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출연자가 무대로 올라와 노래를 다 함께 불렀다. 관객들은 마지막 순서인 줄 알면서 자리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노래를 함께 부르거나 장단을 맞추어나갔다. 사회자의 에필로그 멘트와 함께 출연자들이 손을 흔들자 비로소 일어섰다.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은 무대의 흐름과 함께 울고 웃었다. 출연자들도 관객들도 모두 자기들의 구실에 빠져들 뿐이었다. 다섯 번째로 열리는 올해의 시낭송 콘서트 주제는 ‘그대, 그리움 속으로’라 정했다. 그대가 나의 그리움 속으로 든다는 것인지, 그대의 그리움 속으로 내가 든다는 것인지, 그 두 가지 뜻을 다 가져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리움 속의 유영을 시작했다.
‘그리움’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불잉걸처럼 따뜻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즐겨 낭송하는 시를 비롯한 모든 예술의 근원이라 믿으며 그리움을 주제로 한 시들을 섭렵해나갔다. 그 시들을 안고 틈틈이 모여 목소리를 가다듬기에 애썼다. 드디어 기대로 설레는 그 날이 왔다. 나는 여 회원과 더불어 짝을 이루어 시를 낭송하고, 자작 수필을 낭독하기로 했다.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서 모여 들던 관객들이 무대가 열릴 때는 객석을 거의 다 채워갔다.![](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yearning2.jpg) 기타를 연주하는 가수의 그리움을 담은 노래로 시작한 무대는 회장이 인사를 하고, 이어‘오늘 이곳엔 한 사람만 빼고 다 왔습니다’로 시작하는 이규리 시인의 ‘수레국화’로 그리움의 무대를 열어나갔다. 오늘 안 온 사람은 누구일까. 객석은 이미 다 차고 많은 사람들이 서있기도 했다. 이 시의 주인공인 이규리 시인도 감회 어린 눈빛을 무대로 보내고 있었다. ‘오늘 이곳엔 나만 빼고 다 있습니다’로 끝을 맺은 회장님의 유려한 목소리가 첫 무대부터 관객의 마음을 뜨겁게 사로잡아 나가면서 ‘그리움의 자리’라는 소주제로 네 사람의 회원이 시를 섞어가며 낭송하는 윤송으로 무대가 흘러갔다. ‘죽어서라도 꼭 당신을 만나야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이해인, 상사화)하며 끓는 듯 애잔한 목소리가 객석으로 흘러갈 때 관객은 숨결도 멎어버린 듯했다. 목소리를 폰에 담으려는 몇 사람이 겨우 미동할 뿐이었다.![](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yearning10.jpg) 관객을 미몽에서 깨운 건 노래와 시, 그리고 춤이 어우러지며 이어지는 시 퍼포먼스 순서였다.기타 연주자의 반주에 맞추어 옥빛 구슬처럼 청아한 목소리의 여가수가 ‘야상곡’(자우림)을 부르고 그 노래 사이로 세 사람이 등장하면서 그리움의 시를 엮어나갔다. 무대가 끝나고 들은 말이지만, 여가수의 애절한 목소리는 관객들의 누선을 편안하게 두지 않더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아/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아라/ 혼자 피는 꽃이/ 온 나무를 다 불 지르고 운다’(류근, 독작)라며 각혈하듯 토해내는 목소리에 빨려든 관객들은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끝나자 탄성과 함께 소나기 같은 갈채를 쏟아냈다. 아직은 긴장을 늦출 때가 아니다. 굵직하고도 간곡한 목소리의 남 회원이 등장하면서 왕비를 간절히 사모하며 팔찌를 빚은 금공(金工)의 마음을 ‘무령왕비의 은팔찌’(문효치)라는 시로 엮어내는데, 춤 솜씨도 능란한 회장님이 왕비가 되어 섬세하고 간절한 사위를 펼쳐내며 금공의 마음을 달랜다. 관객의 눈동자가 무대의 조명보다 더 빛이 나는 것 같았다.낭송가와 무용가가 손잡고 객석을 향할 때 한여름 날의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장내를 달구었다.
