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류근 시인의 시 ‘어쩌다 나는’을 읽다가 문득 내가 쓰고 있는 수필이 떠올랐다. 매 연마다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라는 구절을 되풀이하는 이 시는 모두 6연에 2연씩 짝을 지우고 있는데 그 세 짝들은‘눈물’과 ‘여읨’과 ‘소멸’을 주된 심상으로 삼고 있었다. 나는 그 세 가지 심상을 ‘감동’과 ‘그리움’과 ‘겸허’라고 읽으며 내 수필 쓰기를 돌아보았다. 대상에 대한 감동과 그리움과 겸허한 마음이 있을 때 수필은 물론 나아가서는 모든 예술작품이 태어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지는 마음에서다. 그 무렵 나도 회원으로 속해있는 낭송협회의 회장님은 올해의 시낭송콘서트를 앞두고, 테마며 콘셉트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라 해보자고 했다. 그‘당신’은 무엇으로라도 대치되고 확장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우리가 좋아하는 ‘낭송’을 넣어서 음미해도 걸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콘셉트까지도 내가 제안했다. 시 전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낭송하면서 그 사이사이에 ‘먼 훗날에도 우리는’(유안진), ‘지울 수 없는 얼굴’(고정희), ‘낙화, 첫 사랑’(김선우)을 극적으로 엮어 ‘눈물’, ‘여읨’, ‘소멸’의 이미지를 그려보자 했다. 회장님도 좋겠다고 했다. 회원들과 의논하여 배역까지 정했다. 그걸 메인이벤트로 하여 큰 주제를 살릴 수 있는 다른 시를 찾아 독송, 합송, 시극 등으로 구성해 보자며 시를 고르고 출연자를 정해 나갔다. 그렇게 내용이 정해진 시낭송콘서트는 연인원 240여 명이 20여 차례의 연습과 리허설 과정을 거쳐 드디어 무대를 열게 되었다. 류근의 시에서 ‘당신’을 ‘여러분들의 가슴 깊은 곳에 품은 그 무엇으로 새겨도 좋을 것’이라는 관객을 향한 회장님의 인사말로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먼저 퍼포먼스로 구성한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가 무대에 올랐다. 연두색 드레스에 미색 머플러를 두른 한 낭송가가 나와 ‘어쩌다 나는’의 일부를 낭송하고, 같은 차림의 세 낭송가가 차례로 나와 내가 제시했던 시들을 섞어가며 그 시의 정감을 살릴 수 있는 율동과 함께 낭송해나갔다. 이어서 네 출연자가 함께 ‘어쩌다 나는’을 다시 낭송하면서 머플러를 든 손을 함께 모으고 춤을 추듯 원을 그리며 돌다가 무언가를 그리는 애절한 몸짓으로 함께 몸을 낮추고 소멸의 희원을 그려내면서 천천히 일어서서 관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블랙홀에라도 빨려 들어간 듯 고요에 빠져있던 객석에서 양철지붕에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눈물’과 ‘그리움’에 느꺼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출연자들의 호소력 있는 낭송과 연기, 그리고 낭송과 연출 전문가인 회장님의 연출이 찬연한 빛을 내뿜는 순간이었다. 낭송도 무대예술이고 보면 시의 정서만으로 그런 감동적인 무대가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첫 무대의 그 감동과 흥분을 안고, 회장님이 유려하고도 애틋한 정감으로 낭송하는 ‘별 헤는 밤’(윤동주), 세 낭송가와 한 학생 출연자가 네 편의 ‘행복’ 주제 시를 합송으로 들려주는 ‘행복으로 가는 길’, 두 남성 출연자가 걸쭉하게 엮어내는 듀엣낭송 ‘깊은 맛’(김종제), 두 남녀 회원이 함께 낭독하는 수필‘산에는 꽃이 피네’(이일배)가 차례로 이어지는 순간에도 환호와 갈채는 끊이지 않고 콘서트의 열기를 돋우었다. 이번 콘서트의 이색 순서라 할 수 있는 세 어린이가 들려주는 가을 동시 ‘가을 소식’, 그리고 우리 협회의 회원인 교육감께서 들려주는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이기철)도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과 갈채 속에서 이어져 나갔다. 연이어 평화 세상을 주제로 한 시극 ‘소원이 뭐냐 물으면’이 관객들의 뜨거운 반향을 받으면서 낭송 순서가 마무리되고, 관객과 함께 ‘행복을 주는 사람’을 노래하면서 무대는 막을 내렸다. 어떤 순서라도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눈물도 흘리고 그리움에도 젖고 겸허 앞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무대가 끝나도 관객들은 일어설 줄 모른다. 아직도 감동의 물결 속을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회장님이 관객들 앞에 섰다. 콘서트 머리에서 축사를 청했지만 ‘회원이 무슨 축사를 하느냐.’며 한사코 사양하던 교육감님을 다시 불렀다.간곡한 청을 못 이긴 교육감께서 마이크를 잡았다. ‘어쩌다 나는 낭송이 좋아서’ 매년 이 무대에 서고 있다며 “시를 낭송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자녀들에게 학교에서 시를 외게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라며 관객을 향했다. 객석에서는 다시 환호가 터지고 교육감께서는 「‘시울림’이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관객들은 교육감의 그 말씀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해일 같은 박수를 보내며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객석을 빠져 나가는 관객들 속을 뚫고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출연자들에게 꽃을 안겨주면서 축하한다며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다. 장내를 감도는 감동과 흥분의 분위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며칠 뒤, 교육감의 약속이 신문의 기사가 되어 나왔다. 프랑스와 영국의 시 암송 교육의 예도 들면서 교육청에서 내년부터 ‘1인 1학기 1편 시 암송’을 위한 「‘시울림’이 있는 학교 운영」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시낭송 콘서트가 준 감동 때문이었을까. 시가 가지고 있는 감동력 때문일까. 어찌하였든 시의 감동이 크게 울려 퍼진 것임에는 틀림없다. 시와 낭송을 사랑하는 회장님과 교육감님이 있기에 우리 협회에도, 이세 교육에도 시의 울림이, 그 감동이 더욱 큰 메아리로 울릴 수 있음을 감동스러워 하며, 시가 주는 감동을 다시 조용히 새겨본다.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깊은 바람결 안에서도 앞섶이 마르지 않는가…….”♣(2018.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