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배 268

나무의 외로움

나무의 외로움 나무는 외로움을 모른다. 외롭다거나 외롭지 않다는 걸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외로운 것인가, 혼자 있는 것이 외로운 것인가, 여럿 중에서 혼자 외따로 되는 것이 외로운 것인가. ‘혼자’라는 게 무엇인가. 그게 바로 저 아니던가. 나무는 애초에 한 알의 씨앗으로 땅에 떨어졌다. 그때부터 혼자다. 오직 흙과 물이 보듬어줄 뿐, 누가 저를 태어나게 해준다거나, 태어난 것을 자라게 해주는 손길이 따로 있지 않았다. 혼자서 싹이 트고 혼자서 세상으로 나왔다. 세상에 나와서도 혼자다. 바라볼 수 있는 건 하늘뿐이었다. 하늘을 바라면서 태양의 볕살을 쬐고 바람을 안을 뿐이었다. 뿌리에는 흙과 물이 있고, 가지에는 햇살과 바람이 있어 그것들을 의지 삼아 몸피를 불려 나갔다. 그랬다. 흙과 ..

청우헌수필 2021.04.05

나뭇잎 삶

나뭇잎 삶 오늘도 산을 오른다. 진달래 작은 몽우리가 수줍게 솟아오르고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터뜨리고 있다. 채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이 앙상한 가지 아래서 대롱거린다. 이제 저 꽃과 더불어 잎의 움이 돋고, 마른 잎은 새 움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잎은 나뭇가지에서 움이 트는 것으로부터 한살이를 시작한다. 가지도 애채로부터 생애를 시작하지만, 애채가 힘을 가지게 되면서 움을 돋우고 그 움에서 애잎이 피어난다. 애잎은 연녹색을 띠면서 조금씩 자라나 진녹색으로 살빛을 바꾸며 세상을 차츰 푸르게 만들어 간다. 애잎은 마침내 짙푸른 큰 잎이 되어 꽃의 어여쁜 모습을 더욱 곱게 해주고, 열매가 맺히면 튼실히 자라게 해준다. 찾아오는 친구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제 난 가지를 싸안아 ..

청우헌수필 2021.03.22

모성의 희망

모성의 희망 어느 낭송가가 낭독하여 유튜브에 올린 나의 글 ‘어느 어머니의 유언’이 조회 수가 5만 회를 넘어 6만 회를 바라보고 있다.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유튜버의 영상이 보여주고 있는 수십만, 수백만 조회 수에 대면 미미한 숫자라 할 수 있지만, 수필 한 편이 그토록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들 한다. 그 관심은 글 내용 때문일 수도 있고, 낭독 효과 때문일 수도 있고, 두 가지 모두가 그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감 짙은 목소리로 호소력 있게 읽어 가는 그 낭독 속의 글은 어떤 사연을 담고 있기에 흔치 않게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일까. 사십 대 초반에 공무원이던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35년간을 홀로 오직 일녀삼남 자식들만 바라며 살아오다가 난소암 투병 ..

청우헌수필 2021.03.06

고사목 의자

고사목 의자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내가 산을 오르는 일은 물을 마시고 숨을 쉬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 그런 곳을 골라 찾아와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일상으로 오를 수 있는 산이 내게 있다는 것이 여간 생광스러운 일이 아니다. 바람 소리, 새소리와 함께 산을 오르노라면, 온갖 나무들이 철마다 단장을 달리하면서 언제 봐도 반가이 맞아준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생강나무, 벚나무, 소나무, 노간주나무……, 내가 손을 흔들기도 전에 저들이 먼저 수많은 손을 흔들며 나를 맞아 준다. 산의 모습이 정겹다. 하늘 향해 싱그럽게 죽죽 뻗으며 서 있지만, 그중에는 잎을 다 지운 채 강대나무가 되어 서 있는 것도 있고, 그 몸통마저도 땅에 누인 것도 있다. 삶과 죽음이 함께 살고 있다. 생사를 따로 ..

청우헌수필 2021.02.20

코로나 설날

코로나 설날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설날이다. 아이들은 아비 어미를 찾아올 수 없고, 아비는 어버이의 차례를 모시러 갈 수도 없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코로나19’라는 모질고도 질긴 괴물 탓이다. ‘설날’의 ‘설’은 ‘설다’ 즉 ‘낯설다’에서 왔고, 그래서 설날은 ‘낯선 날’, ‘익숙하지 않은 날’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더니, 올 설날이야말로 어느 정당에서 말하듯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설날’이 될 것 같다. 명절은 그리움의 날이다. 타향 객지에 나가 사는 붙이가 그립고, 고향 집에서 애태우고 계실 부모님이 그립다. 명절 하루라도 저승에 계시는 어버이를 이승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에 더욱 그립다. 그런데도 ‘안 만나고 안 모셔야 효도’라는 구호가 참으로 해괴하다. ‘설날’의 어원을 ‘섧다’에서 ..

