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수필

캄보디아·홍콩 여행기(7) -홍콩에서

이청산 2007. 1. 22. 16:03

캄보디아·홍콩 여행기(7)



 ㅇ 홍콩에서

 

이제부터는 홍콩 시간이다. 캄보디아보다는 1시간 빠르고 우리나라보다는 1시간 늦은 시간이다. 6시 25분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을 나오니 현지의 박영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면적 1067㎢, 인구 700만 그고층 빌딩이 빽빽이 들어선 홍콩의 거리래서 홍콩은 고층 빌딩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콩 공항은 하루 1,500대의 비행기가 오르내리며 다른 나라의 공항은 3,000m 활주로가 두 개인데 비해 이곳은 20,000m 활주로 하나로 비행기가 뜨고 앉는다고 한다. 홍콩은 홍콩섬과 구룡반도, 신계지로 나누어지는데 비자 없이 자유로이 입출국을 할 수 있지만, 이중국적자는 비자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 홍콩은 170년 동안 영국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99년 동안 영국에 조차해 주었는데 그 기간이 끝난 1997년6월30일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았다고 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홍콩을 떠나려 하자 등소평 수상이 향후 50년간의 자치를 약속하여 사람들이 다시 주저앉게 되었다고 한다. 본국의 천안문 사태로 인해 다시 홍콩이 휘청거리자 많은 사람들이 이중국적을 얻어 홍콩을 떠나 캐나다로 많이 갔는데, 그래서 캐나다에 홍콩 도시가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부자를 묶어두기 위해 등소평은 홍콩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하고 홍콩과 구룡반도를 유럽과의 자유무역 지대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은 실크와 차 등을 영국에 팔고, 영국은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수출했는데, 중국이 아편 금지령을 내리자 1840년 영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곧 아편전쟁으로 중국은 3,600명이 죽은 반면 영국은 16명만 죽어 영국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7시25분 구룡반도로 가는 천문교를 건넌다. 천문교는 50만톤의 철근으로 해발 150미터 2,2키로로 건설했다고 한다. 7시30분 터널을 통과하여 시가지를 지나 구룡반도에 이른다.

홍콩은 생산업은 없고 주로 물류와 관광 수입에 의지하고 있는데, 컨테이너가 하루 2,000만개에서 5,000만개 정도가 이동하고, 하루 1,500대의 비행기가 관광객을 실어 나르며, 많은 사람들이 수가공업에 종사하는데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26,000달러라고 한다. 항구의 수심이 15미터 이상이면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는데, 이곳은 25∼28미터가 되어 큰 배가 드나들기에 아주 편리하다고 한다. 휘발유, 자동차, 술, 담배 외에는 수·출입되는 모든 물자에 관세가 붙지 않아 물류가 매우 활발하며, 따라서 창고업이 아주 발달해 있다고 하며,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단다.

7시38분 고속도로가 끝나고 시내로 들어온다. 구룡반도에 있는 식당을 찾아간다. 3층에 자리잡고 있는 '四川樓菜館'이라는 식당에서 식판을 돌려 가며 식사를 했다. 모든 음식에 향을 치고 기름으로 두른 느끼한 맛의 중국 음식 그대로다.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이 또한 여행 체험이라 생각하며 중국의 특산 차인 보이차로 입을 가시며 먹었다.

8시40분 식당을 나왔다. 홍콩 공과대학 앞을 지난다. 400:1쯤의 경쟁을 거쳐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며, 일정한 연한만 되면 학점을 따기에 따라 매월 졸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1999미터의 해저터널을 지나 홍콩섬으로 간다. 터널 안에는 오염처리기가 달려 있고 통과 요금은 1,300원 정도. 홍콩 사람들은 양보 운전을 잘 하는데, 신호 위반을 하면 운전면허 취소라고 한다.

