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삶을 잘 사는 것은

이청산 2020. 12. 24. 15:00

삶을 잘 사는 것은

 

  세월이 흐르고 있다. 흘러가면서 남긴 자취가 내 안에 쌓여간다. 누가 불러서 오는 것도 아니고, 등을 밀어서 가는 것도 아닌 게 세월이지 않은가. 그렇게 자연으로 흘러오고 흘러가면서 굳이 자취를 남기는 세월이 가시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쌓이는 세월의 자취가 몸피를 더해간다 싶을수록 그 자취에 남은 세월이 이따금 돌아 보인다. 돌아보아 따뜻하고 즐거운 일만 있다면야 얼마나 아늑한 일일까. 그렇지 않은 일이 돌이켜질 때면 아린 마음을 거두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어느 날 서가를 뒤지다 보니 오래 손길이 닿지 않아 머리에 먼지가 까맣게 앉은 책이 보였다. 언제 적의 책인가 싶어 빼어보니 이십여 년 전에 산 것이다. 뒤쪽 속 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ㅇㅇ년ㅇ월ㅇ월 ㅇㅇ와 함께 서울역에서 사다.”

  모년 모월 모일 배웅하는 아들과 함께 서울역에서 타고 갈 차를 기다리며 책을 샀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의 기억이 구름 속에서 어슴푸레 나타나는 그믐달같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볼일도 보고, 혼자 힘들게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도 만나 보기 위해 서울을 갔었다. 볼일을 마치고 아들과 함께 서울역으로 와서 저녁을 함께 먹고 내려갈 차를 기다리면서 서점에 들러 책을 하나 샀다. 아들의 손길을 뒤로하며 집으로 향했다.

  아직 젊은 시절이라 현직의 일이 녹록지 않을 때였다. 아들과 함께 산 그 책은 만만히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어서, 언제 겨를이 주어지면 다잡아 읽으리라 하고 서가 깊숙이 꽂아두었다. 그걸 여태껏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이다.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니기도 했지만, 나의 나태도 한몫했을 것이다.

  책값을 보니 그 당시로써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한창 공부 중인 아들은 용돈에도 매우 궁색했을 것이다. 몇 푼 용돈을 쥐여주면서 좀 더 넉넉히 주지 못해 마음이 걸렸었다. 그러면서도 적잖은 돈을 들여 그 책을 사고, 그러고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잘 읽지도 못할 그런 비싼 책을 사면서도 아들 용돈은 왜 푼푼이 주지 못했던가. 그렇게 산 책이라면 열심히 읽었어야 할 게 아닌가. 허식과 아집에 차 있던 이 아비가 야속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를 아들을 생각하니 얼굴도 달아오르고 마음도 찔려온다.

  지금 중년에 든 그 아이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름의 성취를 하여 제 일을 잘해 나가고 있다. 이제야 그 책을 펼쳐 읽노라니 아들의 모습이 다시 켕겨 온다. 그때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주지 못한 것이 민연스러울 뿐이다.

  그뿐이랴, 내 살아온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 온전한 사랑을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오히려 나로 인해 불편과 고통을 느껴야 했던 사람이며, 그런 일들도 많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나의 일을 버젓하게 이루기라도 했는가. 그렇지도 못했던 것 같다.

  오직 나만을 아는 욕심과 집착 때문에 남을 돌아볼 줄도 몰랐고, 그런 것만을 최선으로 알았던 아집 때문에 남모르는 고통도 번민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무슨 일인들 떳떳하게 이룰 수 있었으랴.  

때에 안정되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면 슬픔이나 즐거움은 끼어들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예부터 이르는 하늘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인 것이다.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古者謂是帝之縣解, 莊子大宗師)”라 한 성인의 말씀을 새삼스레 뇌어 보는 일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왜 주어진 처지며 운명에 순응하면서 미음을 편안히 열고 살지를 못했던가. 지금은 마음의 해방을 누리고 있는가. 아직도 수습 안 된 정신이 떨쳐내지 못한 아집의 켜들을 적잖이 움켜쥐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남긴 자취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얼굴 붉히며 돌이키는 젊은 시절의 옹졸했던 언행과 함께 조금은 그 안시(安時)’처순(處順)’에 마음자리를 걸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다시 장자의 말씀을 따라 가본다.

  “대자연은 육체를 주어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며,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주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삶을 잘 사는 것은 곧 자기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길인 것이다. (夫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故善吾生者 所以善吾死也, 莊子大宗師)”

  나의 삶도 참 수고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과 아집 때문에 사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늙으면 절로 편안해지는 걸까? 대자연이 이제 세월을 나에게 쌓아주어 늙게 한 것은 나를 힘들게 한 것들을 버리라는 말이 아닐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맞는 죽음은 얼마나 편안한 쉼이 될까.

  삶을 잘 사는 것이란 모든 걸 비우고 사는 것이라는 말이겠다. 무심으로 무위로 살라는 말이겠다. 그러면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겠다.

  과연 나는 얼마나 잘 비울 수 있을까. 그냥 아무 걸림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잘 살고 싶다. 잘 죽고 싶다.(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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