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버린 길섶 잃어버린 길섶 요즈음은 시골에도 마을을 나드는 길이며 조붓한 고샅까지 포장이 안 된 곳이 거의 없다. 삼십 여 가구가 사는 우리 마을에도 물론 모든 길이 다 포장되어 자동차며 농기계가 잘 지나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그냥 잘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큰 차도 작은 차.. 청우헌수필 2019.06.04
풀꽃의 천적 풀꽃의 천적 오늘 아침도 강둑 산책길을 걷는다. 지금 강둑은 앙증맞게 핀 다홍빛 유홍초의 계절이다. 새깃유홍초도 있지만, 강둑 길섶에 피는 것은 모두 둥근잎유홍초다. 회반죽 길섶에도 풀꽃은 돋았다. 풀숲이 우거져 있는 강둑길에 회반죽이 덮일 때 모든 풀꽃은 끝난 줄 알았다. 모든.. 청우헌수필 2018.09.30
내일도 오늘같이 내일도 오늘같이 -청우헌일기·40 “마을공원으로 나갔다. 철봉체조를 하고 기구를 돌리며 시를 외웠다.” 언제나 내 일기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써온 지도 사십 년이 다 되어간다. 일여덟 해 전, 생애의 한 막을 내리면서 홀연히 도회를 떠나 강이 있고 숲.. 청우헌일기 2018.08.11
낙망의 길이 희망의 길로 낙망의 길이 희망의 길로 그 길이 어떤 이들에게는 희열의 길이 될지 몰라도 나에게는 슬픔의 길, 낙망의 길이 되었다. 이 슬픔과 낙망이 기쁨과 희망의 길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 한촌을 떠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내가 늘 아침 산책길로 걷는 그 강.. 청우헌수필 2018.07.19
풀꽃 산책길을 그리며 풀꽃 산책길을 그리며 육중한 굴삭기가 지나가고, 회반죽이 두껍게 덮이면서 강둑은 불모의 메마른 길, 폐허의 거친 땅으로 변해버렸다. 그 길은 발자국 길이었다. 사람들이 거니는 발자국을 따라 가르마를 타듯 나 있는 길의 양쪽 길섶으로는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강 쪽으로는 벚나무.. 청우헌수필 2018.05.09
덮여버린 풀꽃 길 덮여버린 풀꽃 길 올 것이 또 오고 말았다. 오지 말기를 간곡히 바랐던 것이 기어이 와서 강둑을 덮으면서 내 가슴도 덮어버렸다. 그 강둑의 반을 덮을 때는 내 삶의 한 부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지만, 나머지 반마저 덮일 때는 차라리 먹먹했다. 가슴도 머리도 먹빛으로 짓이겨지는 .. 청우헌수필 2018.04.06
꽃 이름 맞히기 꽃 이름 맞히기 오늘도 아침 산책길을 걷는다. 아침이면 걷는 강둑 풀숲 길이다. 이제 더위도 한 걸음 물러서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산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풀들은 솔솔 익어가고, 강물은 새맑게 여물어간다. 더우면 더운 대로 산산하면 산산한 대로 풀꽃들은 철 맞추어 피고지기를 .. 청우헌수필 2017.09.11
팔월의 풀꽃 길 팔월의 풀꽃 길 입추 지난 팔월이 시나브로 여름의 자리를 정리하면서 가을을 예비하고 있다. 또 그런 열정의 철이 올 것이라고 뜨겁게 한 철을 살던 여름을 다독이며, 보낼 것은 보내고 맞이해야 할 것은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아침이면 언제나 거니는 풀꽃 산책길, 마을 숲을 지나 강둑.. 청우헌수필 2017.08.23
나의 한촌살이(1) 나의 한촌살이(1) 모처럼 온몸이 젖도록 땀을 좀 흘렸다. 아내가 지난해 가을 추수 이래 묵어 온 밭을 일구어 달라 했다. 겨울을 나고 봄이 익어가는 사이에 밭에는 지난해의 마른 풀 위로 잡초가 무성히 돋아 있었다. 잡초이라는 게 봄까치꽃이며 냉이, 지칭개, 망초 같은 들꽃들이지만, 밭.. 청우헌수필 2017.05.20
흔들리는 풀꽃 흔들리는 풀꽃 눈두덩에서 덜 떨어진 잠기운을 털어내며 막 일어나려는데 메시지 신호음이 연거푸 울렸다. 무슨 다급한 일을 알리는 걸까, 폰을 여는 순간 갑자기 무엇에 부딪치기라도 한 듯 황당하고 황망했다. “…선생님 수필 속에 인용한 시는 ㅇㅇㅇ시인의 시라기보다 제 대표 시의 .. 청우헌수필 2017.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