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들 가로등이 켜졌다 논들 가로등이 켜졌다 논들이 펼쳐져 있는 대문 앞에 가로등이 켜졌다. 여름 내내 동네의 밤길엔 달빛, 별빛 말고는 빛이라곤 없었다. 달과 별이 뜨지 않는 밤은 그야말로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어둠이었다. 사람들은 어둠 속을 잘도 저어 다녔다. 어둠 속 다니기를 아예 체념하기도 했다. 해가 .. 청우헌수필 2011.09.15
여름이 가다 여름이 가다 한촌 살이를 시작하고는 처음 맞는 여름이었다. 그 여름이 가고 있다. 한촌의 여름은 논들의 모내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물을 가득 안은 논이 새파란 초원으로 바뀌면서 여름의 걸음이 빨라졌다. 모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 오르고, 매미는 점점 목청을 돋우어갔다. 마당 텃밭에 심.. 청우헌수필 2011.09.07
마른 감나무에 촉 나다 마른 감나무에 촉 나다 몇 달만인가? 죽은 줄만 알았던 감나무에 촉이 났다. 그 조그만 것이 투박한 표피를 뚫고 앙증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봄 다 지나고 여름도 대서, 중복을 넘어서서야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겨울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삼월 중순에 이웃에게 얻어 과원에서 캐어 온 것이.. 청우헌수필 2011.08.01
승민이의 백일 승민이의 백일 승민이가 왔다. 제가 태어나고는 처음으로 오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이다. 백일을 쇠러 왔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백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함께 왔다. 승민이는 온갖 봄꽃들이 한창 피어날 무렵인 사월에 태어났다. 참으로 기다린 아이였다. 첫 손녀 승윤이가 태어난 것은 5년 전이.. 청우헌수필 2011.07.23
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수필가 ㄱ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큰일 났습니다, 이 선생! 이제 꼼짝 못하시겠네. 거기서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실 거고……. 하하하!” 조선일보 ‘에세이’란에 실린 나의 글 ‘대문을 괜히 달았다’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다. ‘거기’란 글 속에서 ‘좁다란 다리 건너 열댓 집이 .. 청우헌수필 2011.07.11
대문을 괜히 달았다 대문을 괜히 달았다 열댓 집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산 아래 마을에 삶의 터를 잡아 집을 지었다. 이 한촌에 집을 지으면서 쓸데없는 것을 설치했다 싶은 것이 대문에 단 인터폰이다. 대문도 괜히 단 것 같다. 대문이 있으니 늦은 밤에나 닫기도 하지만, 거의 닫아 놓을 일이 없다. 대문을 늘 열어 놓으니.. 청우헌수필 2011.07.06
텃밭이 좋다 텃밭이 좋다 상추, 적상추, 고추, 초당고추, 부추, 피망, 치커리, 들깨, 청경채, 복분자. 케일, 샐러리, 취나물, 곰취, 토마토, 돌나물, 방울토마토, 실파, 대파, 조선오이, 가시오이, 가지, 감자, 강낭콩, 옥수수, 녹두, 호박, 목화……. 모두 텃밭에 살고 있는 식구들이다. 아내가 장에 가서 또 모종을 사왔.. 청우헌수필 2011.06.23
주지봉 당신 주지봉 당신 오늘도 주지봉을 오른다. 주지봉은 집 뒤에 있는 해발 367.9m의 나지막한 산이다. 이 주지봉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마성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 마성의 어느 학교에 두 해 동안 근무한 게 인연이 되어 마성과 정이 들었다. 퇴임을 하면 와서 살고 싶은 곳이라 생각하.. 청우헌수필 2011.06.12
사월이 갔다 사월이 갔다 사월은 찬란했다. 어딜 둘러봐도 산꽃이 만발했다. 생강나무꽃, 산수유꽃, 산벚꽃, 산복숭아꽃, 산매실, 진달래, 개나리, 이팝나무꽃, 조팝나무꽃……. 붉고 희고 희붉은 빛, 진분홍 연분홍, 연두빛 유록빛, 연녹색, 진녹색……. 산은 현란한 빛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꽃은 산만이 아니었.. 청우헌수필 2011.05.05
이사하던 날 이사하던 날 이사를 한다. 제1막의 삶을 접고 제2막의 삶을 지어나갈 새집으로 이사를 한다. 이삿날을 주말로 잡고 이사 업체와 계약을 했다. 그런데 주말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이사를 하는데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 깊어졌다. 업체에 연락하여 짐을 싣는 시간.. 청우헌수필 2011.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