 삶이 윤기 없이 느껴지는 날, 뜨거운 매미 소리가 그립다.

그 소리 한껏 가슴에 담고 싶다. (201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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