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청우헌일기·20 여름이 한창 익어가던 초복날, 해가 기웃할 무렵 마을 어르신네들이 망두걸에 모였다. 망두걸은 고샅 어귀 논들머리에 있는 어르신네들의 놀이터다. 아내가 전이며 떡, 수박과 약간의 술을 내어왔다. 개장국은 없을지언정 복달임이나 하자고 했다. 모여 앉.. 청우헌일기 2012.07.22
고기를 잡다(2) 고기를 잡다(2) -청우헌 일기·19 예사 가뭄이 아니었다. 논밭이 타는 것보다 농군들의 애가 더 타는 것 같았다. 가뭄은 강물도 마르게 하여 바닥이 드러나게 했다. 가뭄을 위로 받기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은 강으로 나갔다. 거의 맨바닥을 보이고 있는 강물 속에서 다슬기를 줍고, 고기를 .. 청우헌일기 2012.06.25
제 살 자리(2) 제 살 자리(2) -청우헌 일기·18 정원에 반송(盤松)을 새로 심었다. 한촌에 작은 집을 지어 마당을 꾸미면서 정원에 조그만 반송을 한 그루를 심었다. 작년 봄의 일이다. 둥그스름한 우듬지 수관(樹冠)도 제법 아담하여 관상하는 즐거움이 괜찮다 싶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날 때까지는 제.. 청우헌일기 2012.05.27
못밥 자시러 오소 못밥 자시러 오소 -청우헌 일기·17 점심나절에 못밥을 먹으러 오라고 조 씨네 집에서 기별이 왔다. 논들에는 어제 그제 조 씨 집보다 먼저 모내기를 한 집이 있긴 하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조 씨가 처음이다. 집에서 육묘상에 기른 모라서 다른 모보다 빨리 흙 맛을 보여주어야 한단다. 조 .. 청우헌일기 2012.05.21
한촌의 어느 하루 한촌의 어느 하루 -청우헌 일기·16 숲속 길은 험했다. 한겨울이라 넝쿨이며 풀들은 바짝 말라 있었지만 여전히 발길을 훼방하고 있었고, 가시를 단 마른 나뭇가지들이 옷이며 살갗을 찔러왔다. 어느 날 이웃에 기계톱을 빌려 들고 산길을 올라갔다. 언젠가의 폭풍우로 넘어진 커.. 청우헌일기 2012.01.22
시산제(始山祭)의 하늘 시산제(始山祭)의 하늘 -청우헌 일기·15 “유세차(維歲次) 서기2012년1월12일 …… 경북 문경시 마성면 어룡산악회장 김기정은 신령님께 엎드려 고하나이다. 신령(神靈)님은 만지만능하신 힘으로…… 임진년 한 해에도 굽어 살펴 주소서…… 돈수재배로 분향강신하오니 흠향하소.. 청우헌일기 2012.01.14
제2막 인생 원년의 생일 제2막 인생 원년의 생일 -청우헌 일기·14 매미는 여전히 목청을 돋우고 있지만, 푸른 논들에는 나락이 한창 패고 있다. 어떤 이삭은 고개를 숙이고 황금빛으로 물들 날을 기다리고 있다. 외진 시골마을 사람이 되어 산 지도 반 년이 지나가고 있다. 생일을 맞이했다. 제2막 인생 원년의 생일이라 할까. .. 청우헌일기 2011.08.29
작은 잔치판 작은 잔치판 -청우헌 일기·13 “이 방송을 듣는 즉시 ㅇㅇㅇ씨네 대문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복을 맞이해서 ㅇㅇㅇ씨 댁에서 떡과 과일을 조금 마련하여…….”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이장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우리 집 대문 앞 광장에서 .. 청우헌일기 2011.08.15
오디 따고 딸기 따고 오디 따고 딸기 따고 -청우헌 일기·12 이웃 세 집 남정네 부인네 함께 오디를 따러 갔다. 경운기를 타고 산골짝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조 씨는 경운기를 몰고, 성 씨는 장대와 널따란 비닐을 준비했다. 나는 힘만 보태기로 했다. 경운기는 있는 힘을 다해 포장된 농로를 지나 산 아래 자갈길을 달려 .. 청우헌일기 2011.06.19
앵글을 짜며 앵글을 짜며 -청우헌 일기·11 앵글을 짠다. 선반으로 쓸 수 있는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사온 것이지만, 나사를 박아 짜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좌우, 상하 균형이 맞게 얽어서 나사를 끼우고, 튼튼하게 죄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하나를 짜고 나니 온몸에 땀이 밴다. 내 집이라고 마련하여 살기 시작한 .. 청우헌일기 201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