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말개진 강둑

이청산 2013. 10. 6. 22:13

말개진 강둑

 

아침 강둑을 걷는다. 날마다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한쪽으로는 강물이 맑게 흐르고, 한쪽으로는 논들이 펼쳐져 있다. 계절마다 다른 물소리며 논들의 풍경을 듣고 보고 걷노라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청량해질 수가 없다.

걷다보면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외고 있던 시들이 흘러나오고. 콧노래가 흥얼거려지기도 한다. 강물도 따라 노래를 부르는 것 같고, 논들의 곡식들이 갈채의 손을 흔드는 것 같다.

그 강둑에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는 동안 온갖 풀들이 자욱하게 우거졌다. 강이 흐르고, 논들이 있는 양쪽 길섶은 물론이고 길 가운데까지 풀들이 자욱했다. 그럴 때면 걷기가 좀 성가실 때도 없지 않다.

걷다가 보면 이슬 젖은 풀이 바짓가랑이를 흠뻑 적시게 하기 일쑤다. 길섶에 우거져 발길을 막는 덩굴풀이며 억새를 헤치노라면 손을 찌르기도 하고, 거미줄이 얼굴에 걸리기도 한다.

강둑 끝에는 연을 재배하는 논이 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걸어 강둑을 내려오면 넓적한 연잎, 그 위에 함초롬히 피어난 연꽃이 반기듯 눈길을 보내온다. 연잎 가운데 모여 있는 이슬방울도 방긋 미소를 보낸다.

어느 날 먼데 있는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에게 강둑 풍경이며 연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가로운 겨를을 별로 얻지 못한 친구를 위해 그의 차를 탄 채 강둑 풍경을 보며 연 재배지에 가보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 강둑으로 들었다. 길섶이며 바닥에 우거진 풀들이 있어도 잘 지나는가 싶더니 억새가 우거진 곳에 이르러 억센 풀잎들이 차를 거칠게 스치는 소리가 역력히 들린다. 아뿔싸, 그 걸 왜 생각 못했을까. 고운 차를 다 긁어버리면 어쩌나!

그제야 바쁜 친구에게 강 풍경이며 연꽃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이 너무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를 돌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친구는 민망해할 나를 생각하여 걱정 말라 했지만, 좌불안석!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다. 강둑 끝에 이르러 구경은 차치하고 차부터 먼저 살펴보니 다행히 긁힌 곳은 별로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모으고 강물 위를 날고 있는 두루미며 봉긋 피어난 연꽃을 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이마엔 송송 땀이 맺혀 있었다. 강둑에 저런 것들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강둑이 말개졌다. 어느 날 면사무소에서 내보낸 공공 근로자들이 와서 강둑의 풀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예초기로 깎아내고, 낫으로 베어냈다. 베어낸 풀들은 강기슭으로 던져졌다. 긴 강둑이 삽시간에 환해졌다.

이제는 바짓가랑이를 적실 일이 없겠다. 발목을 잡는 덩굴풀도 없어 좋겠다. 친구가 한 번 더 차를 몰고 오면 여유롭게 지나며 물새 나는 강 풍경도 보여주고 황금빛 출렁대는 들판도 함께 보고, 넓적한 잎을 벌려 맞이하는 연과도 반가운 눈길을 나눌 수 있겠다.

말개진 아침 강둑을 걷는다. 길이 훤하다.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하다. 어딘가 텅 비어버린 것 같다. 그 빈자리로 잿빛구름 같은 것이 스며드는 것 같기도 하다.

, 그것들! 다홍빛 유홍초며 남빛 닭의장풀은 다 어딜 갔는가. 연분홍 메꽃이며 푸른 나팔꽃은 또 어디에 있는가. 나도송이풀도 예쁘장한 꽃을 달고 있었는데, 망초 조그만 꽃이며, 구절초 하얀 꽃도 하늘거리는 몸짓으로 반겨주었는데-. 훤칠한 키로 고개 숙여 인사하던 억새꽃은 또 어쩌고-.

그 공공 근로자들이 저 꽃들을 차마 생각했을까. 길 위의 풀들을 베어내면서 그것들만 골라 남겨두기를 어찌 바랄 수 있을까만, 날마다 아침 인사를 함께 나누던 그것들을 향한 아린 마음은 누를 수가 없다. 정겨운 식구들이 훌쩍 집을 떠나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끼며 간직하고 있던 것이 문득 나에게서 빠져 나가버린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

나의 산책길을 즐겁고 청량하게 하던 것이 바로 그 풀이며 꽃들이 아니었던가. 바짓가랑이를 적시게 하고 길을 막던 풀들을 성가시게 여겼던 일이 민망하고 송구하다. 그 풀들이 없어지면 저 꽃들조차 성치 못하리라는 것을 왜 헤아리지 못했던가.

작은 어려움을 못 이기어 더 중한 것을 가늠하지 못한 것 같아 괜스레 부끄럽다. 풀꽃들이 나에게 준 즐거움을 생각하면 발걸음을 좀 더디게 하는 풀이며 억새쯤이야 얼마든지 곱게 여길 수도 있지 않았던가. 다시 그 풀꽃들의 계절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런가.

그러나, 가끔씩 길을 막는 것들조차 곱게 여기려는 것은 혼자만의 부질없는 마음일까. 동네사람들은 강둑길도 여느 길처럼 포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걸을 때도 그렇지만 경운기라도 몰라치면 우거진 수풀들이며, 빗물이 고여 질척이기도 하는 길바닥이 성가시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관청에 포장을 요구한 적도 있고, 그렇게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동네를 사는 사람임에야 이웃들의 뜻에 대거리하거나 거스를 수는 없지만, 나의 산책길은 어찌해야 할까, 어떻게 할까. 계절이 돌아와도 풀꽃이 다시 필 수 없는,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말개진 강둑에 서면 어떠할까, 그 마음이-.

그 길에 선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까.(201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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