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꿈이 가는 길

이청산 2021. 1. 22. 14:37

꿈이 가는 길

 

  꿈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청운의 꿈, 그 희망이 솟고 활기가 넘치는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아니라도 봄날의 꽃잎 같고, 설한의 잉걸불같이 곱고도 따뜻한 꿈이라면 또 얼마나 생기로울까.

  나이 탓일지, 몸의 기운 탓일지는 몰라도 요즈음 잠자리에 누웠다 하면 꿈이다. 눈만 감으면 몽롱한 꿈이 오래된 영사기의 낡은 필름처럼 어지럽게 돌아간다. 흘러간 세월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거나 몸담았던 장소들이 스쳐 간다. 몇 조각 남은 영상들이다. 꿈에서 벗어나거나 잠을 깨고 나면 거의 지워지고 아련한 자취만 머릿속을 가를 뿐이다. 

영상 속의 사람들은 거의가 서러운 사람들이거나 어려운 사람들이다. 만나서 서럽도록 애틋한 사람들인가 하면, 만나면 서로 힘들기만 한 사람들이다. 어머니의 글썽이는 눈물을 보면서 숨죽여 울기도 하고, 맺힌 게 많은 사람을 만나 진저리를 내기도 했다. 만남이 기뻐서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근무지에 부임한 첫날이었다. 내가 근무할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언덕도 나오고 벼랑도 맞서고, 녹슨 원통 같은 게 앞에 놓여 그 속을 기어들기도 하면서 헤맸지만, 아무리 헤쳐가도 길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찾아가다가 보니 임무를 수행해야 할 시간이 다 끝나버렸다.

  어느 날은 검은 옷을 입고 음흉한 미소를 띤 사람이 내가 자는 방문 앞에 나타났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다시 한번 소름 돋는 미소를 흘리더니, 문 안으로 성큼 팔을 집어넣어 걸린 문고리를 벗기려 한다. 제대로 터지지도 않는 비명과 함께 몸부림치다가 깼다. 나를 딴 세상으로 데려가기 위한 사람이던가.

  길을 가다가 시궁창에 빠져 온몸이 오물투성이가 되는가 하면, 친구라고 만났던 사람이 야멸차게 돌아서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도 하고, 까마득히 지워져 있던 인물이 불쑥 나타나 평온을 마구 깨트리기도 했다. 그 파란의 기억 조각 너머로 가라앉을 듯한 피로감이 젖어오기도 했다.

  나에게는 기쁘고 즐겁고, 환희와 활력이 넘치는 꿈이 왜 찾아오기가 어려운 걸까. 왜 그리 아쉽고 아리고 안타깝고 힘든 꿈이 주로 오는 것일까. 내 살아온 이력과도 무관치 않은 것일까? 내가 그토록 순탄하고 평안하게 오지 못했던가.

  사실, 내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노라면 따뜻하고도 떳떳하게, 편안하고도 영예롭게 살아온 날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나를 위해 갖은 인내와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고, 나로 인하여 불편과 어려움을 겪었을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면구하고도 염치없이 살아온 세월을 돌아볼수록 몸과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어쩌면 감은 눈 속으로 어지럽게 떠오르는 내 꿈이란 그런 인과에 대한 응보인지도 모르겠다. 그 업보가 오랜 세월을 두고 내 속에 쌓이고 쌓여 오다가 더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자 터져 꿈으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잠들어서도 꿈을 꾸어 마음이 쉴 사이가 없고, 깨어나면 몸의 감각이 열려 사물과 접하면서 날로 마음의 다툼을 일으킨다. (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 與接爲構 日以心鬪, 莊子齊物論)”라고 한 장자(莊子)의 한 구절은 그런 나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잘 때는 어지러운 꿈결에 젖느라 마음 편히 가눌 수 없고, 깨어서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따라 갈등을 일으키다가, 다시 잠자리에 들면 또 어지러운 꿈속을 허덕이고……. 그런 험한 고리를 돌고 도는 것이 나의 삶이란 말인가.

  어찌 살아야 할까. 어찌해야 그런 꿈 안 꾸고도 잘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장자는 진인(眞人)을 앞세워 잠잘 때는 꿈을 꾸지 아니하며, 깨어서도 걱정하는 일이 없다. 정신은 순수하고, 혼은 지치지 않는다. 허무 염담하여 자연의 덕과 합치하고 있다.(其寢不夢 其覺無憂 其神純粹 其魂不罷 虛無恬惔 乃合天德 莊子刻意)”라며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정신이 맑고 혼이 생기가 있으며 허무하고 염담하면 자연의 덕과 맞아 잠을 자도 꿈이 없고 깨어서도 근심이 없게 된다는 뜻이겠다. ‘허무염담(虛無恬惔)’에 답이 있는 것 같다. 비어서 아무것도 없고[虛無],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恬惔]을 가지면 잠자리 꿈자리도 거침새가 없이 편해져서 자연의 삶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진인의 경지를 내 어찌 바라고 따를 수 있을까. 상념이 다시 아득해진다. 결국, 내 꿈이 가는 길이란 내가 살아온 길에 다름 아닌 것 같다.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꿈은 항상 내 잠과 함께할 것이지 않은가.

  오늘도 해거름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아늑하다.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발가벗은 몸이 되어 파란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잎들이 풋풋하고 치렁하던 때며 색색 빛깔로 물들이던 시절을 모두 벗었다. 그 모습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탈속한 선인 같기도 하다.

  서 있는 품이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그 모든 것을 떨칠 때 한때의 집착이며 미련도, 욕망이며 근심도 다 내려보냈을 것 같다. 그런 것을 다 떨쳐버렸다면 저 나무의 꿈인들 얼마나 고요하고 맑을까, 그 잠은 또 얼마나 아늑할까.

  오늘 밤 꿈속에서는 저 나무를 만났으면 좋겠다. 저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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