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큰일 났습니다

이청산 2011. 7. 11. 10:43

큰일 났습니다



수필가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큰일 났습니다, 이 선생! 이제 꼼짝 못하시겠네. 거기서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실 거고……. 하하하!”

조선일보 에세이란에 실린 나의 글 대문을 괜히 달았다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다. ‘거기란 글 속에서 좁다란 다리 건너 열댓 집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산 아래 마을이라고 묘사한 내 삶의 터 못고개마을이다. 새로운 생애를 살기 위해 이 마을에 터를 잡아 집을 지으면서, 서로 나누고 위해주며 정답게 살아가는 이웃을 두고 대문을 괜히 달았다고 했다.

글이 신문에 실린 날은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며칠을 두고 원근 각지의 친지며 지인들이 연방 전화를 했다. 모두들 축하한다고도 하고, 부럽다고도 했다. ‘축하한다는 말은 아무 연고도 없는 한촌 벽지에 잘 정착했다고 해주는 덕담일 것 같고, ‘부럽다는 말은 이웃과 더불어 인정을 나누며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 것 같았다.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글 속에 나오는 동네가 하도 좋아 보여서 가보고 싶다며, 동네의 위치나 글쓴이의 연락처를 좀 알려 달라는 문의 전화가 독자들로부터 왔는데, 연락처를 가르쳐 주어도 좋겠느냐고 했다. 가르쳐 주라고 했다. 마을을 보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찌 마다할 수 있을 것인가.

인터넷을 열어보니 수많은 사이트에서 내 글을 퍼 옮겨갔다. 몇 사이트에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었다며, 언젠가는 글쓴이처럼 인심 좋은 시골로 가서 살고 싶다며,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며 많은 댓글들을 달아놓았다. 내 글이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 모양이다.

동네도 떠들썩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 딸들이 신문을 보고 우리 동네좋은 이야기가 신문에 나 있더라며, 부모님께 전화를 하더라고 했다. 그 부모님들이 달려와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다. 옆집 친구 성 선생은 인터넷에서 출력한 글을 마을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읽어 주었다.

이런 고마운 일이 있나! 우리 마을 땅값 올라가겠네. 하하하

고마운 일이다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마을이 되었네요.”

마을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인심을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과분한 치사를 받는 것 같다. 그 순후한 인정을 베풀어준 마을사람들에게 내가 오히려 큰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을-.

동네에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며칠 전, 지역 신문사에서 마을을 소개하기 위한 취재를 해갔는데, 주민들이 한 식구처럼 살아가고 있는 정겨운 마을, 한번만 보면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마력을 지닌 마을, 경관이 수려한 환경 친화 마을로 소개하는 기사가 났다.

그날 밤, 한바탕 술자리가 벌어졌다. 술 연구가인 성 선생이 손수 빚은 술로 잔을 돌렸다. 성 선생도 나처럼 공직 은퇴 후 이 마을에 찾아들어 사는 사람이다.

이보다 더 경사가 어디 있어!”

경사고말고! 이런 마을에 사는 게 얼마나 좋아.”

잔에 넘치는 술처럼 마을 사람들 가슴 가슴에 행복감이 넘쳐 나는 것 같았다. 마을사람들은 성 선생과 나에게 이 마을에 함께 살아 고맙다며 내내 정답게 잘 살자고 했다.

선생님의 큰일 났다는 말씀과 함께, 문득 최치원(崔致遠, 857~?)입산시(入山詩)’가 떠오른다.

 

僧乎莫道靑山好  저 중아 산이 좋다 말하지 말게

山好何事更出山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나,

試看他日吾踪跡  저 뒷날 내 자취 두고 보게나

一入靑山更不還  한 번 들면 다시는 안 돌아 오리

 

산이 좋아 세상을 버리고 산에 들어 산다는 사람들이 다시 산을 내려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최치원이, 산문 밖으로 나가는 승려 호원상인(顥源上人)에게 지어 주었다는 시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는 천하에 이름을 크게 떨칠 정도로 높은 경륜과 남다른 포부를 지녔었지만, 고국 신라에 돌아와 보니 나라는 이미 쇠망해 가고 있어 그 난세의 비운을 감당할 길 없음을 깨닫고 세상을 버리고 산으로 든다. 그러니 어찌 다시 나올 생각을 할 수 있으랴.

최치원이 입산을 결심한 뜻과 내가 이 벽촌에 든 마음이야 물론 같을 수 없다. 최치원은 비탄에 젖어 산으로 들었지만, 나는 새 삶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이 벽촌을 찾아왔다. 그러나 경불환(更不還)의 뜻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스스로 가려 찾아온 곳을 버리고 또 어디 갈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정겨운 이웃이 있고, 이 맑고 푸른 자연이 있음에야-.

이 마을을 이리 좋다고 해놓고는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날 것이니 큰일 아니냐는 선생님의 말씀은, 마을 인심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역설의 말씀이실 터이다. 어찌 이 마을을 나설 일이 있을까. 못 떠나서 큰일이 아니라, 떠나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웬 떠날 일? 공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 싶은 중에 옆집 친구 성 선생이 전화를 했다.

지금 뭐해? 한 잔 해야지!”(2011.7.9.)

 

                                   조선일보 게재 "대문을 괜히 달았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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