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변화 앞에서

이청산 2024. 2. 3. 17:29

변화 앞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계기로 삶의 방향이나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에 비해 후가 긍정적, 희망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에 따라 행복해하거나 불행을 느끼기도 한다.

  나도 살아오면서 숱한 그 ‘계기’를 맞이하면서 울고 웃어왔다. 그 연속이 삶의 과정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들 그렇게 살아왔겠지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가 분별이 잘 서지 않는 변화 앞에서는 또 어찌해야 하는가.

  갑작스러운 입원을 하게 되었다. 홀몸이 되어 적요하게 살던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벽에 부딪히며 쓰러지는 충격으로 외상도 입으면서 뼈 한 부분에 금이 갔다. 구급차를 바꿔가며 실리기를 거듭하여 도시의 어느 큰 병원 병실에 눕게 되었다.

몸 한 부분에 부족하다는 영양소 한 가지가 혼절할 정도로 큰 병이 되게 할 줄은 몰랐다. 의식을 겨우나마 찾게 되기까지, 찾은 의식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한 섭생에까지 그리도 숱한 나날과 힘든 공력이 들어야 한다는 건 더욱 몰랐다.

  금이 간 뼈를 붙게 하는 일은 세상에 더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죽음은 차라리 아주 편한 일 같았다. 그 고통의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지만, 그 고통은 보호대를 힘들게 차고 지내야 하는 숱한 나날을 맞게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입원의 시간을 보내고 퇴원했지만, 병으로부터 해방은 결코 아니었다. 여느 때는 쓸 일 없었던 침대가 방바닥과 나를 떼어놓게 했고, 내 몸 추스르는 데 나라의 도움을 받기에 이르러야 했다. 퇴원 후 내 생존의 달라진 모습이다.

 

퇴원해 누운 집에 침대가 들어왔다. 어색했다. 몸이 바닥을 두고 어디를 떠다닌다는 말인가. 바닥과 몸은 하나여야 하는 줄로 알았었다. 침대는 내 몸을 바닥에서 분리했다. 그 분리가 편리를 가져다주는 데 이르러서 내 상식은 깨어지고 말았다. 또 하나의 바닥이 생겼다.

  침대는 제힘으로 일어나기 힘든 몸을 버튼만 누르면 일으켜 세워 준다. 들기 힘든 다리도 들리게 해준다. 참으로 편리했다. 내가 맞이한 새로운 문명이다. 그 문명은 나를 순치시켰다. 나는 점점 침대가 없이는 불편을 느끼는 존재가 되어갔다.

  이 병 다 나아도 침대와 함께하고 싶다. 포근한 쿠션도 나를 매료시킨다. 방바닥의 은근한 온기가 그립기는 하지만, 그건 전기의 힘을 빌리면 된다. 따뜻하고 폭신한 감촉에 나는 잘 길들고 있다. 퇴원이 나에게 준 커다란 편리다.

  나라 사람의 건강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등급을 주었다. 그에 따라 내 생존을 도와주는 이가 내게로 왔다. 제힘으로 치러야 할 의식주에 관한 일상사를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도와주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천성이 아주 너그럽고 헌신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거기에 걸맞은 사람을 가려 보내준 건가. 내 복으로 그런 사람을 만난 건가. 하루에 제한된 시간을 나와 함께하면서도 게 불편하고 부족한 게 없을 만치 일을 잘 치러낸다. 그저 행복할 뿐이다.

침대는 나를 편리하게 해주고, 나를 도와주는 그분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 편리와 행복은 퇴원한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행운이다. 이 행운 앞에서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웃고만 있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내 몸의 움직임을 왜 다른 것에 의지해야 하는가. 내 일상사를 왜 다른 이의 손길 속에서 치려 내야 하는가. 비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다행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다. 힘 별로 안 들이고 몸을 움직이게 해주는 건 다행 아닌가. 권속이 다 곁을 떠난 고적한 처지에서 도움도 고맙지만, 잠시나마 말벗이 있다는 것도 다행한 일 아닌가.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면 좋겠다. 입원의 혜택이라 해야 할지.

  머리를 흔들며 잃었던 혼을 다시 깨쳐본다. 지금 그 혜택이 나에게 왜 주어지는 걸까. 마냥 그 자리에 편히 머물라고 주는 걸까. 내 비록 황혼기를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만 내내 살아도 되는 걸까.

  그렇다. 어쩌면 그 혜택은 입원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계시일지도 모른다. 여느 때의 모습으로 돌아갈 힘을 길러주기 위해 내게 와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계시를 나는 알아채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내 의지만으로 일어날 수 있기를 애쓰고, 내 힘만으로 생활해나갈 수 있기에 공을 들여서 그렇게 될 때, 침대의 효능과 도움의 효용은 더욱 빛날 수가 있을 것이다. 설령 그 침대를 계속 쓰고, 그 도움과 함께 살아갈지라도 자력 의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

  침대로부터, 고마운 분으로부터 받는 도움들은 입원 전과 후의 가장 큰 변화다. 그 변화가 또한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의 입원 전 일상적 모습에 대한 상념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준다. 입원 전에는 지나쳤던 상념, 어떤 모습이 나인가, 무엇이 내가 해야 할 일인가.

  심신의 건강을 찾아가는 일이다. 찾아야 하는 일이다.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 일어나 조금씩 걷는다. 지난날의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간다. 걸음에 익었던 길이다. 푸른 하늘에서 노을을 곱게 그릴 밝은 햇살이 내리고 있다. ♣(2024.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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