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흔들리는 풀꽃

이청산 2017. 2. 17. 11:05

흔들리는 풀꽃

 

눈두덩에서 덜 떨어진 잠기운을 털어내며 막 일어나려는데 메시지 신호음이 연거푸 울렸다. 무슨 다급한 일을 알리는 걸까, 폰을 여는 순간 갑자기 무엇에 부딪치기라도 한 듯 황당하고 황망했다.

선생님 수필 속에 인용한 시는 ㅇㅇㅇ시인의 시라기보다 제 대표 시의 제목이에요. 몇 년 전부터 시인께 말씀드려서 한동안 잠잠했는데 보내는 사람은 김현숙 시인이라 했다.

이어지는 메시지에서는, 저작권협회 회원으로서 내일 그 회의에 참석할 예정임을 참고해 달라고도 했다. 분노 같은 감정이 묻어 있는 말씀이었다.

인터넷 등 디지털 매체에서 작자가 오전된 시나, 원전과 달라진 시를 분별없이 인용한 글을 보면 그 글쓴이를 일깨워주는 일을 조금 했다고, 나에게 시 파파라치라는 별명을 붙여준 신문(조선일보, 2016.11.18.)도 있었던 터에 내가 잘못된 글을 인용했다니!

시인의 시를 나의 어느 글 속에서 인용했던가?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고 있을 때, 깨우치기라도 하시려는 듯 불이익에 대한 말씀과 함께 그 시가 인용된 나의 글을 일러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끓는 속을 다스리기가 어려우신 듯했다.

수 년 전에 한 생애의 마감을 앞두고, 지금 살고 있는 한촌에 조그만 은거처 하나 지으면서 상량식을 올리는 감회를 적었었는데, 그 글 속에 인용이 되어 있었다. 우선 내가 인용했던 시인의 시집을 찾아보았다.시집에 실려 있는 한 구절 그대로를 인용한 것이다. 그 시가 김 시인 시의 제목과 내용의 구절을 빌려 쓴 시라는 것이다. 김 시인의 시를 검색해 보았다.

김 시인의 말씀과 같았다. ‘풀꽃으로 우리 흔들릴지라도라는 제목의 구절이 우리만 빼고 시인의 시에 들어 있었다. 다른 한 구절도 비슷한 게 있는 걸 보면 우연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묵과할 수 없었을 김 시인의 심정을 헤아릴 만했다.

김 시인의 시를 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인의 시에 그런 사정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찌되었거나 그런 시를 인용한 것은 온당한 일이 못 되는 것 같아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내가 글쓴이의 잘못된 인용들을 바로 잡으려했던 일이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며 한국문인협회에서 표창(2016.12.20.)까지 해준 일이 다시 돌아보였다.

김 시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 인용 부분을 당장 삭제하겠노라고 했다.김 시인은 그 시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각별히 아끼는 시라며,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고 있는가 싶어 가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다가, 우연히 내 글 속에 그 구절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시인의 시집이 나온 이후 그와도 충분한 이야기가 있었다며, 그동안 잊고 지내다가 내 글 속에 들어있는 그 구절을 다시 보니,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자기 시에 대한 애착이 체온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분신과도 같은 자기 작품에 착심하지 않을 작가가 어디 있으랴만, 김 시인의 마음은 유난히 뜨거운 것 같았다.

원문이 실린 시집을 볼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앞으로 좋은 인연이 되기 바란다며 흔쾌히 보내주겠다고 했다. 원전 확인 없이 매체에 떠도는 글만 믿은 필자들에 의해 잘못된 글이 계속 악순환 되는 일들이 떠올라,김 시인의 시를 존중하는 뜻으로 원전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튿날 바로 그 시가 실린 물이 켜는 시간의 빛이란 시집을 비롯한 앤솔로지 몇 권이 택배로 도착했다. 시를 향한 김 시인의 열정이 날아온 것 같았다. 오랜 세월 동안 시업을 쌓아온 시인의 프로필을 보니, 고향도 내가 사는 곳과 머잖은 곳이고, 나와 비슷한 연륜을 살아오면서 내 지난 생애의 업과 같은 일에 봉직했던 분이기도 했다. 그 이력에 유대감이 갔다. 시는 더욱 깊은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바로 가누기 힘들지라도/ 햇빛과 바람 이 세상맛을/ 온몸에 듬뿍 묻히고 살기는/ 저 거목과 마찬가지 아니랴//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낮은 몸끼리 어울릴지라도/ 기쁨과 슬픔 이 세상 이치를/ 온 가슴에 골고루 적시면 살기는/저 우뚝한 산과 무엇이 다르랴// 이 우주에 한 점/ 지워질 듯 지워질 듯/ 찍혀 있다 해도(김현숙, ‘풀꽃으로 우리 흔들릴지라도’)

 

이 우주에 한 점 지워질 듯 지워질 듯 찍혀 있는 것이지만, 결코 소홀하게 대하지 않고 가볍게 보지 않는 너그럽고도 포근한 시선이 큰 울림으로 새겨져왔다. 그 풀꽃은 결코 연약하지 않았다. 거목과도 같고 우뚝한 산과도 같고, 나아가서는 우주 그 자체이기도 했다. 장자(莊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도를 따뜻하고도 명쾌하게 그려놓은 것 같았다.

그 풀꽃의 흔들림은 곧 세상맛이 듬뿍 묻은 삶이었다. 지나가는 바람이 그 삶을 슬그미 시샘했던가. 그 삶이 오죽 빛나 보였으면 그랬을까만, 그 삶의 자리는 굳건했다. 그 풀꽃은 언제나 제 자리를 지키면서 거목이 되고 우뚝한 산이 되어 넉넉하고 아늑하게 서있었다.

그 풀꽃이 어쩌면 이 세상 이치를 온 가슴에 골고루 적시며 살아온 시인 자신일지도, 저 거목으로 우뚝한 산으로 서있는 시인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상념이 흔들리는 풀꽃 속으로 그윽이 젖어드는 듯했다.(2017.2.12.)

                               ※ 조선일보  '시 파파라치'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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