사뭇 설렘 속을 헤매고 있던 나의 순서다. 넥타이를 풀고 걷은 소매 차림으로 여 회원과 무대를 올랐다. ‘나 이번 생은 베렸어…’로 시작하는‘거울에 비친 괘종시계’(황지우)를 잿빛 목소리로 풀어나갔다. ‘당신은 이 세상에 안 울리는 사람이야…’ 여성의 앙칼진 소리, 아내의 목소리다. 온몸에 전율이 인다. ‘그래, 내 삶이 내 맘대로 안 돼!’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여 회원이 “석유스토브 위 주전자는 김은 푹푹 내쉬고.”라며 끝을 맺을 때, 나에게는 아무 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함몰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남녀 회원이 짝을 이루며 ‘삶과 그리움’을 주제로 한 몇 편의 시를 합송으로 낭송하는 순서가 환호와 박수로 이어져 나갔다. 국악 연주가의 대금 연주로 잠시 숨을 돌리면서, 많은 회원들이 정성을 모았던 시극 순서로 콘서트는 막바지로 치닫는다. 연극에 관심이 많은 한 회원이 톨스토이 원작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시 몇 편을 곁들여 각색하고 연출하여 엮어낸 것이다. 여덟 명이 배역을 나누어 맡아 연기하고 낭송하면서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은 결국 ‘그리움과 사랑’이라며 끝을 낸다.
관객은 배역들의 연기에 취하고 시에 몰입되면서 흥미와 감동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암전되었다가 밝아지는 무대에서 배역들이 나란히 손을 잡고 인사할 때 곳곳에서 터지는 환호와 함께 무대를 밀어버릴 듯한 박수 해일이 장내를 흔들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586303359787FFE35)
오늘의 마무리 무대에 여 회원과 함께 내가 섰다.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을 이야기한 나의 수필 ‘그리움에 산다’를 낭독할 차례다. 타는 그리움으로 가슴을 죄며 준비해온 것을 여 회원과 단락을 나누어가며 풀어나갔다. 풀려나오는 것은 오직 그리움으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객석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눈동자를 반짝이는 사람이며 잠시 눈을 감는 사람, 두 손 에 폰을 바쳐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구절 ‘이 그리움으로 또 하루를 설레게 산다’를 합송으로 끝내고 객석을 향해 고개 숙일 때 신음 같은 탄성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오늘의 피날레는 다 함께 노래하는 순서다. 연주가 회원이 기타 연주와 함께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 시)를 부르고, 전 출연자가 나와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객석을 향해 석별의 인사를 했다. 모두들 행복했을까. 무대로 향하던 마음들을 아직 거두어들이지 못한 탓인지 관객들은 일어서지 않았다.
“…저희들과 온 마음을 함께 하시면서 열렬한 갈채를 보내주셔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콘서트의 막을 내리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그제야 꿈을 깬 듯 사람들은 무대로 달려 나와 출연자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기도 하고, 손을 잡고 축하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yearning9.jpg) “너무 뭉클했어요. 수필이 어쩌면 그렇게…. 낭독도 어찌 그리….” 몇 사람이 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몇 번이나 눈시울을 눌렀다고도 했다. ‘그리움’이란 걸 새롭게 느끼고 새기게 되었다고도 했다. 어디 나의 수필뿐일까. 모든 것이 그리움이었다. 속속 가라앉아 있던‘그리움’들이 관객 출연자 할 것 없이 오늘은 모두 속속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랬다. 오늘은 모두 그리움 속으로 들었다. 그대는 나의 그리움 속으로 들고, 나는 그대의 그리움 속으로 들었다. 여 회원과 얼굴을 마주하고 낭독했던 글이 다시 가슴에 무늬를 그렸다. “다만 그리움으로 살 뿐이다. 아침 고즈넉한 풀꽃 산책길이며 해거름 아늑한 푸나무 산길을 그리워하고, 새 꽃, 새 나무로 다가올 내일을 그리워하며 살 뿐이다. 얼굴 맑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 뿐이다.” 또 하나의 그리움이 명치를 밀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2017.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