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소원이 있다면

이청산 2023. 7. 17. 21:27

소원이 있다면

 

  오늘도 산을 오른다. 푸르고 싱그러운 나무를 본다. 살 만큼 살다가 강대나무가 되고 고사목이 되어 쓰러져 누운 것도 보이지만, 산은 푸르고 울창하다. 하늘 향해 한껏 잎을 떨치고 있는 이 나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 나무들의 소원은 무엇일까. 오직 하늘을 향하는 일이다. 하늘이 내려주는 빛을 타고 하늘에게 좀 더 가까이 오르는 것이 나무들의 가장 큰 소원일 것이다. 그 소원을 부여안고 열정을 태우다가 그 원이 다했다 싶을 때 서서히 내려앉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나에게도 소원이 있는가. 어떤 소원이 얼마나 있는가. 한때는 바라는 것이 크고도 많았고, 해내고 이루고 싶은 것도 적지 않았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바라기만 하다가 말고 하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갔다.

  황혼을 껴안고 있는 세월 앞에까지 왔다. 이 세월이라고 바라고 이루고 싶은 것이 어찌 없으랴만, 예전 같지 않다. 소원으로 담을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이루고 싶은 것이 쌓이는 세월에 반비례라도 하듯 점차 줄어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하늘을 향하는 소원이 다 했다 싶을 때는 내려앉는 것처럼 나도 세상에서 내려서야 할 때가 다 되어간단 말인가. 누구는 이런 상념에 젖는 나를 보고, 얼마나 살았다고 그러느냐 할지 모를 일이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명줄의 행보야 누가 아는가.

  나무는 제 하늘을 누릴 만큼 누렸다 싶거나, 제가 누릴 수 있는 하늘이 별로 없다 싶을 때 서서히 숨을 거두어 간다. 그건 체념이나 절망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일 뿐이다. 숨 달린 모든 것은 무릇 그 뜻과 이치를 어찌 벗어날 수 있으랴.

  지금 나에게 절박한 소원이 하나 있다. 병약한 아내가 건강을 회복하여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또 하나 품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멀지 않은 날에 자연사를 성취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소원일지 모른다.

  내 힘으로 이루기 어렵거나 이룰 수 없는 소원을 감히 품고 있다. 아내의 건강에 대한 소원도 그렇지만, ‘자연사’라는 게 자연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던가. ‘멀지 않은 날’을 바라는 것도 오로지 나의 원일 뿐이다. 내가 정할 수 있는 날도 아니지 않은가.

  좋은 날 편안한 때에 깊이 든 밤잠을 이어가듯 그렇게 가면 좋겠다. 장관까지 지낸 어느 명사도, 한 생애를 찬란히 풍미하던 인기를 누리며 만인의 심금을 울렸던 어느 예인도 그렇게 가지 않았던가. 그들처럼 살지도 못한 주제에 그런 종언을 바란다는 게 민망은 하지만.

  왜 그 멀지 않은 날을 바라는가. 타고난 내 생애에서 내가 걸머져야 할 일은 거의 다 한 것 같다. 내 힘이 미칠 수 없는 일은 비워내야 한다. 욕심을 내봤자 더 나은 일을 할 수도 없다. 지금부터의 삶은 덤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덤이란 지나쳐서는 안 된다.

  ‘멀지 않은 날’의 내포에는 이런 상념도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보다 먼저 가고 싶다는 것이다. 옹졸한 이기심일지 모르지만, 원이 배고 한이 서려 있을 유흔을 내가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갊을 수 있으랴.

  또 하나 소이연이 있다면 아내를 너무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지금 나와 함께한 생애로 인해 병구를 이끌어 가고 있다. 때늦은 내 뉘우침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라며 심정을 다 모으고 있지만, 짐을 덜어주는 것도 치유의 한 방편이 되지는 않을지.

  부질없다. 하나도 내 힘과 뜻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이리 소망하고 있다니-. 내 심정이 아내를 치유케 해줄 수 있을 것이며, 누가 멀지 않은 그 날을 나에게 가져다줄 것이며, 영원히 깨지 않을 그 편안한 잠을 이루게 해줄 수 있단 말인가. 허공을 젓고 있다.

  나무는 하늘 바라기로 살고, 사람은 소원, 소망으로 살지 않는가. 마지막일 듯한 이 소원을 위해 간절히 기구를 모으며 살아 보련다. 간절하다 보면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으랴. 이 소원마저 내가 버리거나, 소원이 나를 버린다면 내 숨줄을 내가 다스리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 속에는 그럴 힘과 용기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다른 무엇이, 누가 내 소원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며 산다는 것이 채신없고 체면 모르는 일일지 모르지만, 이 소원 아니면 무엇을 잡고 살아야 하랴. 그래도 아내의 건강 회복을 다시 빌어 본다. 무엇을 더해야 할까.

  고즈넉이 누워있는 마른 나무와 더불어 소망을 보듬으며 산을 내린다.♣(202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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