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수필

캄보디아·홍콩 여행기(5) -앙코르와트

이청산 2007. 1. 23. 10:08

캄보디아·홍콩 여행기(5)



 ㅇ 앙코르 유적지를 가다

 

     - 앙코르 와트/ 프놈바켄

 

앙코르 와트앙코르와트는 수리아바르만 2세가 1113년부터 1150년까지 37년 동안 2500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건축한 것인데, 현대의 첨단 장비로 50년이 걸려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고 한다. 모든 사원은 동향인데 이곳만은 서향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동은 새로운 시작, 양기를 의미하고, 서는 죽음, 패배를 의미하는데 아마 왕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 듯하다고 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사원은 왕의 영묘, 왕궁, 사원의 역할을 함께 한 곳이라 한다. 사원을 두르고 있는 해자는 너무 깨끗하여 어떤 경우에도 마르지 않고 흐려지지 않는다고 하며, 사원의 배치는 하늘의 별자리와 일치한다고 한다.

3시25분 사원에 도착했다. 해자까지 포함한 사원의 넓이는 앙코르와트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로 총 200㏊, 성벽 내의 면적은 82㏊에 이르며, 사원은 6천여 개의 통돌을 사용하여 3층으로 지었다고 한다.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신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안에 있는 12개의 탑은 1년, 신계를 오르는 28계단은 1달, 이런 계단이 12곳이 있는 것은 12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리아바르만 2세가 비슈뉴 신에게 헌정하기 위해 지은 사원이라 한다. 사원 앞에는 널따란 무대가 조성되어 있는데, 얼마 전 엑스포 행사의 하나로 우리나라 앙드레 김이 김희선, 김래원 등을 모델로 세워 이 무대에서 패션쇼를 했다고 한다.

동서남북 그리고 65m 높이의 중앙탑으로 들어가는 4개의 입구를 중심으로 크게 8개의 주제로 나누어진 회랑이 이어지는데, 북서쪽 코너와 남서쪽 코너에 또 다른 복잡한 이미지를 표현해 놓고 있다. 동쪽 벽면은 희망, 생명, 천지창조를 의미하는 우유바다 젓기를 조각하였고, 서쪽은 죽음, 절망 등 랑카의 전투와 쿠륵세트라의 전투 장면을 조각하였다. 북쪽은 신들이 사는 곳, 신들의 이야기가 표현되어 있고, 남쪽은 왕의 행진 장면과 지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조각되었다. 남쪽의 지옥도에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 처형을 하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는데, 뜨거운 물에 끓이고, 죽이고 때리고, 장기를 끄집어내고 목, 귀, 볼, 혀를 꿰뚫고, 사람 바비큐를 하고 있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그 잔인한 장면을 폴포트의 크메르루즈가 흉내 내어 인민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천상계로 가는 28계단을 오른다. 너무 가파른 것이 경사각이 70 정도는 될 것 같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며 힘들여 올라갔다. 사람의 계단이 아니라 신들의 계단이라고 한다. 계단을 올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부처를 모셔 놓은 신당이 있다. 소원을 비는 곳이라 한다. 1달러를 놓고 온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벽마다 춤추는 압살라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데, 수많은 압살라들 중에 단 하나 뿐인 이빨을 드러내어 웃는 모습의 압살라가 인상적이었다. 중앙에 히말리아 봉우리를 상징하는 65미터의 메두산 탑이 우뚝 서 있다. 그 봉우리를 타고 흐르는 빗물을 성수로 받아 왕이 목욕하고, 그 물을 2층으로 흘려 신하들이 씻게 하고 난 뒤 해자에 흘려 보내어 미물들이 먹게 했다고 한다. 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득하다. 그 아득히 높은 곳에서 왕은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추상같은 권위와 권세를 행사했을 것이다. 기둥에 새겨진 글, 이곳에 오는 사람은 영험을 입게 되고 같은 시기에 동행 사람들은 우애가 깊어진다는 내용이라고 가이드가 풀이해 주었지만 사실인지 모르겠다. 다시 벽에 붙어 기듯이 신들의 계단 28계를 내린다.

