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알록달록 문학기행

이청산 2017. 11. 19. 10:47

알록달록 문학기행

 

화보용 추억을 만들기로 했다뜻 맞는 사람끼리 마음을 모아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함께 공부도 하고공부한 것을 모아 책으로 엮자고도 했다모임을 만든 지 한 해를 보내면서 그간의 자취를 모아 첫 책을 펴내기로 했다보기도 좋고 속도 실한 책을 꾸며보자 했다.

권두를 장식할 화보에는 문학회 창립 정경이며 공부해 온 몇 장면을 담을 것이지만그윽한 풍취가 있는 장면도 곁들이면 좋겠다고 했다이 좋은 단풍철에 단풍이 있고 문학이 있는 곳이 배경으로 어우러지면 좋지 않을까혼례를 앞둔 신랑 신부가 아리따운 추억의 웨딩 사진을 찍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 보자 했다.

백수문학관이 있고단풍든 산색도 그윽할 김천에 가보기로 했다어느 토요일 차를 나누어 탄 회원들이 오정 무렵 직지사 부근에 닿았다갖은 산채 점심상으로 요기부터 하고 황악산을 바라보며 직지사로 향했다. ‘알록달록 문학기행이라 이름 붙인 나들이다.

높다란 장승과 갖가지 조형물이며 명시 빗돌이 서있는 공원을 지나는데언덕바지 한쪽에 고려성·나화랑 형제 노래비가 보인다고려성(본명 조경환)은 나그네 설움’, ‘고향에 찾아 와도’ 등을 작사하고나화랑(본명 조광환)은 무너진 사랑탑’, ‘향기 품은 군사우편’ 등을 작곡하면서많은 명가수도 길러내어 우리 가요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김천 출신 음악가다.

그 공을 기려 흉상을 세우고그들의 생애와 대표곡의 가사를 새겨놓았다우리 귀에 깊숙이 젖어있는 그 가사들을 읽는 사이에 가락이 절로 흥얼거려진다흉상 앞 잔디밭에 앉았다.

이 음악가들 앞에 앉을 거라고 미리 내다보기나 한 듯회장님은 여러 개의 하모니카를 꺼낸다곡의 성격 따라 부는 하모니카도 다르다며 그 중 하나를 골라 나그네 설움을 구성지게 연주한다동요도 부르고 가곡도 부는 사이에 우리의 기행이 단풍 빛처럼 무르녹아 간다.

직지사 경내로 들어서려는데 김천이 고향인 사무국장님의 향우 두 분이 우리 일행을 마중 나왔다향우님들은 고맙게도 가람을 안내하면서 곳곳에서 펼쳐든 기념 플래카드 뒤의 우리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주기도 했다.

일주문을 지나고 대양문금강문천왕문을 거쳐 높다란 만세루에 이르렀을 때누대 앞에 걸려있는 널따란 현수막이 눈길을 잡는다. ‘한심이 일대기라는 제목으로 150여 구의 4·4조 가사를 새겨놓았다. ‘대웅전에 천원놓고 일억벌게 빌었으며 관음전에 천원놓고 만사형통 기원하고라며 신심 깊은 불자인 체하는 한심한 신도들을 허물하는 내용이다.

그런 사람들을 깨우치려는 것 같지만거룩한 절집에 저리 내다붙인 스님의 깊은 속내는 무엇일까설법일까넋두리일까저런 경구를 붙여야 하는 천년 고찰의 속사정에 궁금하고도 안타까운 심사가 슬며시 더해진다.

신라 눌지왕 2(418) 아도화상(我道和尙)이 선산 도리사를 개창할 때 함께 지었다는 유구한 고찰 직지사 대웅전 앞에 선다고탑 사이에서 바라보는 대웅전은 창건 후 몇 번의 중창 과정을 거쳤다지만엄연한 고색의 단청이 가람의 깊은 유서를 전언하고 있다저 고색이 일러주는 창연한 세월 속을 오늘 우리가 걸으며 삶과 문학을 생각한다.

관음전 앞 단풍 길을 걷는다걸으면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길이라 했다그야말로 알록달록 단풍이 곱게도 물들어 길 걷는 마음이 단풍처럼 아름다워지지 않고서는 안 될 것 같다이 단풍을 그리며 오늘의 기행을알록달록 문학기행이라 했던가마음에도 몸에도 온통 알록달록 물들 것만 같다.

어느 여성 회원이 단풍 아래에서 포즈를 잡는다. “단풍 빛이 그만 죽어버리네요.”하니 단풍처럼 고운 미소를 지으며 단풍 빛으로 얼굴을 붉힌다모두들 단풍잎 사이에 선다그리고 온몸에 단풍 물을 들인다.

단풍 빛 따라 걷노라니 찻집이 나온다단풍 빛을 곁에 두고 야외 탁자에 앉았다산산한 바람결에서도 다홍빛 단풍 물이 배어날 것 같다찻집 여주인이 따끈한 대추차를 내온다오늘의 향우께서 베푸신 차라 했다단풍 빛처럼 발그레한 인정 빛이 찻잔 속에 번진다.

그 정에 겨워진 듯 성악을 즐겨하는 남성 회원은 유경환 작시의 산노을을 맑고 부드러운 소리로 그려내고시낭송을 사랑하는 여성 회원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며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을 정감 그윽이 읊는다.단풍 빛이 더욱 찬연해진다.

낭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사무국장의 전화벨이 다급히 울린다.피치 못할 사정으로 동행을 못했던 한 회원이 지금 달려오고 있단다모두 환호한다백수문학관에서 만나자 했다날리는 단풍잎을 어깨에 머리에 얹으며 백수문학관에 이른다.

숨 가쁘게 달려온 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얼싸안으며 알록달록 문학기행’ 플래카드를 펼쳐 든다플래카드를 앞에 두르고 문학관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박는다.정념 빛이 단풍 빛보다 더 고와지는 순간을 카메라가 잡아낸다.

문학관에 들어서자 해설사가 우리 걸음을 기다렸다는 듯 백수(白水)정완영(鄭椀永 1919 ~ 2016) 시인의 생애와 문학을 유수로 풀어간다.김천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김천(金泉)의 ()’을 풀어 백수(白水)’로 호를 삼았을까호처럼 맑고 정갈한 시정신으로 우리나라 시조 문단의 거봉으로 살았던 시인의 시와 삶이 은은한 향기가 되어 문학관을 감돈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꽃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적막한 봄’)가야 할지먹먹한 가슴 안고 문학관을 나서는 걸음 위로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책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만감이 가슴 가득 명치를 밀어 올린다.

기우는 햇살을 등에 지고 귀로를 달린다오늘 우리의 기행이 아름다운 걸음뜻 있는 행보로 삭혀지기를 비는 마음이 우리의 앞을 먼저 달려 나간다우리가 기리는 문학을 위하여우리가 처음으로 펴내고자 하는 책을 위하여-.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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