홍콩은 그 옛날 16명의 어민이 살던 조그만 어촌이었는데, 1841년 영국령으로 귀속된 이후 항구 도시로 발전해 갔다고 한다. 홍콩에 향나무가 많이 나는데, 이것을 항구를 통해 실어내다 보니 항구에는 항상 향기가 나게 되어 향항(香港)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거리는 온통 빽빽이 들어찬 고층 빌딩이 밀림을 이루고 있다. 빌딩마다 휘황찬란한 네온이 명멸하면서 불꽃의 천지를 이룬다.

문득 그 옛날 금사향이 불렀던 '홍콩 아가씨'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꿈을 꾸며 꽃 파는 아가씨

그 꽃만 사 가시면 그리운 영난꽃

아~ 꽃잎처럼 다정스런 그 사람이면

그 가슴 품에 안겨 가고싶어요

 

그러나 이층 버스며 전차, 그리고 많은 자동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높다란 빌딩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이 거리에 소곤대는 별도, 꽃 파는 아가씨도 보일 것 같지 않았다.

8시55분, 빌딩의 밀림을 비집듯이 달려  'HABOUR PLAZA'라는 호텔에홍콩의 海港호텔 당도했다. 9층에 숙소를 정하여 여장을 풀어놓고 몇 사람과 함께 거리 구경을 나섰다. 어느 선술집에 들어 술이라도 한 잔 하며 홍콩의 밤거리, 그 낭만을 즐겨 볼까 했지만, 우리가 걷는 거리엔 술집도 잘 보이지 않고 어쩌다 보이는 술집은 달러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허기야 우리나란들 남의 나라 돈을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세븐일레븐 마트'를 발견하여 물 몇 병과 맥주 몇 병을 겨우 살 수 있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 것은 11시경. 로비에 앉아 소주 맥주를 섞어 가며 이국의 밤을 취해 갔다.

호텔 방 안에서 본 창 밖 풍경2007년 1월 4일.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여니 건물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홍콩은 섬이요, 항구 도시이니 어디서라도 바다가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10시에 출발한다기에 8시50분 혼자 호텔을 나섰다. 호텔 뒤쪽으로 가니 '北角政府合署(NORTH POINT GOVERMENT OFFICE)'라는 높다란 건물이 보인다. 정부 청사인 모양이다. 그 옆에는 경찰서도 있다. 경찰서 벽에는 학교 폭력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자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홍콩도 학교 폭력의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경찰서 벽을 따라 가니 바다가 나왔다. 큰배가 정박을 하고 있고 작은 배들이 오간다. 기름 둥둥 더 있는 바닷물 속에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들이댄다. 홍콩에서는 낚시에도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미끼로는 새우, 지렁이 오에는 쓸 수 없다고 한다. 바다를 등지고 거리로 방향을 잡아 나오니 장례를 치르고 있는 곳이 보인다. 건물에는 '香港殯儀館'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장례식장인 모양이다. 망자를 앞에 두고 많은 조화와 의자를 배열해 놓았다. 조화를 파는 곳도 보인다. 거리에는 전차와 이층버스 그리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사람들은 모두 매우 바쁜 모습이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10시에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대기하고 있는 차를 탔다. 바다가 보인다. 홍콩에도 10만 명 정도의 수상족이 있다고 한다. 물 위에 공동화장실을 두고 생활 터전인 바다를 절대로 오염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홍콩은 스모킹룸 외에는 공공 건물. 호텔, 식당, 술집 등 모든 건물이 금연구역이고, 공원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다고 한다. 만약 호텔 방에서 담배를 피우면 센스가 작동하여 물이 쏟아진다고 한다.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최고 5,000달러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아파트는 100년 이상이 가도록 매우 튼튼하게 지으며 불실 공사는 할 수 없도록 제도화되어 있다고 한다.

10시20분 에버딘터널을 지난다. 에버딘은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고 있을 때, 홍콩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영국 장군의 이름이라고 한다. 영국은 홍콩을 지배하면서 세금만 거두었을 뿐, 홍콩 사람들을 괴롭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영국 사람들에 대해서 적개심도 없다고 한다. 모두 고층 빌딩 천지인데, 단층의 허술한 집들이 보인다. 월남 난민들이 사는 곳이라 한다. 인권 침해의 시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1942년12월24일 큰 화재가 일어나 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이때 정부에서 3.5∼4평의 아파트를 대량으로 지어 보급했다고 한다. 공공화장실과 공동 빨래터를 두고, 방 한 간 아파트에서 2,3대의 전 식구가 거처한다고 하며 지금도 그런 아파트가 있다고 한다. 옷장도 없어 옷을 창문 밖에 빨래처럼 걸어두고 필요할 때 입는다고도 한다.

