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기다림에 대하여(3)

이청산 2015. 9. 20. 14:26

기다림에 대하여(3)
-상사화의 일생

 

홍자색의 아름다운 꽃을 우아하게 피우고 있던 마을 숲 상사화가 다 져버렸다. 꽃덮개부터 시들면서 꽃대 끝에 파란 망울을 맺어두고 까맣게 오므라들었다. 하나로 우뚝 선 꽃줄기 끝에 꽃을 따라 여러 개로 갈라졌던 줄기도 점차 땅을 향해 굽어지면서 말라갔다.

꽃 진 자리에 열매처럼 맺힌 저 망울은 무엇인가? 상사화는 열매를 맺지 않고 땅속의 알뿌리로 불어난다 하지 않는가. 익어서 종자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열매라 하지는 않지만, 작은 씨앗을 품은 저 망울로 지상에 살다간 흔적을 남기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푸른 잎이 먼저 나서 자라다가 다 말라 땅으로 스미고 나면 비늘줄기에서 꽃대가 솟아 꽃이 피어난다. 잎과 꽃은 서로 만나지 못 하고 그리워만 하다가 한뉘를 지우는 데에 연유하여 상사화(相思花)라 불리게 된 이 꽃은 세속의 여인이 스님을 연모하다가, 혹은 세속의 여인을 그리워하던 스님이 그리움을 못 이겨 죽어 꽃이 되었다는 슬픈 사랑의 전설을 품고 있다.

쌓인 낙엽을 뚫고 떡잎을 빼족이 내민 것은 겨울 찬바람이 채 가시기 전인 3월 초순 어느 날이었다. 초봄의 쌀쌀한 기운 속에서 시나브로 돋아난 잎은 봄이 익어가는 4월에 들면서 넓적하고 긴 난초 잎같이 수북하게 자라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개난초라 부르기도 한다.

곧고도 풋풋하게 솟아오르던 잎이 5월 중순 들면서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말라들기 시작했다. 황갈색 연한 빛이 짙어지면서 조금씩 말라들다가 모든 푸나무들이 한창 싱그러워지는 5월 말경에는 거의 모든 잎들이 외틀어지고 비틀어지며 기운을 죄다 소진한 듯 바싹 말라버렸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부터는 다른 풀들은 무성히 우거져 가는데, 마른 잎이 땅으로 스며들 듯 내려앉더니 6월 말경에는 겨울날의 마른 풀잎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땅바닥에 붙어버렸다. 7월 중순이 들면서는 녹듯이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는 새 풀들이 돋아났다.

, 이제 멀지 않았구나. 그 싱싱하던 잎이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갔으니 이제 꽃을 피울 것이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다는 국화의 개화보다 더욱 살뜰한 희생을 안은 꽃이 필 것이다.

꽃을 위하여 기꺼이 스러져 간 잎의 한생은 새끼를 위해 목숨도 아낌없이 바치는 가시고기의 생애보다 더 경이롭고 처절한지도 모르겠다. 가시고기는 새끼를 보고서 죽어갈 수 있지만, 잎은 꽃을 위해 세상을 떠나가면서도 상봉도 못한 채 스러져 가야하지 않는가.

잎과 꽃의 애틋한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잎을 두고 시인은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어긋나 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이해인, ‘상사화’)라고 한 지도 모르겠다.

꽃 피기를 기다린다. 잎이 진 자리에 피어날 우아한 꽃들을 기다린다. 7월 중순 초입에 자취를 완전히 감춘 잎 자리는 중순이 다 지나고 하순도 넘어 달 바뀌어 갈 때까지도 감감하기만 했다. 해마다 7월 말, 8월 초면 꽃줄기의 싹을 내밀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올여름 상사화 꽃을 유달리 기다리는 까닭이 있다. 그늘 좋은 마을 숲 한 자리를 차지하여 피고 지는 상사화는 해마다 여름철이면 숲을 찾는 행락객에 의해 꺾이고 짓밟히기를 거듭했다. 잠시나마 숲을 정겹게 꾸며주는 그 꽃이 처참히 꺾이는 게 하도 안타까워 지난 가을부터 그 둘레에다 금줄을 쳤다. 그 후로 그 꽃은 내 기다림의 마음 밭에서 사는 꽃이 되었다.

