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사선死線을 넘다

이청산 2024. 1. 17. 17:13

사선死線을 넘다

 

  몸이 그토록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기침이 심하게 나고 머리가 빙 내둘리면서 나도 모르게 쓰러졌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쓰러지면서 벽에 얼굴을 부딪쳐 입술과 관골에 생채기가 지고 무릎에도 상처가 났다. 등도 무척 아팠다. 일어나려 했지만, 바닥을 짚을 힘이 없었다.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닌가 싶어 억지로 몸을 끌어 전화기를 잡고 119에 도움을 청했다. 구급차가 이내 달려왔다. 실려 가면서도 머릿속이 가물가물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도 이런 정신 상태를 거쳐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지역 종합병원에 이르러 응급실로 갔다. 증세가 어떻냐고 묻는데 몽롱해지는 정신을 힘들게 추스르며 아픈 데를 말했다.

  피도 뽑아 보고 엑스레이, CT도 찍었다. 독감에 나트륨, 전해질 부족 증세에 허리에 골절도 생겼다며 보호자 연락처를 물었다. 나에게 보호자가 있나? 아들 전화번호를 말해주었더니, 도시의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며 아들에게 연락한 모양이다. 잠시 후 아들이 큰 병원을 섭외해 놓았다고 연락이 왔다며 응급차를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차에 실려 가며 흐릿한 머릿속에서도 온갖 생각이 다 일었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하다니-. 몸속에 나트륨이 부족하다는 것은 소금기가 적다는 말이 아닌가. 환부鰥夫로 살면서 혼자 이것저것 챙겨 먹는 사이에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 영양의 불균형 때문에 쓰러지게 되고, 쓰러지면서 충격을 받아 허리뼈에 금이 간 것 같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아들이 사는 도시의 병원에 이르니,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아이들을 보고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환자복을 입고 독방 병상에 누워있었고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독감으로 인해 감염 우려가 있어 일인실에 배치됐다 했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혈압과 맥박, 혈당을 측정하고 링거에 주사를 넣었다. 매끼 2g의 소금과 함께 죽이 환자식으로 나왔다. 

 며칠이 지나자 여럿이서 쓰는 병실로 옮겨도 된다고 했다. 신장내과 치료가 끝나고 신경외과 치료로 넘어가 허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죽을 고비 하나를 넘겼다 할까.

  환자 네 명이 함께 쓰는 병실로 옮기자마자 수술실로 인도되었다. 허리 부분을 수술이 아닌 시술로 치료한다고 했다. 엎드리라고 하더니 허리 쪽을 무엇으로 찌르는 모양이었다.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아팠다. 두 군데를 찔렀다. 그 구멍을 통해 시멘트를 집어넣는다고 했다. 시멘트가 굳으면서 금 간 허리뼈가 붙는다는 것이다. 

치료를 마치고 났을 때는 온 얼굴에 땀범벅이었고, 죽었다 살아난 것 같았다. 병실로 돌아왔지만, 통증은 잦아들지 않았다. 허리 보호대를 주면서 누울 때 말고는 꼭 착용해야 하고 조금씩은 걸어도 된다고 했다. 며칠 후 퇴원하라고 했다. 조섭은 계속하여야 한다며 약을 한 보따리 주었다. 두 주일 후에 다시 와서 검진을 받으라 했다. 어쨌든 두 번째의 죽을 고비를 넘긴 셈이다. 

나 혼자 이 아픔을 어떻게 감당해 낸단 말인가. 퇴원하여 아이들이 사는 도시를 떠나오자니 혼자 빈집에 들어갈 내 모습이 불안도 하고 처량도 했다. 그런 내 심정보다 아이들이 더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딸이 백방으로 알아보니, 내가 사는 지역에 ‘재가노인복지센터’라는 것이 있더라 했다. 거기에 의뢰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의뢰도 해놓았다 했다. 관계 기관에도 지원받을 길을 알아보고 있다 했다.

  집에 와서 혼자 약을 먹으며 아픔을 다스리고 있는데, 복지센터에서 나와 내 상태를 묻고, 이어 관계 기관에서도 내 몸 상태를 점검하러 나왔다. 공단에서 나온 사람은 쉰 개도 넘는 문항을 가지고 질문하면서 신체 상태도 살폈다. 치매가 지원받기 가장 쉬운데 치매는 아니라며 돌아갔다. 십여 일 후에 등급이 나왔다며 공단에 와서 인정서를 받아가라 했다. 복지센터 관계자와 함께 가서 받아왔다. 

  수속이 완료되면 보호사 한 사람이 나와서 생활 전반을 돌봐 준다고 했다. 고적한 생활 속에서 하루에 잠시일지라도 누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적이 마음을 놓이게 했다. 특히 아플 때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두 주일 후 병원에 다시 가니 나트륨은 많이 채워졌다며, 약은 당분간 계속 먹어야 한다고 했다. 허리 부분에 대해서는 병원에 한 번 더 오라 했다. 내 병은 뭐가 부족한 것도, 허리가 탈 난 것도 모두 노쇠가 원인일 것 같다. 기력만 괜찮았다면 그런 일이 왜 일어날까. 누구나 겪어야 할 과정이긴 하지만, 내게 조금 빨리 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나는 사선의 고개를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요한 수속은 복지센터에서 해주기로 하고, 나는 그 조치를 기다렸다. 며칠 후 센터에서 보호사 한 분과 함께 찾아왔다. 반가웠다. 일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반가웠지만.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여간 반갑지 않았다. 고맙다 했다. 앞으로의 내 날들은 어떻게 이어질까. 상상만으로도 아픔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국가관리 노인이 되어 가고 있다 싶어 공허한 웃음기가 돌았다.

  몸도 성해야 하겠지만, 정신만은 맑게 살다가 가고 싶다. 보호사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나 자신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식이 새삼스레 꿈틀거린다. 이것저것 골고루 챙겨 먹고 신체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지. 건강한 신체에 깃들 맑은 정신을 위하여, 다음 사선과도 친해지기 위하여-.(202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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