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생동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넘치는 생기로 천지를 요동하게 하고 있다. 그 생기의 빛깔은 진초록이다. 초록보다 더 진한 진초록에는 빛깔의 심도만큼이나 힘찬 생명의 박동이 울리고 있다. 오월은 울림의 계절이다. 
오월의 산은 온통 그 박동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오월의 산을 오르자면 눈보다는 귀를 더 크게 열어야 한다. 세고 여린 박자를 섞어가며 들려오는 그 소리는 박진감 있는 행진곡 같기도 하고, 웅혼한 교향곡 같기도 하다. 그 행진곡에 발맞추며 그 교향곡에 가슴을 펴고 산을 오르다 보면 몸도 어느새 그 박동 소리에 젖어버린다. 산이 울려내는 소리와 내 심장의 소리는 하나가 된다. 저 잎새 저 빛깔이 어찌 저리 부시도록 푸른가. 마치 내 몸이 내는 빛깔인 것 같다. 오월은 살고 싶은 계절이다. 어떻게 살아도 푸르러질 것만 같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앉아도 누워도 어떤 몸짓을 부려도 마냥 생기를 더해갈 것만 같다. 저 엽록소가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다. 오월은 삶의 계절이다. 이 오월에 그리움은 또 어인 일인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도 한 계절이다. 그 잃어버린 것이 그립다. 그것은 어디에 가 있을까.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는 상실감이 그리움을 더 간절하게 한다.
오월은 이리 박동하고, 이리 푸른데, 나도 오월인가, 오월처럼 살고 있는가. 오월처럼 산 적이 있었던가. 있었을 것이다. 그 박동이 있었기에 시간의 산을 넘고 세월의 강을 건너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지금은 한 생애를 정리하고 새롭게 살고 있다 하지 않는가. 그 ‘정리’가 무엇이었을까. 보낼 것은 보내었다는 뜻일 것이다. 보낼 것은 다 보내고 남은 것을 부여잡고 살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보내야 할 것은 모두 보내었다. 내 스스로 보내었든 누가 가져갔든 모두 보내었다. 아니, 지금도 보내면서 살고 있다. 그 보낸 것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아쉬워하면서도 보내고 무심히 보내기도 했을 것이련만, 그 속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있었을 것이다. 애증이며 호오, 고락이며 희비가 날줄씨줄로 짜이기도 하고 무람없이 얽히고설키기도 했을 모든 것들이겠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서 어찌하고 있을까. 누구를 그리며 무엇을 바라며 어떤 하늘을 보고 있을까. 가끔씩 그것들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마음은 무엇일까. 미련이야 없다 할지라도, 그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할지라도-. 온 산을 행진곡으로 들썩이게 하고 우람한 교향곡을 연주해 내는 저 오월의 나무들에게도 그리움이라는 게 있을까. 돌아 보이는 애틋한 날들이 있을까. 저 푸름의 박동 속에는 그 마음이 들어앉을 틈이 없을 것 같다. 틈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저 나무인들 돌이킬 수 있는 날이 왜 없을까. 저 푸름이 빛깔을 바꾸어가다가 마침내는 한 톨의 흙으로 돌아갔던 기억이며, 떨어진 씨앗을 고이 품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온 일이며, 혹은 사나운 비바람을 만나 모진 고초를 겪었던 아픔들이 왜 없을까.
오월은 그 모든 것을 씻어버린다. 모든 것이 새롭다. 저 나무들은 해마다 맞는 오월로 모든 것을 씻는다. 그리고 새로운 박동으로 힘찬 울림을 구가한다. 저들에게는 오직 요동하는 생명의 합창소리만 있을 뿐이다.우렁찬 울림이 박동할 뿐이다. 이 오월 앞에서 나는 무엇인가. 나도 이 오월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오월을 바라보며 지난 오월을 그리워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나는 함께 하나가 될 수 없는 오월 앞에서 오월을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서있을 뿐이다. 비록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오월이지만, 그래도 오월은 즐겁다. 오월은 기쁘다. 이 푸름 앞에서, 이 요동하는 생명들 속에서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찍이 노 수필가께서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피천득, 「오월」)라 하신 말씀이 다시 새롭다. 그렇다. 이 오월 앞에서 쌓여져 있는 지난 세월을 돌이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오월이 있다는 것이, 이 오월 속을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풋풋한 일인가. 내게는 오지 않을 오월이 와서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짙어져 가는 푸름을 따라 함께 푸러져 볼 일이다. 얼싸안아 볼 일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추스르다 보면 나도 오월이 될 수 있지 않으랴, 되지 않으랴. 나도 오월인가. 나도 오월이다. 오월 속을 사는 나는 분명코 오월이다. 오월의 어느 푸른 날 속에서-.♣(2019.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