청우헌수필 2021.02.14

꿈이 가는 길

꿈이 가는 길 꿈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청운의 꿈, 그 희망이 솟고 활기가 넘치는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아니라도 봄날의 꽃잎 같고, 설한의 잉걸불같이 곱고도 따뜻한 꿈이라면 또 얼마나 생기로울까. 나이 탓일지, 몸의 기운 탓일지는 몰라도 요즈음 잠자리에 누웠다 하면 꿈이다. 눈만 감으면 몽롱한 꿈이 오래된 영사기의 낡은 필름처럼 어지럽게 돌아간다. 흘러간 세월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거나 몸담았던 장소들이 스쳐 간다. 몇 조각 남은 영상들이다. 꿈에서 벗어나거나 잠을 깨고 나면 거의 지워지고 아련한 자취만 머릿속을 가를 뿐이다. 영상 속의 사람들은 거의가 서러운 사람들이거나 어려운 사람들이다. 만나서 서럽도록 애틋한 사람들인가 하면, 만나면 서로 힘들기만 한 사람들이다. 어머니의 글썽이는 ..

청우헌수필 2021.01.22

세상 여행

세상 여행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간다. 그들이 가는 속을 내가 살고 있다. 그들이 갈 때 어떻게 가는가. 보고 듣고 겪고 느낄 많은 것을 만들고, 주고, 남기고 간다. 세상을 둘러보면 온통 그것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다. 하늘이며 땅이 그렇고, 산이며 물이 그렇고, 나무며 풀이 그렇고, 꽃이며 열매가 그렇다. 어디 그뿐이랴. 세상 만물, 만사가 그것들이 만들지 않은 것이 없고, 남기지 않은 것이 또한 없다. 그것들에 의해 또 많은 것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 세상의 온갖 희로애락을 다 겪게 한다. 사람들은 그 속을 여행하기에 걸음이 분주하다. 하늘도 땅도 보고 밟아야 하고, 산도 물도 오르고 젖어야 한다. 나무와 풀을 보며 아늑함을 느끼기도 해야 하고, 꽃이며 열..

청우헌수필 2021.01.10

삶을 잘 사는 것은

삶을 잘 사는 것은 세월이 흐르고 있다. 흘러가면서 남긴 자취가 내 안에 쌓여간다. 누가 불러서 오는 것도 아니고, 등을 밀어서 가는 것도 아닌 게 세월이지 않은가. 그렇게 자연으로 흘러오고 흘러가면서 굳이 자취를 남기는 세월이 가시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쌓이는 세월의 자취가 몸피를 더해간다 싶을수록 그 자취에 남은 세월이 이따금 돌아 보인다. 돌아보아 따뜻하고 즐거운 일만 있다면야 얼마나 아늑한 일일까. 그렇지 않은 일이 돌이켜질 때면 아린 마음을 거두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어느 날 서가를 뒤지다 보니 오래 손길이 닿지 않아 머리에 먼지가 까맣게 앉은 책이 보였다. 언제 적의 책인가 싶어 빼어보니 이십여 년 전에 산 것이다. 뒤쪽 속 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ㅇㅇ년ㅇ월ㅇ월 ㅇㅇ와 함께 서울역에서..

청우헌수필 2020.12.24

자연을 알게 해주소서

자연을 알게 해주소서 책을 읽다가 보면, 눈길을 딱 멈춰 서게 하는 구절이 있다. 그런 구절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붙박고 싶게 한다. 그 구절이 주는 공감과 공명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읽을수록 편안해는 마음속에 계속 머물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도 즐거운 일인가.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고맙고도 포근한 일인가. 사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 안아주기도 하고 밀어주기도 하는 이를 만난다면 얼마나 따뜻하고도 생기로운 일이 될까. 어떤 책의 어느 한 구절은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난 듯한 희열을 느끼게 하고 위안을 얻게도 한다. 그 구절을 어찌 떠나고 싶겠는가. 그 감동에서 깰까 싶어 어찌 다른 구..

청우헌수필 2020.11.23

어리적어서 어쩔꼬

어리적어서 어쩔꼬 어쩌다 지나온 삶을 한번 돌아보는데, 문득 ‘어리적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모님은 나를 두고 가끔씩 ‘어리적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군대엘 갈 때도,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딜 때도 이따금 엷은 미소와 함께 나를 쳐다 보시며 ‘어리적어서 어쩔꼬?’라 하셨다. 나중에 그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지만, 어떤 곳에도 그런 말은 없었다. 가장 가까운 말이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를 뜻하는 ‘어리석다’였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하는데, 설마 자식을 두고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을까. ‘어리적다’와 ‘어리석다’의 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생각할 때마다 나를 보며 미소짓던 부모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여덟 살 때까지 막내로 자라면서 부모님의 온갖 귀염을 다 받았다...

청우헌수필 202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