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글공부 마음공부

이청산 2019. 11. 21. 13:02

글공부 마음공부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과 마주 앉아 마음을 서로 나누며 공부를 해온 지 학기도 바뀌어 어느덧 한 해가 다 되어가고 있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글의 서술과 구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 바탕을 갖춘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글을 전혀 써본 적이 없지만, 이제라도 익혀서 써보겠다고 했다.

모두 반가운 사람들이다. 물질적인 가치를 제일로 치는 풍조가 만연한 요즘 세상에 무언가 정신적인 목마름을 느껴 그 해갈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글쓰기에 관한 관심 하나만으로도 모두가 한마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잘 쓸 줄도 모르고 글 쓰는 기술을 가르치는 일에는 더 자신이 없었지만, 수필 창작 강좌를 개설할 테니 나와 달라는 어느 도서관 평생교육 프로그램 담당자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오랜 세월 동안 교단생활을 하면서 글을 써온 이력을 사준 것 같았다. 글쓰기에 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글을 주고받으며, 글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이게 했다. 그 기대는 어그러지지 않았다.

공부 방법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내가 아는 것을 혼자 털어놓고 듣는 사람이 익히게 할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능력과 알고 있는 지식을 서로 나누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모두 글을 한 편씩 써서 서로 나누어보면서 좋은 부분은 함께 받아들이고, 다듬어야 할 부분은 더불어 깨우쳐 보자는 것이다.

순번을 정하여 온라인을 통해 쓴 글을 미리 제출하고. 모두 먼저 읽어 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한 주에 한 번 만나는 날에 그 글을 다시 함께 읽으며 글쓰기에 관한 지식이며 그와 관련한 삶의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는데, 모두 성심을 다 모아주었다. 글을 제출해야 할 날짜를 어기는 사람도 없고, 공부하는 날은 웬만한 사정 아니면 빠지는 사람도 없었다. 하나하나 하는 이야기마다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자기의 생각을 풀어내는 일도 골똘히 하려 했다.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진땀 흘려 걷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같기도 했고, 마루를 향하여 산을 한발 한발 힘주어 오르는 사람의 모습 같기도 했다. 사는 모든 일에 이렇게 임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을 이렇게 해나갈 수 있다면 사는 일이 보람되고도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회원이 자기 차례를 맞아 공부할 글을 보내왔다. 그야말로 처음 써보는 글 같았다. 일요일 야외에 나가서 보이는 사람들과 그 정경을 그린 내용인데, 마치 시처럼 행을 뚝뚝 잘라 조각난 내용들을 어법에도 조금씩 어긋나게 늘어놓았다.

보고 느낀 것을 나름대로는 열심히 표현해 보려 한 것 같지만, 어떤 말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심하게 했다. 공부 시간을 맞이했다. 우선 모든 일을 무심히 보지 않고 눈여겨 새기려 하는 품이 아주 좋다며 칭찬해 주었다. 어긋난 어법은 어떻게 바꾸는 게 좋겠다는 말과 함께, 시는 행과 연의 구분을 통하여 시상을 풀어나가는 것이라면, 수필을 비롯한 산문은 문단을 적절하게 얽어 짜서 생각과 느낌을 엮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매체의 스크린을 통해 실연으로 보여주었다.

글을 낸 사람과 더불어 모든 이들이 열심히 경청하면서,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동자에 맑은 빛을 모으기도 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다음 공부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공부 대상이 되었던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혹 내가 마음을 아프게 한 건 아닌가. 가시가 하나 목구멍에 걸린 것 같았다.

그에게 전화했더니, 묻기도 전에 바쁜 일이 있어서 못 나갔다.’라며 다음 시간엔 나가겠다고 했다. ‘다른 까닭은 없지요?’라며 웃음을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별다른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내 말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본인의 자격지심 때문에 못 나오는 것 같다.’라고 해도 내 마음은 편치 않다.

자격지심이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니던가. 다른 사람 글보다 자신의 글이 못나 보이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져 못 나오는 것이라면, 설령 내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북돋우어 주지 못한 성취동기에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수필은 작가의 인격과 내면의 정신을 진실하게 드러내는 특수한 글쓰기이기 때문에, 수필 공부는 문학 공부 이전에 먼저 마음공부가 되어야 한다(신재기, 형상과 교술 사이)고 한 어느 수필 평론가의 지론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고 보면 글공부 이전에 마음공부가 되게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의 글공부에 용기를 돋우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했던가.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다. 오로지 이를 통한 자존감만이 사람들이 당신을 존중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한 도스토옙스키의 말이 그에게 소용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나에게 중요한 전언을 남긴 것 같다. 수필 공부는 마음을 다독거려야 하는 공부라는 것을.

다음 주 공부 시간에는 문장 공부 이전에 더욱 진솔한 삶의 이야기부터 따뜻하게 나누어야겠다고 마음에 너테를 덧입히며 그의 빈자리를 보듬는다. 글이 곧 마음이고, 글공부는 곧 마음공부임을 다시 돌이키며-.(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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