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꽃 이름 맞히기

이청산 2017. 9. 11. 12:51

꽃 이름 맞히기

 

오늘도 아침 산책길을 걷는다아침이면 걷는 강둑 풀숲 길이다이제 더위도 한 걸음 물러서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산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풀들은 솔솔 익어가고강물은 새맑게 여물어간다.

더우면 더운 대로 산산하면 산산한 대로 풀꽃들은 철 맞추어 피고지기를 거르지 않는다봄여름 강둑을 수놓던 애기똥풀금계국원추리개망초 꽃들은 서서히 고개를 숙여가고새 풀꽃들이 맑게 흐르는 강물과 어울리며 강둑을 꾸며 나가고 있다.

걷는 아침마다 모습을 새로이 하고가는 눈길마다 맵시를 새뜻이 한다오늘도 꽃들은 어김없이 갖은 빛깔이며 자태로 서로 어울리며 산책길을 정에 더욱 겹게 하고 있다그 정념을 혼자만 안기가 아까워 폰 카메라에 담는다.

관심을 함께하는 글 친구들의 에스엔에스 방에 올려 꽃들의 이름을 맞혀보라 한다나는 그 이름들을 알고 있노라며 자랑 치고 싶기도 했지만늘 마음을 함께 나누는 꽃들에 대한 내 사랑의 고백이기도 했다.

나처럼 자주 대하지 않아서일까이름을 다 아노라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영상 속에 들어있는 풀꽃을 다 맞추면 좋은 선물을 주겠노라며 유인 상품을 건다그 재미일까몇 사람이 달려들어 관심을 보인다.

부지런히 이름들을 대는데다 맞히는 사람이 없다가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사이에 평소에 풀꽃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회원 한 사람이 마침내 다 맞추어냈다며느리밑씻개달개비꽃도깨비바늘둥근잎유홍초.

저마다 다른 빛깔을 가지고 있는 꽃들이다어감이 좋지 않은 탓인지 사광이아재비라고도 불리는 며느리밑씻개는 머리가 분홍빛이고닭의장풀이라고도 하는 달개비꽃은 남색조그만 도깨비바늘은 노란색작은 나팔꽃 모양의 유홍초는 짙은 적황색으로 눈길을 끈다강둑이 어찌 현란하지 않을까.

이름을 다 맞힌 회원에게는 약속대로 괜찮은 수필집 한 권을 주기로 했다이름을 알고 보니 더욱 정겨운 것 같고비로소 나의 꽃이 되어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이름을 다 맞춘 회원은 두고두고 그 꽃을 새기고 싶을 것이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첫 장에 무명은 천지의 시초이고유명은 만물의 어머니다.(無名天地之始有名萬物之母)”라는 말이 나온다무명에서 천지가 시작되고그 천지에서 생겨난 유명이 만물을 태어나게 한다는 말이다무에서 유가 나고 그 유의 이름을 따라 만물이 존재의 의의를 갖게 된다는 뜻일 게다.

많은 사람들이 회자하는 김춘수 시인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고 했다이름을 불러주지 않은들 꽃이 아니랴만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비로소 내 마음 안에 들어왔다는 말일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태주 시인은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이것은 비밀.”(‘풀꽃2’)이라고 했다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이 비밀은사실은 온 세상에 다 간직되어 있는 비밀이다.

얼마나 아리땁고도 애틋한 비밀인가이름을 알고 나면 그 색깔이 더욱 선연히 보이고그 모양이 완연해지게 된다그러면 어찌 연인이 되지 않을 수 있으랴혹 짝사랑이라 할지라도 빛깔 짙은 그리움으로 남을 연인이다.

이외수의 소설 괴물에 보면 동비증(同悲症)’이라는 병 이야기가 나온다감수성이 예민한 식물은 자기를 아껴 주던 사람이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면 비탄에 빠져서 현저하게 발육상태가 저하되거나 건강상태가 악화되는 증세라고 한다.

인도의 과학자 찬드라 보스가 말한 금속의 지각능력을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어찌하였거나 사람이 아닌 것들과도 깊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말인 것 같다아침마다 걷는 길에서 철 따라 늘 대하는 풀꽃을 보면 내가 웃을 때는 저도 따라 웃는 것 같고내가 울적하면 저도 함께 심울해 하는 듯하다동감증이라 할까.

그래서 나는 비바람이 치는 날도눈서리가 덮여오는 날도 강둑 풀숲 길 걷기를 마다할 수가 없다저들이 맞는 비바람이며 눈서리를 함께 맞고 싶다그것에 몸을 추스르고 떠는 모습들도 나에게는 모두가 아릿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새겨져 오기 때문이다.

강둑 풀숲 길을 걷는다풀꽃들이 점점이 함초롬한 미소를 건네 온다.사람들에게 또 어떤 걸로 이름을 맞추어보게 할까내 사랑을 자랑해 볼까노자는 부자벌(不自伐), 제 자랑을 하지 말랐지만남모르는 사랑의 은근한 자랑도 또한 나만의 사랑법이라 여기고 싶다.

그 사랑그 자랑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풀꽃 산책길을 걷는다.

이 풀꽃 이름 좀 맞혀 보실래요?(20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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