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수필

캄보디아·홍콩 여행기(6) -폴포트의 사람사냥

이청산 2007. 1. 22. 16:05

캄보디아·홍콩 여행기(6)



 ㅇ 폴포트의 사람 사냥 그리고 캄보디아 떠나기

 

2007년 1월 3일. 캄보디아를 떠나는 날이다.

6시에 모닝콜을 받아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 뷔페로 아침을 먹는다. 아내는 캄보디아에 온 이후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을 하고 있다. 과일만 몇 쪽 먹었다. 이국의 문물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리라. 누군들 익숙할까만, 집을 별로 벗어나 본 적 없는 아내에게는 큰 불편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와트마이로 간다고 한다. 와트는 '사원', 마이는 '새 것'이라는 뜻이니 와와트마이의 유골탑트마이는 '새로 지은 사원'이라는 뜻이겠다. 비포장 황톳길을 달려 가 사원에 닿았다. 널찍한 마당에 흰색과 황금색으로 단장한 커다란 절집이 서 있었고 가사를 두른 승려들이 서성거렸다. 이 절은 1975년부터 1979년 사이에 자행된 폴포트 정권의 대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탑을 세우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유리로 둘러쳐진 탑 안에는 해골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꽉 차 있던 유골들이 산화되면서 내려앉아 반 정도가 채워져 있었다. 남자는 희색, 여자는 갈색을 띠고 있었다. 탑 주위에는 폴포트의 사진과 함께 희생자들의 사진에 게시되어 있었다. 죽인 사람도 죽은 사람도 잊지 말자는 뜻에서 게시해 놓았다고 한다. 당시 폴포트는 완전 공산화된 농업 국가를 만들기 위해 그 통치 이념에 방해가폴포트(맨 윗줄 중앙)와 피해자들 되는 지식인과 부유층들은 모조리 죽였다고 한다. 폴포트 자신도 프랑스에 유학한 지식인이었는데 지식인들을 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폴포트는 1998년 심장마비로 죽었다기도 하고, 불에 타 죽었다기도 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 아직도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을 죽일 때는 앙코르와트의 지옥도처럼 때려죽이기도 하고 찔러 죽이기도 하면서 전기 드릴 같은 것으로 찌르고 허파, 간을 꺼내어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본지도 모르겠다. 프놈펜 박물관에는 그 흔적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9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폴 포트 정권은 무너지면서 폴포트의 대학살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 후 1981년까지 2년 동안 베트남의 식민지가 되어야 했고, 그로부터 캄보디아는 연간 국민소독 300달러 지나지 않는 동남아 최빈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절집 안에는 커다란 부처가 모셔져 있고, 뒤쪽에는 평화로운 모습의 와불 탱화가 걸려 있었다. 절 밖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다니면서 달러를 구걸하고 있다. 절 안에 들어간 사람의 신발을 바로 놓아주고, 혹은 화장실을 안내해 주면서 달러를 달라고 한다. 가사를 걸쳐 입은 승려들이 그 광경을 당연한 일인 것처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소름 돋는 와트마이를 나서는 차안에서 가이드는 폴 포트의 '죽이기 놀이'를 해 보자고 했다. 배가 나온 사람, 안경 쓴 사람, 손에 굳은살이 없는 사람, 집에 책이 많은 사람,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 교사와 교수, 외국어를 잘 쓰는 사람, 종교인 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해당되는 사람들이 손을 드는데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폴 포트 시대 같으면 다 죽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다 죽었다. 참으로 끔직한 일이었다.

다시 비포장 골목길을 달린다. 이곳은 어디를 달려도 황토와 야자수를 볼 수 있다. 다시 거리로 나와 어느 보석 가게 앞에 섰다. 보석을 쇼핑하라는 것이다. 관심이 없어 밖으로 나와 거리를 구경하였다. 툭툭이가 지나고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흰 웃옷에 검은 바지를 입었다. 1970년대까지의 우리 학생들의 복장이다.

다시 묵었던 호텔 앞을 지나 실크 제품과 공예품을 제작하고 있는 공장공예품 공장의 소녀들을 찾아간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남녀 공원들이 실크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제품을 만들거나 나무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형태의 조각품을 만들고 있다. 앙코르톰이나 앙코르와트의 벽화를 본뜬 그림도 만들어 오래된 그림처럼 보이기 위해 손때를 입힌다고 했다. 실크에 그림을 그리는 소녀들은 모두 언어장애인들이라고 했다. 작업장에는 수화도(手話圖))를 붙여 놓고 있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 같으면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이들은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관광을 오는지 한식집도 많다. 12시20분 '靑松'이라는 한식집에 이르러 된장찌개와 김치로 점심을 먹고 시엠림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차창으로 어느 학교 풍경이 스쳤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자전거를 끌면서 교문을 들어서고 있다. 중고등 학생들인 것 같다. 오후반 학생들이 등교를 하는 모양이다. 캄보디아에는 거의 2부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

12시45분 시엠림 공항에 이르렀다. 공항에는 엊그제 우리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만 보이는 것 같았다. 공항 데스크에서는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아 탑승객 명단을 일일이 손으로 파악하며 대조하고 있다. 17명의 시엠림공항명단을 대조하는데 근 한 시간이 걸렸다. 그 지루한 시간에 공항 청사 밖으로 나와 공항의 경내를 구경하였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바쁘게 설치는 것이 없다고 한다. 늘 더위 속을 살고 있는 기후 탓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2시가 훨씬 넘어서야 전세기를 탈 수 있었다. 35분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10분 뒤에 동체를 들어 올렸다. 널따란 평야에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고 황무지가 펼쳐진다. 얼마나 날았을까. 구름 위로 해가 지고 있다. 찬란한 낙조 광경이 보이는가 싶더니 드디어 홍콩의 첵랍콕공항에 내려앉았다.

 

※ 이어지는 사이트 바로 가기

1. 떠나기 그리고 하늘 / 시엠림 풍경

2. 톤레삽 호수로

3. 앙코르 유적지를 가다

   ㅇ 앙코르 톰

   ㅇ 따프롬 사원

   ㅇ 앙코르 와트/ 프놈바켄

4. 폴포트의 사람 사냥 그리고 캄보디아 떠나기

5. 홍콩에서

6. 홍콩의 밤거리 그리고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