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카펫을 활기차게 내디디며 입장했다.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붓이 걸어왔다. 아버지는 신부의 손을 신랑에게 쥐어 주었다. 하객들은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회장님의 맏딸이 결혼하는 날이다. 시낭송가 모임을 이끌고 있는 회장님은 시를 쓰며 낭송도 하고, 노래도 즐겨 부른다. 딸이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시인 어머니가 시인 어머니를 만나 서로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이들이 오늘 이 자리에까지 서게 된 것이다.
신랑과 신부는 주례대 앞에 섰다. 신랑의 학교 스승이신 주례께서는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를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며, ‘성대모사는 하지 않겠다.’는 유머와 함께 저들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주례사를 풀어나갔다. 신랑에게 ‘신부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느냐?’고 물으니 말 떨어지기 무섭게 “예뻐서요!”라고 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신뢰감이 만나자마자 생겼다.’고 하더란다. 그러면서 자기는 ‘모든 일을 신중하게 결정하는 편인데,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빨리 내린 결정이 이 사람과의 결혼’이라고도 하더라 했다. 신부는 ‘결혼하지 않고 살겠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이 이를 만나고 그 마음이 쉽게 바뀌어 버렸다.’고 하면서‘늘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믿음을 두었으면 그런 말들을 했을까. 이어서 차이에 대한 존중, 먼저 스스로 행복하기,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임을 알기에 대한 당부로 주례사를 펼쳐갔다. 그렇게 서로 독립 인격체로 존중해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은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한 나무가 되어 사는 연리목이 아니라, 뿌리와 몸통이 다르지만 가지를 서로 붙이고 사는 연리지와 같다고도 했다. 서로 싸우게 될지라도,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잃지 않으면 된다며 다시 한 번 축하해 주는 말로 주례사를 맺었다.
저들의 언어로 풀어내는 주례사는 신선했다. 주례사가 계속될 동안 식장은 조용했다. 어린아이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누구도 주례사에 솔깃해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긴장감을 떨쳐버릴 수 없을 신랑,신부도 저들의 말을 전하는 말씀들을 어찌 귓등으로 흘릴 수가 있을까.신랑 신부의 행복한 출발을 기약해 줄 것 같은, 청량한 예감이 드는 말씀들이었다. 
대금 연주가의 축하 연주에 이어, 다음 순서는 놀랍게도 신랑, 신부가 직접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를 듀엣으로 부른단다. 이것도 신선하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당신에게 바라는 모든 것(All I Ask Of You)’이라는 노래를 부르겠단다. 신랑 신부가 마주보며 마이크를 잡았다. 하객들의 눈과 귀가 모두 이들에게로 쏟아진다. 신랑과 신부가 라울(RAOUL)과 크리스틴(CHRISTINE)의 역을 나누어 맡았다. 전주에 이어 먼저 신랑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내가 여기 있잖소, 아무 것도 당신을 해칠 수 없어요./ 내 말이 당신을 따뜻하게 진정시켜줄 거요./ 내가 당신의 자유가 되게 해주고……” 극중의 라울 못지않은 명문가 출신인 신랑은 지금은 외국 유학 중으로 박사 학위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한다. 신부의 노래가 낭랑히 이어진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 동안 나를 사랑한다 말해주세요./ 여름날의 이야기로 나를 달래줘요./ 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해주세요, 지금 그리고 언제나……“ 신부의 목소리가 점점 카랑해진다.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신부는 세상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신랑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노래로 풀어내고 있는 듯했다. 지성과 지성의 만남이 더욱 빛나는 지성으로 거듭나 우리 사는 세상의 찬연한 빛이 될 수 있기를 오늘의 모든 하객들은 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객들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어쩌면 결혼식장이 이렇게 고요 속으로 빠져들 수가 있는가. 그 고요가 신랑의 목소리를 더욱 간곡하게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곳, 당신 곁에 나를 원한다고 말해주시오./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나도 가게 해 주시오./ 크리스틴, 그게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모든 것이라오.”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모든 것, 그랬다. 사랑이란 어디를 가도 함께 가는 것이다. 기쁨 속을 비상해도 슬픔 속을 침잠해도 어디라도 함께 가는 것이다. 신부의 목소리는 한결 청랑해진다. “나와 하나의 사랑, 하나의 삶을 함께 하겠다고 말해주세요./ 당신의 그 말을 따르겠어요.……” 두 사람의 노래가 끝났을 때, 이제야 관객들이 돌아왔는가. 해일 같은 박수 소리가 온 식장 안을,마주 보고 서 있는 저들을, 주례께서 지켜보고 있는 단상을 휘덮어버렸다. 거대하고 거룩한 축복이었다.
부모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데 어머니는 사위를, 딸을 꼭 껴안았다. 돌아선 모습밖에 볼 수 없었지만 어머니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을 것 같다. 자식의 대견함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기도 하겠지만, 저들의 사랑과 행복을 빌어주는 축복의 눈물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객들에 대한 인사를 마치고 저들은 행진해 나갔다. 이제 저들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인정과 존중으로 새겨질 사랑과 행복의 길로 가는 것이다. 어느 하객이 말했다. “이런 결혼식 처음 봤네요. 이토록 감동적인……” 이토록 감동적인 결혼식은 누가 만들었을까. 서로에 대한 저들의 신뢰감이 만들어낸 것일까. 시인 어머니들의 정겨운 감성이 이런 결혼식을 이루어지게 한 것일까. 하객들은 식이 끝나도 쉽사리 일어설 줄 몰랐다. 당신에게 바라는 모든 것-, 신랑과 신부를 영원한 행복으로 싸안아 줄 것 같은 그 노랫소리의 여음이 하객들을 놓아주지 않아서였을까. 그 노랫소리는 아주 오래도록 하객들을 붙들고 있을 것 같았다.♣(2018.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