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살고 싶다

이청산 2023. 9. 10. 12:22

살고 싶다

 

  아내는 살고 싶어 했다. 잘 살고 싶었다. 마당 텃밭이 좁다며, 사는 집이 편하지 못하다며 마음에 안 차 했다. 왜 그리 욕심이 많은가. 상추만 길러 먹을 만한 밭이면 족하지 않은가. 집이 좀 좁고 누추하면 어떤가.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그리 힘을 들이려 할까. 아내의 욕심에 나는 가끔 딴죽을 피우기도 했다.

  어디 남의 쉬고 있는 땅이라도 있으면 찾아가 그 땅을 쪼아 무어라도 심고 갈았다. 잘 가꾸든 못 가꾸든, 푸성귀가 자라든 풀이 무성하든 그저 심고 갈고 싶어 했다. 벽돌로만 얇게 쌓아 지은 집 말고, 콘크리트 옹벽에 철근을 넣어 집을 지어볼 수 없을까. 추위도 더위도 걱정 없는 집, 마당 넓은 집에서 살아볼 수 없을까. 그런 집을 짓고 싶어 했다.

  드디어 아내의 꿈이 눈앞에 이르렀다. 대출도 좀 내고, 아이들 도움도 받아 가며 전답 하나를 손에 넣었다. 마침 동네를 흐르는 강에서 하상河床 준설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모래며 자갈을 받고, 주문한 흙으로 땅을 돋우어 반쪽은 밭으로, 반쪽은 대지로 만들었다.

  밭에는 깨며, 들깨, 콩 들을 심고, 대지에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두꺼운 옹벽 집을 짓기 시작했다. 밤낮이 바뀌기를 거듭하는 사이에 밭에는 작물들이 자라고, 대지에는 철근 옹벽이 서기 시작했다. 이삼 년이 경과하면서 밭은 무성해지고 집은 제 형체를 이루어 갔다.

  그런 것들에 비해 아내의 몸은 자꾸 쇠약해져 갔다. 일에 힘이 들기도 했겠지만, 평소에 가끔씩 앓아누울 정도로 건강 상태가 그리 튼실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자기가 하는 일을 내가 잘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내가 하는 일을 아내가 그리 반기지 않는다고 가끔씩 다투기도 한 것이 마음의 짐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아내는 점점 잦아드는 듯한 건강 때문에 오히려 괜찮은 경작지며 쓸모 있는 집을 가지려 했음이 분명하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면 건강도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던 같다. 그래서 일에 더욱 열성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잘 살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때로는 나와 같이 지역에서 무슨 진료를 잘한다는 병원 의원들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사는 대도시의 큰 병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한의든 양의든 가리지 않고 진료를 받고, 한약이든 양약이든 그 처방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는 살고 싶었다.

  그런데 병원의 의사며 기계들은 아내의 병통을 분명하게 짚어 내지 못했다. 내가 속을 너무 썩여 얻은 심통心痛 때문에 병명도 명확히 잡을 수 없는 환우에 빠진 건 아닐까. 마침내 아내는 아이들 집으로 거처를 옮겨 긴 와병에 들어가야 했다.

  아내는 나와 함께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는 사이에 갖은 고초를 참 많이 겪었다. 아이들 키우랴, 살림살이 건사하랴 하는 일들은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 치더라도 나와 아내의 잘 맞지 않는 상념들 때문에 다투기도 많이 했던 고통이 가장 컸을지도 모른다. 순전히 나 때문에 내가 그 병통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 집에서 병원을 오가며 병과 싸우고 있던 아내는, 그러기를 달포가 되어 가던 어느 날부터 집의 무슨 열쇠며 통장은 어디에 있고, 무슨 문서는 어디에 갈무리해 두었다며 잘 찾아 챙기라는 말들을 자주 했다. 나는, 당신이 나아서 오면 될 일을 그런 걸 왜 나에게 말하느냐고 했다.

  또 어느 날은 전화하여 자기가 어떻게 되면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해주고, 무슨 일은 어떻게 처리하라는 말들을 했다. 문득 겁이 났다. 아내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빨리 나아서 돌아와야지 무슨 말을 하느냐며 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돌아오기만 하면 내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어 당신 말을 아주 존중하겠다며 어서 낫기만 하라 했다. 아내도 나아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몸이 자꾸 말을 안 들으니 어찌하면 좋으냐며 목메어 했다. 참 살고 싶다 했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내를 사경에 이르게 한 내가 어찌 살아 있으랴 싶기도 했지만, 아내 없이 사는 내 모습이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그건 다른 곳, 어디 먼 나라 사람 일일지는 몰라도 전혀 나의 일일 수는 없다. 하루를 먼저 가도 내가 먼저 가야지, 아내가 먼저 가다니, 그게 될 말인가. 아내가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내가 꼭 먼저 가야 한다.

  아이들의 손길을 부여잡고 누운 지 두 달이 되어 가던 어느 날, 아내는 아이들의 손길도 이 세상의 줄도 느닷없이 놓고 말았다. 내가 달려갔을 때 아내는 체온이 이미 다 빠져나간 뒤였다. 눈을 감은 아내의 손에 좋아하는 포도가 들려 있었다고 했다. 아내는 끝까지 명줄을 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죽어야 할 일이었다. 아내는 자기가 심은 들깨가 무럭무럭 자라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밭도 뒤로 하고, 도색만 하면 짓기도 끝나는 집에 한 번 누워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내가 그리 원하던 걸 내가 보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아내 대신 내가 한 항아리의 재가 될 일었다. 무참히도 내가 살아남고 말았다.

  아내의 ‘살고 싶음’은 무엇인가. ‘죽어 감’이었다. 그렇기에 죽음을 물리치려고, 살아보려고 그토록 애를 썼던 게 아니었을까. 나의 ‘죽고 싶음’은 무엇인가. ‘살아 있음’이다. 살아 있기에 죽고 싶은 게 아닌가. 살고 싶은 사람은 그리 애처롭게 죽어 가고, 죽고 싶은 사람은 이리 서럽게 살아남았다.

  ‘살고 싶음’의 아내여! 그쪽 세상에서 그 삶 잘 이어가고 있는지? ‘죽고 싶음’의 나는 왜 이리 아프게 살아 있는지? 살고 싶음의 ‘죽어 감’이여, 죽고 싶음의 ‘살아 있음’이여~!♣(20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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