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늑골 도덕경

이청산 2017. 12. 27. 15:40

늑골 도덕경

 

늑골 몇 개가 상하는 변을 당했다요근을 튼실히 해보겠다며 하루걸러 한 번씩 자전거타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어느 날 힘주어 달리다가 넘어지면서 철관에 오른쪽 옆구리를 부딪쳐 늑골에 금이 가버렸다그 참변으로 인해 늑골은 나에게 아주 새롭게 새겨지는 존재가 되었다.

늑골이 상하니까 할 수 없는 일이 매우 많았다아니쇠창에 찔리는 듯한 고통과 함께 해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하품을 하거나 재채기를 해야 하는 소소한 일들이며 특히눕거나 일어나거나 돌아누울 때에는 아수라 같은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 모든 것이 모두 늑골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어쩌면 몸의 생기가 늑골에서 다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몸의 여러 기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심하게 부러지기라도 하면 폐며 간비장 등을 다치게 하여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니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으로 말하면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쯤 된다고 할까서까래가 부러지거나 내려앉기라도 할 양이면 집의 꼴이 어떻게 될까지붕이 온전치 못하면 집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몸의 어느 기관인들 긴요치 않을까만늑골이 중한 줄을 다쳐보니 다시 알겠다.

그런 걸 두고 평소에는 아무런 걸림도 새김도 없이 지나치며 살아온 것이 새삼스레 돌아보인다사람도 물건도 여의어 봐야 그 빈자리가 두드러짐을 느끼듯 으레 제 자리에 있어 제 기능을 하는 것이라 무심코 지나쳤던 몸의 일부가 이리 긴히 느껴질 수가 없다.

도덕경(道德經)에 선행무철적(善行無轍跡)’이란 말이 있다. ‘좋은 일은 남몰래 한다.’는 뜻이겠지만여기서는 하면서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것이 자연의 일이란 뜻으로 쓴 말이라 한다그러고 보면 육신의 모든 얼개도 자연의 일이라 별 흔적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안 하면 안 될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늑골이 중하기는 짐승이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그런데 조조(曹操)는 계륵(鷄肋)을 두고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라 했을까그 건 순전히 늑골을 먹을거리로만 보는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일 뿐닭인들 늑골을 다치거나 그것이 없어지면 온전할 수 있을까.

늑골이 상하면 고통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가만히 두어 절로 아물고 굳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약물요법이라고 해봐야 소염제나 진통제일 뿐부러진 것을 붙여주지는 못한다매사를 조심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게 의사의 처방이다.

힘든 일도 하지 말아야 하고무거운 걸 들지도 말아야 하고빨리 걷지도 말아야 하고.흔들리는 무엇을 타지도 말아야 하고소리도 높이 지르지 말아야 하고크게 울지도 웃지도 말아야 하고잠을 자되 반듯이 자야하고산목숨으로서 어찌 능히 지켜낼 수 있는 일들일까.

아내의 쇄언으로부터 주위의 염려 어린 충언들까지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 아니지만일거수일투족을 살얼음 딛듯 해나기란 실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도덕경의 자연의 순리를 잘 지키면 몸이 다할 때까지 위태로울 게 없다.(復守其母沒身不殆)’는 말씀을 주문처럼 외며 고행의 고독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어찌하면 자연의 순리를 잘 지키는 일일까무엇을 드러내려무엇을 찾으려무엇을 자랑하려무엇을 난 척하려 자전거를 그리 내쳐 달렸단 말인가도덕경의 부자현(不自見), 부자시(不自是), 부자벌(不自伐), 부자긍(不自矜)하라는 말씀을 거듭하여 뇐다.

그 말씀들을 거듭 돌이키는 것은어차피 어쭙잖은 행적으로 살아온 이적까지의 내 삶에다가 새삼스레 무슨 교훈 같은 것을 얹어 다시 기댈 언턱을 찾아보자 함이 아니라한발 한발 조심스레 디뎌야하는 힘든 시간들에 거는 주문 같은 부적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다.

애가 탈 때는 부적도 마음에 큰 위안이 되어주는 것을 우리는 살아오면서 겪어보지 않았던가그 주술 서린 부적 때문이었을까여리박빙의 조바심 태우는 시간들이 흘러가는 사이에 돌아누우면서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되고기침을 하면서도 옆구리를 감싸 잡지 않아도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안도의 숨소리가 나도 몰래 새어나왔다.

또 그런 시간이 조마거림 속에 흘러가주는가 싶더니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조금 힘주어 걸어도 결림이 훨씬 덜해지면서 몸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다시 도덕경 한 구절을 감사의 주문으로 응얼거린다.

도를 받들고 덕을 귀하게 함은 무릇 그렇게 하라 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절로 그냥 그럴 뿐이다.(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자연의 도리가 존귀하다는 말씀일 것이다이제 곧 늑골의 자리를 다시 모른 척 잊게 될 때가 오게 될지도 모른다그 자리는 잊더라도 자연의 순리에 소홀하지 말기를 지금 내 늑골이 찌르듯이 일러주고 있다.(201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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