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주지봉 당신

이청산 2011. 6. 12. 20:23

주지봉 당신


오늘도 주지봉을 오른다. 주지봉은 집 뒤에 있는 해발 367.9m의 나지막한 산이다. 이 주지봉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마성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 마성의 어느 학교에 두 해 동안 근무한 게 인연이 되어 마성과 정이 들었다. 퇴임을 하면 와서 살고 싶은 곳이라 생각하곤 했었는데, 퇴임과 더불어 그 꿈을 이루었다. 내가 늘 그리던 주지봉 자락 아래 새로운 삶의 터를 잡았다.

주지봉은 봄이 되면 온갖 산꽃들이 어울려 피어나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 대궐을 이루는 장관은 기릴 만하지만, 산세가 그리 수려하지도 않고, 그리 웅장하지도 않은 동네 뒤에 있는 조그만 동산일 뿐이다.

산은 작지만 옆 등을 타고 오르자면 경사가 급하여 삼백여 개의 횡목 계단을 타고서야 오를 수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노란 꽃을 피워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생강나무가 길을 따라 도열하듯 서 있고, 싸리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산벚나무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 사이로 콩새 쏙독새 찌르레기 들이 지저귀며 날고, 때로는 산토끼 너구리 고라니가 지나가기도 한다.

내가 주지봉을 오르는 까닭은 싱그럽게 우거진 숲과 고운 소리로 지저귀는 새소리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동네와 멀지 않고 그리 높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땀을 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면서 흘리는 땀은 억지로 몸을 움직여 흘리는 땀보다 훨씬 더 상쾌하다.

주지봉을 좋아하는 까닭은 또 있다. 주지봉에 오르면 내 삶의 터 마성이 한 눈에 든다. 백화산, 주흘산, 봉명산, 오정산, 어룡산이 감싸 안듯 둘러친 한가운데 강을 사이에 두고 군데군데 오순도순 모여 사는 집들과 질펀하게 펼쳐진 들판들이 삶에 은결든* 심신이며 그리움에 사무친 가슴을 활짝 펴지게 한다. 저 고즈넉한 풍경이 그리 안온할 수가 없다. 그리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 주지봉을 거의 날마다 오르지만, 사는 일로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나, 그리운 사람이 그리워질 때면 더욱 오르고 싶어진다. 봉우리에 올라서서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정겹고도 평화로운 마을 정경과 들판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머리며 가슴이 참으로 삽상하고 청량해진다. 엉긴 삶의 타래가 제 올을 찾아 풀려나는 듯도 하고, 그리운 사람이 달려와 가슴에 안길 듯도 하다.

나는 그 때 참 부유함을 느낀다. 나에게 주지봉 푸른 산이 있고, 정겨운 풍경이 있고, 청량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월든(Walden) 호숫가에서 검박하게 살던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의 날들을 풍부하게 가졌다는 데서 부유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여름날 아침 호수 한가운데에 보트를 띄우고서 그 안에 길게 누워 공상에 잠기곤 했는데, 그 때의 무위가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작업으로 느껴졌다고도 한다.

내가 사는 마을의 앞으로는 논들이 펼쳐지고 강이 흐르고, 뒤로는 과수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논둑길을 지나 산으로 오르고, 과수원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논둑길을 걸을 때면 논을 써레질하거나 물을 대거나 비료를 뿌리는 농군들을 만나기도 하고, 과수원 길을 걸을 때는 열매솎기를 하거나 과일에 봉지를 씌우고 있는 아낙네를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일에 열중하고 있다.

산을 오른다며 스틱을 흔들며 그들 곁을 오가는 내 모습이 좀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몸을 숨기고 싶을 때도 있다. 그 때 나는 주지봉을 오르내리는 일도, 오르내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는 일도, 나에게는 생산적인 작업이라는 자위로 변명을 삼는다.

사실 한촌을 살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주지봉을 오르는 일은 가장 즐겁고도 생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가풀막을 오르며 흘리는 땀 속에 건강한 호흡이 있고, 봉우리 위에서 느끼는 청량감 속에 정밀(靜謐)한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숨을 쉬고 살면서 정겨운 이웃들과 함께 삶의 즐거움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이 또한 하나의 생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주지봉을 오른다. 삶의 타래를 풀러,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주지봉을 오른다. 소로가 월든 호수에서 노닐 때면, 그 시간을 좀 더 작업장이나 학교 교단에서 보내지 않았다 해서 후회할 일이 없다고 했듯이, 주지봉을 오를 때면 명리(名利)의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가질 일이 전혀 없다. 그런 마음을 덜어내고 나면 그 빈 자리에 삶의 청량한 바람이, 그리운 사람의 모습이 오붓하게 자리 잡는다.

주지봉 당신! 당신이 있어 오늘이 아름답고 내일이 기다려진다. 그 당신을 향해 나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주지봉을 오른다. (2011.6.11.)

 

*은결들다 : 상처가 내부에 생기다. 원통한 일로 남모르게 속이 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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