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얼마나 달려가야

이청산 2023. 12. 10. 16:09

얼마나 달려가야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에는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푸르고 누르다가 떨어져야 할 철을 알아 모두 제 자리를 찾아내려 앉았다. 떨어지는 것은 잎새뿐만 아니다. 가지도 떨어진다. 뻗어 오르는 나무에서 가지도 제 할 일을 다 했다 싶으면 누울 곳을 찾아 내린다.

  저렇게 내려앉는 잎과 가지들 가운데는 줄기가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도 줄기의 손길을 무정히 뿌리치고 내렸거나 무참히 베어내진 것은 없을까? 줄기의 마음이야 어떻든 제 갈 길을 찾아 가버리거나 아프게 떨어져 나간 것들은 없을까, 줄기에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아, 저 나무 저 모습, 누가 가지 하나를 무자비하게 베어버렸나. 나무는 그 상처를 끌안은 채 숱한 세월을 두르고 있다. 둥치는 그 상흔을 감싸듯 주위를 제 살로 둘러치고 있다.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을까. 점점 깊어져 가는 상처만 오롯이 남아 있다.

  저 둥치는 얼마나 안타깝고 아픈 시간들을 보내어야 했을까. 그 아린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지난날 가지가 달려 있던 자리는 상처가 굳고 굳어 골찬 옹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픔만큼 모진 옹이로 맺혔을 것이다.

  이런 헤어짐의 아픔이 어디 나무며 그 줄기의 일일 뿐일까? 사람 살이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이에도 만남도 있고 이별도 있고, 태어남도 있고 죽음도 있지 않은가. 이별이든 죽음이든 자연으로 가는 일도 있고, 그렇지 못하게 가야 하는 일도 있다.

  어찌 가든 헤어진다는 것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순리에 따라가는 것이야 시간의 흐름 속에 그 아픔을 묻어갈 수도 있다. 헤어질 수도 없고 헤어져서도 안 될 이별이었다면, 그 아픔을 평생 안고, 아니 세상을 바꾸면서까지도 골수에 새긴 채 가기도 한다.

  이별로 보내든 사별로 헤어지든 가슴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면, 그 상처가 바로 아픔으로 굳어진 옹이가 아닐까. 그 아픔을 노래한 어느 가수의 「옹이」(조항조 노래)라는 노래가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사랑에 불씨 하나 가슴에 불 질러놓고 / 냉정히 등을 돌린 그 사랑 지우러 간다 / 얼마나 달려가야 이 사랑 내려놓을까 / 어디쯤 달려가야 그리움도 놓을까 / 너무 깊어 옹이가 된 사랑 때문에 내가 운다 / …… 빼지 못할 옹이가 된 사랑 때문에 내가 운다.”

  얼마나 달려가야,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가야 그 아픔을, 상처를 다스릴 수 있을까. 한생이 다하도록까지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것이라면, 너무 야멸찬 옹이다. 대중가요의 정서란 사랑과 이별의 정한이 주종을 이루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아픔을 안고 이입된 감정으로 목놓아 부르는 사람은 없을까.

  원곡 가수를 비롯한 유명 무명의 수많은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만큼 이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은 가사와 가락에 마음을 같이하면서 그 심금을 적시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 노래가 나의 심금도 아릿하게 울려주고 있다. 나에게도 이 노래에 마음을 담글 만한 무슨 사연이며 사정이 있다는 말인가. 있은들 어찌 말로 드러내고 싶으랴. 말이 아픔을 덧나게 할 것도 같아, 다만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으로 대상代償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이 노래를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의 「거울 속을 들여다보네」라는 시를 함께 중얼거려도 본다.

  “……‘세월’은 나를 슬프게 하려고, / 어떤 부분은 빼앗아 가고, 어떤 부분은 남겨 두네. / 그리고 한낮의 두근거림으로 / 이 저녁의 허약한 뼈대를 흔드네.”

  제목 그대로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읊은 시다. 저 말대로 세월은 나를 슬프게 하려고 어떤 부분은 빼앗아 가고, 나만 이리 동그마니 남겨 두었는가. 그럴 때 나는, 황폐해진 거울 속 자신의 피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차라리 / 내 심장을 저렇게 수척하게, 사그라지게 하셨더라면!”이라고 절규한 저 시인의 시구를 아릿하게 뇌어본다. 

  홀로 이리 서럽게 남아 있을 바에는 저 시인의 마음처럼 뛰고 있는 심장이라도 멎었으면 좋겠다. 세월은 나를 왜 이리 슬프게 하는가. 그렇지만 어쩌랴, 멎지 않고 사그라지지 않는 심장을. 노래로나 싸안을 수밖에. 내 가슴을 대상해 주기 바라면서-.

  가지가 잘려나간 자리의 옹이를 다시 돌아보며 산을 내린다. 어쩌면 내 가슴속의 옹이일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살아 있는 한, 그 옹이를 감싸주지 않고 어쩌랴. 그렇게 포근히 싸안아 보듬고 살다 살다 보면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깊은 옹이를 품고 있는 저 나무도 심장은 살아 있다는 아린 몸짓일까. 얼마나 달려가야 이 사랑 내려놓을까, 어디쯤 달려가야 그리움도 놓을까.♣(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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