산 위에 우람하게 지은 빌딩은 부자들이 사는 곳, 배산임수로 풍광이 아름다우면 좋은 땅이라고 생각하여 바다가 보이는 산비탈 땅이 매우 비싸다고 한다.

365일 해수욕을 하는 바닷가, 상어가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바다에 팬스를 치고 있다. 상어가 나타면 경찰이 사살할 수 있고, 사살한 사람은 한 계급 특진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모정'의 촬영장이고 조성모가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리펄스베이로 간단다. 넓은 구멍이 뻥 뚫린 아파트가 보인다. 베이맨션(BAY MANSION)이다. 용이 드나들며 뒤편 산의 기운을 바다로 통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진 곳으로 홍콩사람들의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을 보여 준다. 이 빌딩을 지은 사람은 찻집배달원으로 출발했지만, 나중에 80개국에 화물터미널을 거느린 홍콩의 최고 갑부가 되었다고 한다.

홍콩사람들은 부자를 존경한다고 한다. 부자들이 부의 사회 환원을 통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홍콩의 실업률은 0.4%, 할머니들까지 공사판에 나와 일을 하며 80∼100만 원정도의 임금을 받는데, 자식에게 의지하는 일이 없단다.

홍콩 천세문10시40분 천세문(千歲門)으로 들어간다. 문에는 관우, 장비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건강, 장수의 신으로 숭배한다는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틴하우뮤사원 앞에 화려하게 채색한 두 여신상인 쿤암과 틴하우가 리펄스베이를 바라보며 웅장하게 서있다. 그 주위에 여러 가지 틴하우뮤사원의 두 여신상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는 신들이 모여 있는데, 만지면 누구나 부자가 된다는 정재신(正財神)도 있다. 하도 많이 만져 얼굴이 비칠만큼 닳아져 있다. 바다를 향해 아치형으로 나 있는 장수천세문의 정재신교와 금은보화를 지닌 배불뚝이신도 있고, 행운을 상징하는 세 마리의 양과 커다란 보리수나무도 서 있다. 앞으로 보이는 바다가 리펄스베이다.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와 넓은 모래사장이 어울려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해변이다. 그리펄스베이 해변에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거대한 아파트들, 홍콩의 부유층들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한다.

천세문을 나서 해양공원(Oeacn Park)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운동장이 보인다. 학교에 운동장이 없기 때문에 각급 학교의 체육장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경찰대학과 운전면허시험장도 보인다. 공원으로 입장을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해양공원산을 오르면 바다 경치를 조망한다. 수려한 경치를 지닌 산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위락 시설을 설치하여 바다의 경치와 합쳐 하나의 경관으로 조성해 놓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서 보는 바다의 경치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케이블카를 내려 해양관으로 들어간다. 20,000마리의 물고기를 전시하고 있는 아쿠아리움이다. 신기하게 생긴 물고기들이 아주 많았다. 이 해양 공원은 홍콩의 경마클럽에서 자본을 대어 조성한 것이라 한다. 해양공원을 나와 차를 달린다. 해저터널을 지난다.

홍콩사람들은 결혼 할 때 학벌 같은 것은 따지 않고 얼굴 예쁜 여자면 '핑진'이라고 하는 많은 지참금을 지불하고 여자를 데려 온다고 한다. 돈은 여자가 가지고 결혼 후에는 남자와 따로 재산을 관리하는데, 모든 가사는 남자가 담당한다고 한다.

