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대문을 괜히 달았다

이청산 2011. 7. 6. 14:36

대문을 괜히 달았다



열댓 집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산 아래 마을에 삶의 터를 잡아 집을 지었다. 이 한촌에 집을 지으면서 쓸데없는 것을 설치했다 싶은 것이 대문에 단 인터폰이다. 대문도 괜히 단 것 같다. 대문이 있으니 늦은 밤에나 닫기도 하지만, 거의 닫아 놓을 일이 없다. 대문을 늘 열어 놓으니 버튼을 눌러 사람을 불러낼 일도 없다.

사십 년 가까이 일에 매여 앞뒤 돌아볼 겨를을 그다지 갖지 못한 채 살아 온 한 생애를 마감하고, 조용하고 맑게 새로운 생애를 살고 싶어 한촌을 찾아와 조그만 집을 마련했다. 있을 건 다 있어야 할 것 같아 대문채도 짓고 인터폰도 달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이곳에서는 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현관에 네댓 됫박이 들 만한 포대가 하나 놓여 있다. 만져 보니 쌀인 것 같다. 누가, 왜 갖다 놓았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뒷집에서 지난 가을에 추수한 벼를 근래에 찧어 이웃과 갈라 먹고 싶어 갖다 놓은 것이라 했다. 어느 날은 누가 가래떡을 갖다 놓기도 하고, 매실 한 소쿠리를 갖다 놓기도 했다.

배추가 크게 자랐다고 뽑아다 주기도 하고, 상추 잎이 벌었다고 솎아다 주기도 했다. 지난봄에는 뜯어온 산나물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애써 잡은 다슬기를 갈라 주기도 했다.

아내는 당황스럽고 불안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와도 이런 인심들은 처음이다. 고맙기도 하지만, 무엇으로 갚아야 할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다. 이들처럼 농사를 잘 지어 나누어줄 수확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무엇으로 보답하기도 어렵지 않느냐고 했다.

자꾸 받기만 하고 송구스러워 어쩌지요?”

별 말씀을요, 정답게 지내면 되는 거지요.”

어느 날 아내는 쑥을 뜯으러 가자고 했다. 산자락 어느 밭머리로 가서 보드라운 것을 골라 뜯었다. 바구니에 가득 차도록 한참을 뜯었다. 깨끗하게 씻어 방앗간으로 가져가 쑥떡을 빚었다. 그리고 이웃에 조금씩 돌렸다. 받은 이웃들은 뭐 하러 이런 걸 가져오느냐.’면서 고마워하더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도 즐거워했다.

강에서 고기를 잡아 어탕국수를 했다며, 이웃에서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대접만 받아서…….”

서로 노나(나누어) 먹는 재미 아입니까.”

나누어 먹는 재미! 그 걸 모르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다시 돌아보였다.

어느 집에서는, 칼국수를 했다고 부르고, 나물 비빔밥을 차렸다고 부르고, 청국장을 끓였다고 부르고, 제사를 지냈다고도 불렀다. 소담하게 차린 상 위에 따뜻한 인정미가 그릇마다 넉넉히 담겨 있었다.

읍내에 가서 삼겹살을 좀 사왔다. 이웃을 불러 해질녘 마당 원탁에 둘러앉았다. 텃밭 상추를 뜯어 쌈장과 함께 놓았다. 누구도 오라고 하고 누구도 부르란다. 여남은 이웃이 모여 앉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는데 뭐가 부족해 걱정이라는 둥, 어떤 작물 재배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둥, 누구는 어디에 갔다 왔다는 둥, 누구는 어딜 가서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둥……. 사소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전혀 사소하지 않게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담소하는 사이에 지글지글 삼겹살이 굽히고 술잔이 비어간다. 전기불이 점점 밝아져 가고, 어둠이 짙어지는 하늘에 별이 총총 빛나고 있다. 총총한 별빛을 따라 웃음소리도 찬연한 빛을 낸다. 도시의 어느 집에서, 어느 아파트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어느 마당에서, 이처럼 별빛 밝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찬연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신문 보도를 보니, 일본은 지금 전통적인 가족 울타리가 약해지면서 사망 후 며칠 지나서야 발견되는 고독사가 한 해 15,600명에 달할 정도로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 안에만 박혀 있으면서 외출을 거부하는 하키모리(은둔형 외톨이)7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신문은 일본의 이러한 현실이 10년 후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우리 동네와는 관계없는 남의 나라,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10년이 흐른들, 100년이 흐른들, 이 한촌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까. 누구네 집은 밤에 언제쯤 자고 아침에 언제쯤 일어나며, 누구네 집엔 어떤 손님이 왔고, 무슨 연장은 누구네 집 것이 제일 좋고, 누구네 집엔 비료가 얼마나 남아 있고, 누구네 집 밭에 뭐가 많이 열렸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에야, 어찌 홀로 죽어갈 수 있으며, 어찌 문을 닫아걸고 홀로 지낼 수 있으랴.

오늘도 이웃 어느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잔다. 문을 열어 둔 채 이웃으로 간다.

늘 열어둘 대문을 괜히 달았다 싶다.♣(2011.6.29)

 

              조선일보 게재 "대문을 괜히 달았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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