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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병 일기(3)--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난병 일기(3)-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치료 스케줄은 병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병원 스케줄에 맞추어야 하는 것 같다. 두어 주 전에 전신 골 스캔을 했다. 방사성 의약품을 몸에 주사한 뒤, 전신의 뼈를 촬영하는 핵의학 검사라며 뼈에 뭐가 옮아져 있는지 어떤지를 본다고 했다. 페트 시티는 오늘로 날짜가 잡혀 먼 길을 달려가서 검사하고 왔다. 한 주일 후에 결과가 나온다 했다. 페트 시티는 몸속 세포의 대사 상태를 보여주는 PET와 몸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CT를 결합한 최첨단 영상 검사라 한다. 먼저 무슨 약물 주사를 먼저 놓았다. 그러고는 방을 하나 주면서 한 시간쯤 자라 했다. 자고 있으니 나오라 하여 좁다란 자리에 눕히더니 염하듯 몸을 묶고, 둥근 굴속으로 집어넣었다. 기계 도는 소리를 들..

청우헌일기 2026.06.13

난병 일기(2)-혼자만의 일이 아닌 걸

난병 일기(2)-혼자만의 일이 아닌 걸 아이들이 건강식품이며 영양제 같은 것을 잇달아 보내더니 오늘은 옷을 한 상자 보냈다. 먹으라고 보낸 것은 물론 병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옷도 그랬다. 병원 나들이에 간편하게 입으라며 가볍고 부드러운 바지며 점퍼 같은 것이었다. 먹을 것도 많이 있고 입을 것도 많이 있다고 해도 보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많이 드시고, 낡은 옷은 좀 버리고 새뜻한 것으로 바꾸어 입으시란다. 아비를 살펴 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게 여겨지면서도 가슴 한자리가 떨려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느 때는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간혹 무얼 부쳐 와 어디 어디에 쓰라고 했지만, 병 진단을 받고부터 그 마음 씀이 더욱 잦은 것 같다. 제 어미 없이 홀로 지내고 있..

청우헌일기 2026.06.13

난병 일기(1) -익숙한 기도

난병 일기(1)-익숙한 기도 의사는 모니터를 보면서 일상의 일인 듯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담담하고 싶었다. “……일단, 전신 골 스캔과 펫 시티를 보고 치료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의사의 말에 방점은 ‘치료 방법’에 있는 것 같았다. 병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는 어투다. 알겠다 하고 진료실을 나와 절차에 따라 골 스캔을 하고 펫 시티 예약 날짜를 받았다. 두어 달 전부터 오른쪽 가슴 한쪽이 가끔씩 뜨끔거렸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라서 저절로 삭아질 때를 기다리며 지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하니 무슨 장기나 몸 안 조직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계속 두었다간 더 어려운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 처방을 받으러 병원에 ..

청우헌일기 2026.06.13

들꽃은 들꽃대로

들꽃은 들꽃대로 강둑길을 걷는다. 날마다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강둑길을 걸으면 맑게 흐르는 강물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길섶에 피어나는 온갖 풀이며 꽃들을 보는 재미도 내가 강둑을 즐겨 걷는 큰 까닭이다. 물은 물대로 풀꽃은 풀꽃대로 모두 길동무다. 철마다 다 다른 풀이며 꽃이 피고 지고 하지만, 오늘 강둑길에는 금계국 노란 꽃잎이 하늘거리고, 갈퀴덩굴 환삼덩굴이 우거지고, 쑥대며 큰김의털, 소루쟁이가 머리를 흔들고, 개망초가 큰 키 위에 노란 꽃술 하얀 꽃잎을 앙증하게 피워 내고 있다. 길섶 강 쪽 가장자리 온갖 풀들이 자욱한 가운데 보일 듯 말 듯 언뜻 보이는 저 붉은 것은 무엇인가. 풀숲에 가려 있어 지나칠 뻔했다. 풀을 헤치고 들어가 보니 마치 접시꽃 모양 붉은 잎을 어여쁘게 펼치고 있다..

청우헌수필 2026.06.07

댑싸리 전설(5)

댑싸리 전설(5) 이웃 밭에 난 댑싸리 싹을 괭이로 긁어 매주었다. 콩밭 고랑에 댑싸리가 듬성듬성 났다. 고샅에 서 있던 댑싸리에서 날아간 씨가 퍼뜨린 것이다. 밭 옆에 작물도 아닌 것이 나서 씨를 퍼드리는 것이 성가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웃은 말이 없다. 고샅의 댑싸리를 떠나보낼 수 없는 내 속내를 모르지는 않는다. 아내가 댑싸리를 기르려 했던 자리기 때문이다. 아내가 만든 밭의 한 부분을 떼어 이웃에 부치라 하고, 아내는 밭과 담장 사이에 나 있는 고샅에 댑싸리 씨를 뿌렸다. 그 씨에서 싹이 새파랗게 돋아날 무렵 아내는 댑싸리도, 밭도 볼 수 없는 곳으로 멀리 가버렸다. 병 자리에서 댑싸리가 좀 자라거든 고샅 양쪽에 한 줄로 심어 달라 하고는, 그렇게 심어진 댑싸리를 아내는 볼 수 없었다...

