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오디 따고 딸기 따고

이청산 2011. 6. 19. 08:28

오디 따고 딸기 따고
-청우헌 일기·12


이웃 세 집 남정네 부인네 함께 오디를 따러 갔다. 경운기를 타고 산골짝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조 씨는 경운기를 몰고, 성 씨는 장대와 널따란 비닐을 준비했다. 나는 힘만 보태기로 했다.

경운기는 있는 힘을 다해 포장된 농로를 지나 산 아래 자갈길을 달려 나갔다. 운전을 하는 조 씨는 꼭 잡으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아내는 신기한 듯 환호를 터트렸다. 아내와 나는 경운기를 타보기도 처음이다. 경운기 타기뿐이랴. 이렇게 오디를 따러 가는 것도 생애에 처음 있는 일이다.

길이 끝나는 산자락 밑에 경운기가 멈추었다. 산 지리에 익숙한 조 씨는 수풀을 헤치고 뽕나무를 찾아 다녔다. 조 씨가 찾은 뽕나무 밑에 널찍하게 자리를 잡아 비닐을 깔았다. 성 씨는 갈고리가 달린 장대를 높은 나무 가지 위에 걸고 흔들었다.

오디가 우두두둑 우박처럼 떨어졌다. 그 까만 것들이 어떤 것은 유두처럼 생기기도 하고 어떤 것은 무슨 유충처럼 생기기도 했다.

, 참 달다!’ 맨 먼저 맛을 본 성 씨 부인이 탄성을 질렀다. 한두 개씩 맛을 보고는 서로의 입을 쳐다보며 크게 웃었다. 모두들 입술도 이도 까맣게 변해버렸다.

수풀을 헤쳐 나가며 뽕나무를 찾아 몇 나무를 더 털었다. 옛날 누에를 한창 칠 때 같으면 뽕나무가 숲속에 묻혀 있지도 않을 것이고, 나무가 상할까 봐 이렇게 털 수도 없을 것이라며, 조 씨는 옛일을 돌이켰다.

부인네들은 함께 떨어진 잔가지며 잎을 걷어내고 먹음직한 오디들을 하나하나 가려냈다. 제법 많은 오디가 병에, 그릇에 담겼다.

 

, 이것만 해도 실컷 먹겠다.”

눈 어두운 사람, 잠 잘 안 오는 사람 많이 자시라고.”

어느 사이에 해가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붉은 햇살이 홍조가 되어 사람들의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

어제는 딸기 따고, 오늘은 오디 따고, 시골 살이가 재미있지 않아요?”

성씨가 장대를 흔들며 아내를 보며 말을 건넨다.

, 참 좋아요!”

어제는 아내와 함께 찬샘골 산 속으로 산딸기를 따러 갔었다.

요즈음의 수풀 속에 뱀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는 장화를 신고, 나는 다리에 각반을 찼다. 그것도 모자라 비닐포대를 두르고 테이프까지 감았다. 남이 보면 참 우스운 꼴이다. 작대기로 수풀을 치며 헤쳐 나갔다. 빨갛게 익은 딸기가 깊은 수풀 속에 수줍은 듯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천생 젊은 여인의 유두처럼 예쁘고도 탐스럽게 생긴 딸기의 빨간 빛이 맑고도 투명했다.

온전한 모양 그대로 따지는 것도 있었지만, 손에 닿자마자 바스러지는 것도 많았다. 달콤한 맛을 내는 것도 있었고, 신 것도 있었다. 가시에 긁힐 줄 알고 긴팔 옷을 입고 갔었지만 가시는 장갑 낀 손으로도 손목으로도 파고들었다. 따갑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딸기를 따는 손길은 분주하기만 했다. 손에 든 비닐봉지가 가득 찼다. 큰 병에다가 비우고 다시 봉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만 하면 됐잖아. 그만 따요.”

조금만 더 따고요.”

사실 아내도 나도 따는 양에 욕심이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이 한적한 산골짜기에서 이리 곱게 익은 열매를 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이제 백여 일이 겨우 지난 한촌 생활이다. 이곳에 늘 사는 사람들에겐 평범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에겐 신기하고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게 많았다.

오늘 세 집이서 함께 오디를 따러 갈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한촌에서 첫 여름을 맞이하는 우리 내외를 위한 이웃들의 배려다.

경운기는 산길을 덜커덕거리면서 내려와 잘 포장된 들길을 신나게 달려 동네에 닿았다.

, 그냥 헤어질 수 있나.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지.”

조 씨는 경운기를 자기 집으로 몰아넣었다. 술 담그는 솜씨가 좋은 성 씨가 술을 가져왔다. 읍내로 달려가 삼겹살을 좀 사왔다.

까만 오디처럼, 빨간 딸기처럼 한촌의 여름밤이 달게 익어 가고 있었다.(201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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