기다리는 마음을 헤아려서라도 좀 일찍 피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올여름 유난히 가문 날씨 탓인가. 보듬는 정성이 부족한 탓인가, 기다림이 간절할수록 쉬 오지 않는 듯이 여겨지는 마음 때문인가. 기다림이 길수록 초조함도 커갔다. 날마다 아침이면 그 꽃밭으로 가서 살펴보건만 싹틀 기미를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드디어 한 곳에서 애순을 뾰족이 내밀었다. 불안과 초조가 깊어가던 8월 중순 초입의 어느 날이었다.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기다림은 반가움을 낳고, 반가움은 사랑을 더욱 깊게 한다. 입맞춤이라도 해주고 싶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군데군데 싹이 돋아 자라기 시작하더니 8월 중순이 되면서 제법 큰 꽃줄기를 피워 올리며 꽃망울을 벙글어 내었다.

드디어 꽃을 터뜨려낸 것은 여느 해보다 두어 주일 늦은 8월 중순, 싹이 돋기 시작한지 너댓새 만이었다. 이리 쉽사리 솟고 어렵잖게 꽃피울 걸 왜 그리 애를 태웠던가. 점점 더 큰 송이를 만들어가며 피는 꽃은 다시 너댓새가 흐르면서 함초롬한 꽃술과 함께 크고 우아한 꽃을 피워냈다. 피기를 기다린 지 근 한 달 만이요, 피어난 지 한 열흘 만에 이리 아름다운 화관을 달고 섰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맑고 고운 빛깔의 화관이 우러르고 있는 곳은 높은 하늘이 아니었다. 노을 비끼는 하늘 끝 혹은 먼 산 한 자락을 고개 숙여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누구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저를 두고 먼저 간 잎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잎은 꽃을 그리다 가고, 꽃은 또 저렇게 잎을 그리워하고 있는가.

그 안타까움과 그리움도 잠시, 한 열흘 우아한 화관을 펼치고 있었을까. 꽃잎 가장자리 끝부터 조금씩 물기를 잃고 말라들기 시작했다. 그리 못 견딜 사연이 있는지 내 긴 기다림도 아랑곳없이 너무 야속히 떠나려한다. 하나씩 말라가던 꽃잎이 한창 때의 모습을 완전히 거두어 갈 때까지는 또 너댓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잎이 하도 그리워 진득이 머물 수가 없었던가.

최영미 시인은 선운사에서꽃을 보고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이라 했다. 무슨 꽃이었을까. 여름이면 선운사를 짙붉게 물들이는 꽃무릇일 것 같다. 그 또한 상사화속이 아니던가. 허망하다. 기다림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 저의 화기보다 내 아쉬움이 더욱 길 것을 생각하니 허전하고 아릿하다. 그래서 시인은 또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이라 했던가. 나만의 심정은 아닌 것 같다.

낙담에 젖을 일은 아니다.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서 그 꽃이 피어났듯이, 새로운 기다림과 그리움은 다시 새로운 잎을, 꽃을 피워낼 것이다.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라 하면서도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 하지 않았던가.

기다림이란 희망이나 기대를 가지고 그대로 변치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 했다. 간절한 그리움 때문에 그 잎이며 꽃이 그리 쉬 지는지도 모르겠다. 그 간절함으로 나도 기다릴 것이다. 찬연한 화관의 기억을 안고, 내년 여름 내 그리움 속을 찾아올 그 꽃을 기다릴 것이다. 기다림이 없다면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기다림은 바로 내 삶의 힘이다. 그리움은 아릿하지만 삶을 삶답게 하는 빛나는 힘이다.

내년의 상사화는 또 어떤 빛으로 내게 올까.(201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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