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또 오고 말았다. 오지 말기를 간곡히 바랐던 것이 기어이 와서 강둑을 덮으면서 내 가슴도 덮어버렸다. 그 강둑의 반을 덮을 때는 내 삶의 한 부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지만, 나머지 반마저 덮일 때는 차라리 먹먹했다. 가슴도 머리도 먹빛으로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풀숲이 우거진 강둑은 나의 아침 산책길이다. 복판으로 발자국 길이 가르마처럼 나 있고, 어쩌다 경운기가 지나간 듯 가녘으로는 누운 풀들이 가끔씩 보이곤 하던 흙길이었다. 마을 최후의 흙길이면서 지구상에 몇 안 될 듯한 원시의 길 같기도 했다.
그 길섶은 철을 따라 피고 지는 풀꽃의 천국이었다. 봄까치꽃, 꽃다지,말냉이, 애기똥풀들이 그려내는 봄이 지나면, 달맞이꽃, 닭의장풀, 개망초, 무릇, 한련초, 금계국이 여름을 꾸미다가, 유홍초며 메꽃, 벌개미취,쑥부쟁이, 꽃향유, 엉겅퀴 멀대가 가을을 수놓으며 강둑은 서서히 사색의 계절로 든다. 어찌 이 풀꽃들뿐일까, 환삼덩굴이며 칡넝쿨이 우거지고 명아주 익모초 도깨비바늘이 멀쑥 솟아 때로는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바짓가랑이를 슬쩍 당기기도 하고 옷자락에 달라붙어 성가시게도 하고, 발길을 훼방 놓기도 한다. 때로는 낫을 들고 걸으며 치고 걷어내어 길을 틔우기도 했다. 그래도 그것들이 아침이면 그립고 보고 싶었다. 오늘은 어떤 꽃이 또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을까, 무슨 빛깔, 어떤 표정으로 날 맞아 줄까, 어떤 놈이 슬쩍 발목을 걸고 소맷자락을 타고 오를까. 안녕, 그래, 그래, 너도 너도 안녕, 너는 가려 하는구나, 내년에도 잊지 말고 와-. 내가 말을 걸면 그들도 대꾸를 놓치지 않았다. 한촌을 찾아와 사는 즐거움이고 보람이었다. 내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참 잘 찾은 길이구나!’싶은 길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들어선 길을 조금은 후회하면서도 그럭저럭 걸어왔다. 그러다가 한 생애를 정리하고 새로운 나의 세월을 찾아 이 한촌으로 들었다. 강둑 풀꽃 길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내 생애에 몇 안 되는 성공적인 길을 얻은 것 같았다.
세상의 일이 내 마음 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느끼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네사람들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잡초 저리 무성한 길을 그대로 두고 볼 것이냐.’며 관에 진정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대표가 되는 사람은 그 길 말끔히 포장하는 것이 자기의 엄중한 사명으로 여기기도 했다. 사람들의 그런 생각들을 보고 듣고 있을 때면 절벽을 마주하고 선 것 같았다. ‘이 좋은 꽃길을 왜 그리 없애려하느냐!’는 나의 절규는 스쳐가는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슬에도 옷 젖고, 걸으면 발 걸리는 저런 길 어찌 그냥 둘 것이냐!’는 동네사람들에게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야 했다. 
어느 날 커다란 굴삭기가 강둑에 앉았다.풀을, 꽃을, 땅을 마구 밀어젖히기 시작했다. 풀이 뽑혀 나가고, 꽃이 짓이겨지고 땅이 벌건 속살을 드러내며 널브러졌다. 풀꽃과 흙이 범벅이 된 길 가장자리로 거푸집이 세워지고 회반죽 차가 들어와 철망을 깔아가며 반죽을 쏟아 부었다. 모든 것이 회반죽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어쩌다 생겨난 풀꽃은 회반죽길 가녘 귀에 겨우 매달려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야 했고, 나는 경결하기 짝이 없는 포도 위를 타박타박 걸으며 서러운 풀꽃들과 눈물겨운 상봉을 이어가야 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강둑 반중간에 서 있는 정자 저 너머로는 풀숲 길이 남았다. 그 길에는 여전히 둥근잎유홍초와 메꽃이 미소를 짓고, 자주달개비와 며느리밑씻게가 함초롬한 얼굴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설레도록 다행이었다. 그 다행이 오래 가지를 못했다. 정자 저쪽을 그렇게 했던 것처럼, 어느 날 이쪽에도 굴삭기가 와 난장질을 해대고는 회반죽을 들이부었다. 그 길의 덩굴들도 꽃들도 아주 세상 것이 아니게 만들었다. 둑 아래 삼백년 느티나무 밑으로도 회반죽 길을 내었다. 정자를 둘러 한 자락 길로 잇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마을이 발전되는 거라며, 편리해지는 거라며, 저 논들 가장자리에 터 잡은 양어장을 가리키며 안도를 모았다. 누가 몇 해 전에 들판 끝자락 논들을 사들이더니 양어장을 짓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물고기를 기르기 시작했다. 두어 해를 지나더니 고기를 회 쳐서 고객을 부르기 위한 커다란 건물을 지었다. 장사를 시작하면 들 복판 하나뿐인 농로로 번쩍이는 차들이 드나들 것이 아닌가. 그것들이 번질나게 오가면 얼마나 걸리적거릴까. 사람들은 일 철에 경운기며 트랙터가 다닐 일을 걱정했다.강둑으로 다니면 된다며, 강둑을 거쳐 횟집으로 들면 된다며 한숨을 가눈다. 강둑길은 더 이상 정겨운 풀꽃 길이 아니게 되었다. 회반죽에 짓뭉개지다 못해 번잡한 찻길까지 되어야 한다. 강둑을 줄지어 서있는 벚나무는 또 어찌해야 하는가. 봄이면 화사한 꽃 천지를, 여름이면 무성한 그늘을, 가을이면 불긋한 단풍 길을 이루는 저 나무들은 또 얼마나 시달려야 할까. 이제 마을에는 두렁 아니면 흙길이란 없다.아침마다 팍팍한 길을 터덜터덜 걸을 일을 생각하면 어깨에서부터 힘이 다 빠져 내리는 것 같다. 발목을 걸던 칡넝쿨이 오히려 그립다. 바짓가랑이를 잡던 환삼덩굴이 차라리 보고 싶다.그 성가시게 굴던 도깨비바늘을 옷섶에 일부러 붙여보고 싶다.
이 풀숲 길 하나쯤 그냥 두고 살 수는 없을까. 한촌도 대처를 닮아가야만 하는가. 그것만이 편하고 살기 좋은 길일까. 흐르는 세월 따라, 변하는 시대 따라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건가. 풀꽃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서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피워내야 하는가. 내 길이라고 찾은 길을 두고 조금씩은 후회도 하며 걸어오곤 했던 삶의 역정이 다시 돌아보인다. 마지막으로 삶의 봇짐을 풀어놓은 이 한촌에서조차도 그 후회의 이력을 되풀이해야 하는가. 아침마다 눈인사를 주고받던 풀꽃들은 이 심사를 알까. 오늘 회반죽 길 강둑에서 바라보는 한촌 마을은 푸른 하늘에 뜬 한 자락 먹구름만 같다. 덮여버린 것은 강둑 풀꽃 길만이 아니었다. 그 길을 걷던 내 가슴도 덮었다. 속절없는 먹빛으로 덮었다. 그래도 강물은 어제처럼 흐르고 있다.속없이 흘러가는 저 강물이 먹먹한 가슴을 틔워줄까. 저 윤슬이 맑혀줄까. ♣(2018.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