청우헌수필 2026.05.20

그때가 오면

그때가 오면 해사하고도 화사하게 강둑을 수놓던 강둑의 왕벚꽃이며, 산을 무늬 짓던 산벚꽃이 다 지고, 꽃의 자리를 푸른 잎들이 차지하고 있다. 꽃이 피었을 때가 먼 옛적인 듯 아스라하다. 저 꽃 속에 있을 때는 나의 복지인 듯 아늑했는데, 푸른 잎들은 나를 내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달력이 봄을 알려 와도 벚꽃이 피기 전에는 나의 봄은 아니었다. 강둑을 걷는 아침마다 벚나무의 꽃눈을 보고 또 보았다. 아주 조금씩 눈을 떠가는 모습이 신기하고도 애가 타기도 했다. 달라져 가는 게 없다 싶을 때는 애가 탔지만, 하루 건너서 보면 조금은 눈을 틔운 것 같아 신기하고도 반가웠다. 올해만이랴, 해마다 그렇게 기다려 왔지만, 반갑게 기다리는 마음은 그제나 이제나 다르지 않았다. 그렇..

청우헌수필 2026.05.09

벚꽃 약속

벚꽃 약속 몇 달에 걸친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던 날, 의사는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불전佛典의 가르침에 깊은 관심을 두고 공부도 하고 있는 그가 나에게 준 책은 ‘마음을 잘 쓰는 법’을 이야기한 불교심리학에 관한 책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 책 뒤표지 속에 “귀한 인연에 감사드리며 몸도 마음도 늘 평안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벚꽃 보기 좋은 날 꼭 초대해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정중한 서명을 해놓았다. 진료를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봄이 되면 우리 마을 강둑에는 왕벚꽃이, 뒷산에는 산벚꽃이 찬란하게 피어나 꽃 대궐을 이룬다고 자랑한 적이 있었다. 그 현란한 풍경을 꼭 한번 보여드리고 싶다 했다. 내 그 말이 기억에 깊이 남았던 것 같다. “예, 잊지 않겠습니다...

청우헌수필 2026.04.20

모처럼의 외출

모처럼의 외출 지난 한 해 동안 나들이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저 동네 강둑을 거닐며 물을 보고 풀꽃을 보듬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사이에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갔다. 봄이 오고 있었다. 나에게도 봄이 좀 오려는가. 내 몸이 한창일 때 내가 운영해 오다시피 하던 문화 모임에서 아무 날 남도 문화 답사 예정이라는 기별이 왔다. 추진하고 있는 이가 참여 여부를 물어 왔다. 참여하겠다고 했다. 답사지는 저 남쪽 구례, 하동 쪽으로 가서 창연한 운조루 고택을 보고, 유명한 화개장터며 십 리 벚꽃길을 달려 박경리문학관도 탐방하고 올 것이라 했다. 십여 년 전에 가 본 곳도 있지만, 기꺼이 가겠다 했다. 봤다 한들 느낌..

청우헌수필 2026.04.06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나이라는 생물학적 제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스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볼 수도 있고,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라는 자기만의 삶의 속도를 중시하고자는 긍정적인 심리를 느낄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나는 늙어가고 있다.’라는 자각과 함께 노화에 대한 저항 심리를 볼 수 있다. 또한 ‘아직 나는 건재하다.’라는 사실을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선언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려는 심리적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높이는 그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노화를 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반향이 아닐까. 나이는 죄가 없다. 나이는 나이이지..

청우헌수필 2026.03.19

따사로운 저녁노을을 바라며

따사로운 저녁노을을 바라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떨어지는 건 기력이고, 멀어지는 건 사람들인 것 같다. 딴은 건강 관리를 한다고 해도 몸의 모든 기능이 전 같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다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사람 대할 일도 그렇다. 떨어지는 기력과 함께 활동량도 줄어들다 보니 찾아갈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드물어져 가고 있다. 기운을 추슬러 보겠다고 몸을 움직여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좋다는 걸 챙기고 챙겨주어 먹어 보기도 하지만, 그리 녹록지는 않다.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도 없다. 붙이도 모두 흩어지고, 권속도 떠나갔다. 남은 건 쇠잔해져 가는 기력과 구슬리기 쉽지 않은 외로움뿐이다.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살아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고단한 날 속에서 찾아갈 곳이 있고 찾아올 사람이 있다..

청우헌수필 202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