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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겨울

나무의 겨울 겨울 산에 찬 바람이 분다. 넓은잎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발가벗은 몸으로 서 있다. 가을부터 한 잎 두 잎 떨어져 내리던 나뭇잎이 겨울바람을 맞으며 몇 안 남은 것마저 다 떨어뜨리고 있다. 저러고도 이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을까. 군걱정이다. 나무는 잎 다 떨굴 이 겨울을 위하여 한 해를 살아온지도 모른다. 나무는 늙지 않는다. 해마다 청춘으로 산다. 그 청춘을 위하여 이 겨울은 새로이 시작하는 계절이다. 입은 것은 모두 벗어버리는 것으로 새로운 시절을 기약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맨몸으로 하늘을 바란다. 맨살이 향하는 곳은 오직 하늘이다. 온몸으로 하늘을 안는다. 이 나무를 보고 시인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입는데/ 나무는 옷을..

청우헌수필 2020.01.21

나무는 말이 없다

나무는 말이 없다 겨울 산을 오른다. 입고 있던 것을 다 벗어버린 나무들 사이로 찬 바람이 지난다. 상수리나무든, 떡갈나무든, 물푸레나무든 모두 맨모습으로 빨갛게 섰다. 하늘 향해 맨살을 드러내놓고 있어도 나무는 떨지 않는다. 얼지도 않고 이울지도 않는다. 산이 있기 때문이다. 산의 무엇을 믿는가. 산은 오직 뿌리를 내리게 해줄 뿐이다. 잎이 나면 나는 대로 미소지어 주고, 꽃이 피면 피는 대로 이뻐해 줄 뿐이다. 잎이 언제 돋으라 한 적도 없고, 꽃을 어떻게 피우라 한 적도 없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뿐 아니다. 그 꽃과 잎의 빛깔이 바래고 말라 떨어져도 애타 하지 않는다. 그 떨어진 꽃이며 잎을 마냥 감싸 안아 줄 뿐이다. 그 꽃과 잎들이 품을 파고들면 조용히 품어 때가 되면 소곳이 세..

청우헌수필 2020.01.12

나무, 그대로 두자

나무, 그대로 두자 나무가 제 발로 산에서 내려올 리가 없다. 산은 나무의 태생 고향이요, 집이요, 보금자리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가 들판에 내려앉아 있고, 길가에 나앉아 있고,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 탓이다. 사람들이 산의 나무를 들어다가 저들이 일하는 들판에도 앉히고, 저들이 다니는 길가에도 앉히고, 저들이 사는 집 뜰에도 앉힌다. 사람들은 나무를 저들이 차지한 땅에 들이기를 좋아한다. 어느 때는 못 들여서 안달도 한다. 사람들은 나무에게 왜 그러는 것일까. 아껴주기 위해서인가. 치장을 위해서인가. 이득을 위해서인가.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리하든, 어떻게 해주든 나무의 본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나무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무는 사람의 ..

청우헌수필 201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