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공수거를 바라며

이청산 2023. 6. 26. 14:55

공수거를 바라며

 

  오늘도 산을 오른다. 숲이 한창 우거지고 있다. 엊그제만 해도 가냘픈 가지에 연록 잎을 내밀고 있던 것이 오늘은 튼실해진 가지에 우거진 녹음이 되어 오르는 길을 문득 막아서기도 한다. 나무가 이렇게 우거지다가는 산이 어떻게 될까.

  산이 온통 풀과 나무 천지가 되어 내가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무 아니면 아무것도 들 수 없고 마침내는 나무들도 설 자리, 살 자리가 없어 결국이 숲이 망하고, 산이 황폐해지지 않을까.

  물론 기우다. 나무는 작은 씨앗으로 땅에 떨어져서 움이 나고 자라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면서 살아간다. 나무는 안다. 철을 맞이할 때마다 무엇을 달리해야 하고 얼마를 자라야 하는지를 안다. 그렇게 철을 거듭하려면 무엇을 가꾸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도 안다.

  그리하면서도 무한정 살려 하지는 않는다. 살 만큼 살았다 싶으면 선 자리에서 그대로 숨줄을 놓는다. 하얗게 강대나무가 되어 가다가 불어오는 바람결을 지고 그 자리에 눕는다. 비바람 세월에 몸을 녹여 제 태어난 흙으로 든다.

  그냥 흙으로 드는 게 아니다. 살아서도 갖은 생명체들의 쉴 곳이 되어주던 나무는 숨줄을 저세상에 준 뒤에도 뭇 짐승이며 미물, 팡이실에까지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 마지막 한 세포까지 다 빼주고는 소리 없이 흙이 된다. 말 그대로 공수래공수거다.

  젊을 때 원양어선을 타면서 번 돈으로 건설회사를 세우고, 평생을 두고 열심히 일하여 부를 일군 어느 사업가가 만년에 이르러 가진 재산 대부분을 모교에 기부했다고 한다.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라며 그리했다 한다.

  기부를 받은 사람들에 의하면, 점퍼 차림으로 산책하듯이 찾아와서 선뜻 거액의 수표를 건네는 모습이 기부가 취미인 것처럼 편안해 보이더라 했다. 재산만 내놓은 게 아니라 살면서 가져온 갖은 사심까지도 다 내놓은 모양이다. 공수래공수거를 몸으로 보여준 것 같다.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을 다시 돌아본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그 빈손이란 무엇이 비어 있다는 말인가. 그 말의 함의含意는 지극히 물질적인 것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같다. 태어날 때도 아무 재물, 재화를 가져오지 않았고, 죽을 때도 그런 걸 못 가지고 간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는 아무것도 안 가지고 태어나는가. 아니다.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는가. 처음에는 매우 여린 몸, 아주 작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지만. 살아가면서 몸은 커지고 마음에도 많은 것들이 들어찬다.

  그 몸으로 세상을 살기 위한 온갖 일들을 감당해내고, 그 마음에 세상살이의 희비 고락이며, 갖은 허실의 욕망과 애증의 번뇌를 다 담는다. 그러는 사이에 몸에는 온갖 풍파와 싸워 온 병마들이 채워지고, 마음은 삶의 고뇌에 치이면서 다단하고 번다해져 간다.

  가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그 몸과 마음을 다 두고 진실로 빈손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그걸 다 두고 가는 이야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용히 눈을 감는 득도한 고승과 같을지도 모른다. 모든 이가 다 그런 고승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은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며, 아름답고 애틋한 정과 그 기억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속진의 삶에서 얻는 울분과 분노를 마지막 순간까지도 삭히지 못해, 그걸 안고 가느라 눈도 옳게 감을 수가 없는 이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이를 갈면서 억지로 눈을 감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가져와서는 많이도 가져가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것을 안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많은 것 내려놓고 아주 가볍게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며 대부분 재산을 좋은 일에 기부한 사람이 바로 그런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는 욕심도 번뇌도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무를 다시 본다. 애초에 아주 작은 씨앗을 얻어 태어나 천지자연의 힘을 입어 조금씩 자라나고 커진다. 자연으로 나고 커지니 욕심이 있을 수가 없다. 커지면서도 잎이며 가지를 떨어뜨려 제 바탕으로 돌린다. 명이 다했다 싶으면 소용이 될 수 있는 곳에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린다. 그래서 숲은 언제나 푸를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무엇을 가져가게 될까. 내려놓지 못한 것이 많아 두렵다. 안고 가야 할 병마도 두렵지만, 자랑거리나 잘한 일은 별로 없이 살아오면서 저지른 허물과 잘못만 잔뜩 안고 가야할 것 같아 두렵다. 호오며 애증이든 공과든 모든 걸 씻고 빈손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편안히 누워 있는 마른나무를 보며 산을 내린다. 저에게도 울울창창한 시절이며 비바람 고행 세월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모든 걸 다 떨치고 저리 누워서 줄 것 다 주고 내려놓을 것 다 내려놓고 흙으로 공수거할 것이다.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로 나고 싶다. 저 공수거를 바라며.♣(202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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