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고기를 잡다(2)

이청산 2012. 6. 25. 14:17

고기를 잡다(2)
-청우헌 일기·19


예사 가뭄이 아니었다. 논밭이 타는 것보다 농군들의 애가 더 타는 것 같았다. 가뭄은 강물도 마르게 하여 바닥이 드러나게 했다. 가뭄을 위로 받기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은 강으로 나갔다. 거의 맨바닥을 보이고 있는 강물 속에서 다슬기를 줍고, 고기를 잡았다. 갈 곳 잃은 고기들이 사람이 던지는 그물에 속속 걸려들었다.

사람들이 고기를 많이 잡아 온다며, 아내도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고기 잡는 일에는 아내도 나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말라가는 강바닥 웅덩이진 자리에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으로 끓고 있는 그 고기들이 아내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했다.

조그만 반두 하나를 들고 강으로 갔다. 물속으로 들어가 반두를 들이대니 예상한 대로 고기가 제법 걸려 올라왔다. 한 번 댈 때마다 두어 마리씩이지만 큼직한 메기도 한 놈 걸리고, 귀한 붕어도 걸리고, 피리, 뿌구리, 꺽지 들도 심심찮게 건져졌다.

한 마리씩 잡아낼 때마다 아내는 환호를 쳤고, 고기가 크면 환호도 컸다. 메기와 붕어는 환호를 더욱 크게 했다. 물가로 나와 반두를 털어낼 때마다 아내의 환호는 이어졌다. 환호 소리에 놀란 탓인지, 고기들이 강바닥을 펄쩍펄쩍 뛰었다.

우리가 고기를 잡고 있다는 소식을 어찌 듣고 옆집 성씨가 구경을 왔다. 우리의 고기 잡는 모습을 보며 그는 웃었다. ‘이쪽으로 대어보라, 저쪽으로 대어보라며 훈수를 두기도 했다. 한 번에 고작 몇 마리씩 걸려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해서 얼마나 잡겠느냐며 둑에 대어 놓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서 길고 큰 그물을 가져왔다.

그물을 어깨에 걸치고 물속으로 첨벙첨벙 들더니, 그물을 사려 냅다 던졌다. 사방으로 퍼지면서 가라앉은 그물을 서서히 당겨 내니, 고기들이 파닥거리며 그물 사이사이에 한가득 끼어 있었다. 물가로 가지고 나와 뒤집어 터니 고기가 널브러지며 흩어졌다. 아내도 나도 감탄했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양동이에 부지런히 주워 담았다. 그물을 두어 번 더 던지니 고기는 양동이에 반을 넘어서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물을 던져 잡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많은 어획량에 대한 감탄도 줄어들고, 웬만큼 큰 고기를 보아도 환호가 나오지 않았다. 반두로 한두 마리씩만 건져 올려도 크게 터지던 그 환호가-.

많이 잡기보다는 재미있게 잡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많은 양이 좋을 수는 있어도 즐거움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 것 같았다. 적고 작은 것이라도 재미와 유족을 느낄 수 있을 때 즐거움도 더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풍족이 편리는 줄 수는 있어도, 행복은 보장해 줄 수 없는 세상살이처럼-.

고기가 반 양동이쯤을 넘는 것을 보고 이제 어지간하다며 집에 가자고 했다. 한두 마리씩 잡아 올렸다면 한 동안을 더 잡으려고 애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물과 반두를 털며 발을 씻고 물속을 나왔다.

아무려나 양동이를 그득히 채운 고기를 보며 가뭄에 졸아든 마음들이 조금은 여유로워진 듯했다. 양동이를 채워준 성씨에게 고맙다 하니, 성씨도 괜찮은 일을 해낸 듯 흐뭇해했다. 이 또한 한촌을 사는 즐거움이 아니던가.

저녁엔 고기를 지지고 끓여 막걸리 한 잔 나누자 하며 집으로 돌아올 때, 해는 연홍의 노을을 뿌리면서 동네 맨 앞집 지붕 위를 넘고 있었다.(201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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