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더 먹지 그래

이청산 2018. 6. 28. 13:01

더 먹지 그래

 

영미가 나를 생각하며 쓴 글이라면서 수필 한 편을 보내왔다그 사이 간간이 만나기는 했지만영미를 생각하면 사십 년 가까운 옛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그 세월에 얹혀서 나는 종심(從心)의 기슭을 오르고 있고영미는 지명(知命)의 고갯마루를 넘어서고 있다어느 신문의 문학에 관한 기사에서 나를 보고 내 모습을 떠올리며 지난날을 그리워했단다.

그 때 영미는 고등학교 3학년내가 맡고 있는 학반의 실장이었다착한 성품에 마음 씀씀이도 넉넉하여 친구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었다나도 저를 굳게 믿으며 여러 가지 학급 일을 많이 시켰다무슨 일을 시켜도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무던하게 해내곤 하던 영미였다.  영미가 보내온 글이 나를 울고 웃게 한다속절없이 가버린 세월이 눈물 나게 하고까마득히 잊고 있던 소곳한 기억들이 웃음 짓게 한다나는 그때 욕심 많은 선생님이었단다다른 반보다 무엇이라도 나야한다며 실장인 자기에게 요구하는 게 많았지만늘 친구들 편에만 섰던 자기 때문에 선생님이 많이 불편하셨을 거라며 걱정했다내가 그랬던가.

어쩌면 그런 욕심은 내게 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그 욕심 때문에 내가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저들이 힘들었을 것이다영미의 말에 의하면 나의 퇴근은 또 다른 출근이 되어 밤낮을 저희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했다고 한다그때 나는 그것이 으레 내가 그렇게 해야 할 일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그래서였던지 영미는 우리 반 진학률이 제일 높았다고 자랑 삼아 회고한다그런 것에서 저들을 힘들게 했던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 수 있었을까.

나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영미의 영롱한 기억 하나가 또 나를 웃고 울게 한다그 때 아이들은 문화제 준비며 졸업앨범 제작 문제 등으로 실장들끼리 교내 매점에 모여 회의도 하고 일도 하면서 저희들 간식 비용을 애교 삼아 담임 앞으로 달아두기로 한 모양이었다담임선생님들의 반응이 어떠하실까 걱정도 하면서 다음에 매점에 가서 장부를 보니영미가 내 앞으로 단 그 외상값 아래 더 먹지 그래라며 다섯 글자를 적어 놓았더란다.

그 다섯 글자가 오십 자오백 자가 되어 자기를 격려해주어 친구들에게 어깨를 으쓱하게 했단다노발대발한 선생님도 없지 않았고 보면 그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던지 지금까지도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내가 그렇게 한 일도 있었던가내 기억으로는 헤아려지지 않지만 내가 그렇게 했다면딴은 아이들을 사랑하노라 하는 조그마한 마음이 요동했던 것 같다젊은 날의 해맑은 일들이 따뜻한 미소를 머금게 하고그런 일들을 기억의 심연 속에 묻어버린 세월이 눈물겹다.

영미는 또 내가 잊어버린 것을 잘도 기억하고 있다자취생이었던 영미가 토요일 오후에 점심도 먹지 못하고 먼 길을 가야하는 걸 보고내가 집으로 불러 아내를 시켜 점심을 먹여 보내더란다내가 그렇게 했다면 저의 성실성이 사랑스럽고 대견해서였을 것이다그 마음을 그때 영미가 알았을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영미는 학교를 졸업하면서 나와 같은 전공의 국문과에 진학하였다국어가 좋더라고 했다대학을 마치자마자 바로 결혼하였는데결혼식에 내가 갈 수 없어서 아내를 보내어 축하해 주었던 것을 영미는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있다아이들을 다 키워놓고는 논술학원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전공을 살려나가고 있다고 한다연륜이 쌓이면서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을 글로 정리해 보고 싶어 수필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그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어쩌다 간혹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오래 전 어느 날 산행 중에서울릉도 가는 선착장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내 아이 결혼식 때 찾아와 만나기도 하고한번 보자 하여 두 번을 만났다그중 한 번이 어느 해 스승의 날’ 무렵 내가 재임 중인 학교에 찾아온 것이다한 반 친구 지인이하고 같이 와서 지난날을 함께 추억했다.

그 때 내 사무실에 감돌던 난향(蘭香)의 기억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나를 생각나게 한다고도 했다그 난향의 사무실을 떠난 지도 강산이 변할 세월로 흘러가고 있지만그 날 영미와 지인이를 만난 감회를 영미와 지인이라는 제목의 글로 쓰기도 했는데그 글이 실린 책을 보내주었더니 그리 좋아할 수가 없었다이따금 전화 목소리를 나누면서 인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나를 생각하며 쓴 글 한 편을 보내온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제목 더 먹지 그래는 영미가 보내온 글의 제목 그대로다영미가 일깨워준 기억의 그때를 돌아보니 내 생애에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 같다그 시절을 기리고 싶어 저의 글 제목 그대로를 나의 글제로 삼았다그런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어찌 올 수 있으랴만내 남은 세월 어디쯤에 그런 아름다운 기억 몇 자락쯤 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

영미의 글은 내 눈에 비친 선생님은 피부에서도영혼에서도 모두 주름살을 찾아볼 수가 없다그 모습에 나를 비춰 본다.”라며 끝맺고 있다민연한 말이다영미의 말처럼 주름살 없는 영혼 되어 살다가 맑은 모습으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혼에 주름살이 없을 사람은 오히려 영미일 것 같다그 도타운 마음은 영미를 청옥같이 맑은 영혼으로 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세상과 나의 인연 속에 맑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영미가 있는 것만 해도 내 영혼 어디쯤 한 자락은 맑아질 수 있을 것 같다.(2018.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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