부자는 겉으로 봐서 모른다고 한다. 집에서는 좋은 옷을 입다가도 밖에 나갈 때는 남루하게 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유층과 빈민층 사이에 위화감도 별로 없다고 한다. 우리와는 반대다. 식당을 가도 비싼 음식을 먹는 사람이나 싼 것을 먹는 사람이나 대접은 똑 같이 접대하며 별로 친절하지 않다고 한다. 그릇도 식탁에 곱게 놓지 않고 거의 던지듯이 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가 빠진 접시가 많은데, 이가 빠진 그릇은 전통이 긷든 것이라 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1,2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딤섬 요리 전문 식당으로 간단다. 덕흥주점이란 식당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만두 같은 것이 많이 나왔다.

1시45분 식당을 나와 시가지를 달린다. 홍콩 섬의 변두리에 해당한단다. 경마클럽'謝瑞麟'이라고 하는 보석 가게 앞에 내리게 했다. 보석에는 흥미가 없어 거리로 나와 구경했다. jockey club이라는 경마장이 보였다. 해양공원을 조성하는데 자본을 대었다는 업체다. 넓지 않은 거리에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거리가 매우 번잡했다. 차 전문 가게로 갔다. 보이차를 비롯한 중국산의 여러 가지 차를 선전했다. 금연하게 해준다는 전칠차(田七茶)라는 것도 소개했다.

3시20분 찻집을 출발했다. 홍콩의 최대 면세점으로 간다고 했다. '海港城(HARBOUR CITY)'라는 거대한 건물 앞을 지난다. 도로변에 높고도 길게 늘어서 있어 이름 그대로 성과 같은 건물이다. 개인 자본가가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GELLERIA'라는 간판이 붙은 면세점으로 간다. 보석이며 가방, 장식품이며 보석 같은 것이 즐비했다. 한 코너에는 제과점도 있었고, 제과점 옆 한 코너에서는 일본인 듯한 여인이 고객들에게 음료수와 차를 대접하기도 했다. 무료 대접의 의도를 한참 생각했다.

일행이 면세점을 둘러보는 사이에 거리로 나왔다. 침사추이(尖沙咀)라는 곳이다. 길은 넓지 않았지만, 많은 차들이 오가고 있고,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도열하고 상점마다 화려한 간판과 네온을 달아 거리는 화려했다. 골목 안에도 여러 가지 물건을 진열해 놓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어느 골목에손녀 옷을 산 골목시장는 아기 옷을 파는 가게 있는데 옷 참 예뻐 보였다. 손녀 생각이 나서 6달러를 주고 중국식 아기 옷을 하나 샀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에 여인들이 총총히 나타나 발 마사지를 받으라고 권한다. 간혹 책방도 보였는데 치부(致富)에 관한 책이 많았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부에 대한 열망도 뜨거운 모양이다. 환전소도 곳곳에 있었는데 우리 돈 1,000원에 8홍콩 달러로 환전하는 것으로 게시되어 있다. 간혹 한국어 간판을 달고 우리 음식을 파는 식당도 보였다. 걷다가 보니 구룡공원이 나타났다. 분수가 홍콩의 거리솟구치는 연못가 벤치에 잠시 앉아 다리의 피로를 달랬다. 공원에도 금연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다시 걷다가 보니 1488달러, 888달러 음식을 제공한다는 식당 간판도 보였다. 우리 돈으로 16만원, 10만원이 넘는 값이다.

5시45분 혹 길을 잃을까봐 방향을 살피고 살피며 출발 장소로 돌아왔다. 6시 10분에 일행이 다 모였다. 번화한 거리를 지나고 골목길을 거쳐 가이드김치 인심이 야박했던 삼목시당가 안내하는 식당으로 갔다. '三木韓國料理'라는 한국 식당이었다. 김치찌개와 된장으로 차려졌다. 홍콩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잘 하는가 했는데, 김치가 떨어져 더 달라고 하니 반응이 없다. 종업원 몇 사람을 부탁해도 가져오지 않는다. 주인을 불러 항의했지만 가져올 의사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기로 몇 번 요청한 뒤에야 겨우 한 접시를 가지고 왔지만, 여기서는 김치가 귀한 탓인지 인심이 너무 야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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