그러나 이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은 참족, 샴족, 몽골 등 거듭되는 외침으로 허물어져 갔다. 마침내 1431년 아유타족의 침략으로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치닫게 되어 1434년 크메르족은 이 도읍지를 버리고 종적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고 한다. 이후 앙코르 유적은 1861년 프랑스인 탐험가 앙리 무어(1826∼1861)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밀림 속에서 깊은 잠을 자야 했다. 그들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한 줄의 기록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 오늘의 캄보디아인들이 그들의 후예인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앙코르제국은 어디로 갔을까? 영원할 줄만 알았던 제국의 찬란한 영화가 무참히 몰락하면서 종적조차 영원히 사라진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 거대한 건축물을 위하여 수많은 인민들을 희생의 제물로 받쳤을 것이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을 참혹하게 처형하는 장면이 그려진 앙코르와트의 지옥도에는 간혹 벼락이 친다고 한다. 앙코르제국의 멸망은 외침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힘만 믿고 민심과 천심을 저버린 탓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민심을 받들 줄 모르는 권력은 허무하게 멸망하는 것임을 앙코르의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앙코르와트 원경앙코르와트의 정문으로 나가는 길옆에 연꽃이 피어 있는 널따란 연못이 보인다. 그 연못 속에 또 하나의 앙코르와트가 있었다. 물에 비친 사원과 층을 이루며 솟은 탑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인민들의 희생이나 권력의 흥망성쇠도 다 녹여 버린 채, 관람객들의 탄성 속으로 들어가 잊지 못할 추억의 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차를 달려 내린 곳은 프놈바켄(Phnom Bakheng) 입구다. 67m의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사원을 찾아간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언덕길을 올라간다. 산이 없는 시엠림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한다. 20분 정도를 올라가니 허물어진 성체가 우뚝 앞에 선다. 프놈바켄은 '중앙의 산'이란 프놈바켄 언덕의 사원뜻으로 아소바르만 1세에 의해 907년에 봉헌된 앙코르 지역의 최초 사원이라고 한다. 입구에 라테라이트로 만든 4개의 고푸라(입구 문)가 서 있는데, 고푸라는 사원을 오르는 계단과 연결되어 있었다. 앙코르와트의 28계단과 같은 높다란 계단을 기어올라간 언덕 정상에 13m의 파라미드 사원이 중앙에 여유 있게 자리 잡고 있다. 사원 앞에서 내려다보는 시앰림은 온통 숲으로 덮여 있고 앙코르와트의 첨탑이 가물가물 보였다. 붉은 빛의 벽돌 탑을 더욱 붉게 물들이며 무성한 숲 위로 해가 지고 있었다. 담홍색의 낙조는 푸른 숲과 어울려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했다. 숲 속으로 잦아드는 해를 바라보며 프놈바켄을 내려왔다.

차를 달려 6시40분, 평양친선관이라는, 북한사람들이 경영하는 평양냉면집에 이른다. 밥이 먼저 나오고 냉면이 나왔다. 무대에서는 예쁘장한 북한 소녀들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북한말 특평야친선관의 북한 아가씨들유의 악센트로 응대하는 북한 소녀들의 접대를 받으며 북한 소주로 목을 축였다. 시엠림에는 이러한 북한 식당이 세 곳이 있다고 한다.

식당을 나와 호텔로 돌아오는 것으로 오늘의 여정이 끝났다.

너무 많은 곳을 보고들은 하루,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렸던 하루. 신, 인간, 부귀, 영화, 흥망, 성쇠, 역사……와 같은 단어들이 머리 속에 어지럽게 엉겨왔다. 그것은 갈증으로 이어졌다. 호텔 냉장고에 있는 맥주로 갈증을 달래는 사이에 이국의 밥은 깊어지고 있었지만, '앙코르제국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의문이 잠들 때까지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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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따프롬 사원

   ㅇ 앙코르 와트/ 프놈바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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