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허전함과 쓸쓸함을 위하여

이청산 2015. 9. 22. 18:52

허전함과 쓸쓸함을 위하여
-세 번째 시낭송 콘서트를 마치고

 

올해 시낭송 콘서트의 테마는 사랑으로 잡기로 했다. 언제 들어도 어디에서 느껴도 그립기만 한 것이 사랑아니던가. ‘시는 사랑을 타고는 주제에 시로 새기는 아름다운 사랑법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리고 사랑 시들을 찾아 나섰다.

삶에 대한 사랑, 삶의 터에 대한 사랑, 그리운 사람에 대한 사랑, 어머니의 포근한 사랑, 일상의 사소한 사랑, 모든 사랑이 우리의 관심사다.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여우도 우리의 사랑법 속으로 불러들였다. 몇 달을 두고 그 시들을 외었다. 가슴속 깊숙이 담아 넣었다.

우렁찬 징소리와 함께 막이 올랐다. 대금 연주를 시그널뮤직으로 하여 회장과 부회장이 듀엣으로 박두진 시인의 어서 너는 오너라를 낭송하며 무대를 열어나간다. 민족의 해방과 민족 공동체적 삶에 대한 염원을 담아 나라와 민족 그리고 이 땅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다감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콘서트의 주제를 이끌어 간다. 여 회장의 청아한 목소리와 남 부회장의 굵직한 목소리가 앙상블을 이루며 시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가고, 관객들은 숨을 멈춘 채 황홀한 감동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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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힘찬 시로 무대를 연 회장이 관객들을 향해 인사말을 하고 내빈 대표가 나와 오늘의 콘서트를 축복하는 순서에 이어 다시 낭송이 펼쳐진다. 얼마나 마음 졸이며 설렘을 쌓아왔던 무대던가. 고운 한복 차림의 여회원이 등장하여 신달자 시인의 여보, 비가 와요를 마치 남편에게 속삭이는 듯한 여인의 부드럽고 정겨운 목소리로 풀어낸다. 출연자의 우아한 모습과 정감 어린 목소리에 빠져들던 관객들은 낭송이 끝나자 환호와 박수를 쏟아낸다.

어머니의 사랑을 주제로 한 윤송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가 이어진다. ‘늦게 온 소포’(고두현), ‘둥근, 어머니의 두레 밥상’(정일근), ‘불주사’(이정록),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 드리며’(이승하)를 한복을 개성 있게 차려입은 세 여회원과 한 남회원이 등장하여 한 연씩 섞어 돌아가며 낭송하는데, 관객들은 스르르 눈 감으며 어머니 그리운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따뜻한 목소리들이 무대를 넘치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장내를 달구었다.

감미로운 팬플루트 연주로 숨을 고르면서 수필가 회원의 자작 수필 낭독 순서가 이어진다. 산의 은근하고도 포근한 마음을 그린 산의 가슴내 마르고 가난한 가슴으로 하여 아프고 서러웠던 이들은 없었을까,……산의 가슴이 그립다. 따뜻하고 포근한 가슴이 그립다.”라며 차분히 낭독해나가는데 객석의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손을 들어 엄지를 세우기도 한다. 낭독이 끝나자 소나기로 쏟아지는 박수와 파도치는 환호성이 객석을 덮었다.

두 여회원이 등장하여 영원하고도 의지 굳은 사랑을 노래하는 정윤천 시인의 십만 년의 사랑을 포근하고도 의지에 찬 목소리로 연을 나누어 또는 한 행씩을 반복해 가며 낭송해 나갔다. 마지막 행 너에게로 닿기까지 십만 년이 걸렸다를 함께 낭송할 때는 지극한 사랑의 결기가 선연히 서려오는 것 같았다. 객석에서는 출연자가 인사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 갈 때까지도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중에서 어린 왕자와 꽃 그리고 여우와의 만남 부분을 <어린 왕자의 꿈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각색, 연출하여 노래와 함께 엮어나가는 퍼포먼스 순서다. 출연진들이 캐릭터 엠블럼을 가슴에 달고 주고받는 대사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사이사이에 남녀 두 회원이 기타를 치며 모든 출연자와 함께 어린 왕자의 꿈과 사랑 이야기를 경쾌한 가락으로 노래 부른다. 여우가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 거야.……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 줘!”라는 대사를 진지하게 풀어낼 때는 모든 관객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이기도 했다. ‘랄랄랄~’로 시작하는 마지막 노래를 부를 때는 무대와 객석이 오래 전 하나인 듯 모두 한 목소리가 되면서 해일 같은 박수 소리가 무대를 몰아쳐 왔다.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하는 성악가의 성악으로 객석을 가라앉히고, 짙은 녹갈색 긴 바바리코트에 헌팅캡을 눌러 쓴 한 회원이 등장하면서 곽재구 시 사평역에서가 이어지는데 출연자의 이색적인 코디에 관객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눈이 내리는 장면을 배경으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구성지게 읊조려 나갔다. 등장할 때의 환호와는 달리 촉촉이 젖어드는 정감 어린 목소리 속으로 깊숙이 빨려들며 시의 분위기에 한껏 몰입하던 관객들은 낭송이 끝나자 다시 깨난 처음의 환호와 함께 힘찬 박수소리가 객석을 휘감았다.

콘서트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출연자가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한 시극 <너를 위한 고백> 이 펼쳐진다. 다섯 남녀 회원이 시 너를 위하여’(김남조), ‘당신을 기다리는 하루’(김용택),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폐광 마을’(김환재), ‘청산리 벽계수’(황진이)를 극적인 상황으로 구성하여 사랑의 모습들을 그려나간다. 한 회원이 황진이의 시조를 창으로 부르기도 하면서 낭송으로 사랑의 드라마를 엮어나갈 때 관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기도 하며 공감대 속으로 빠져든다. 출연자들이 손을 잡고 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일 때 관객들은 하나가 되어 폭포 같은 박수를 쏟아낸다.

오늘의 마지막 시노래 순서다. 기타를 맨 남녀 두 회원이 기타 연주와 함께 이육사의 청포도를 부른다. 여회원의 낭랑한 목소리와 남회원의 구성진 목소리가 화음을 이루면서 시를 읊듯 노래를 불러나간다. 터져 나온 앙코르로 김학래 곡의 내가를 부를 때는 출연자 모두가 무대 위로 올라와 손뼉 치며 관객과 함께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부른다.

내가 님 찾는 떠돌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 가겠소."하며 노래를 끝낼 때는 관객도 출연자도 목청이 한껏 높아져 있었다. 무언가 텅 비어져 가는 듯한 허전함 때문이었을까. 환호와 갈채는 아련한 환청이 되어 날고 있는 것 같았다.

준비한 순서를 모두 쏟아냈다. ‘올 랭 사인이 울려 퍼지는 무대음악을 뒤로 하고 관객들이 일어섰다. 사회자는 기념촬영을 한다며 모두들 무대로 나오라고 외친다. 기념사진이라도 남겨야 덜 허전하고 덜 쓸쓸할 것 같았다. 세 해째의 콘서트라 무대가 그리 생경하지는 않았었지만, 모든 것을 다 쏟아낸 뒤의 허전함, 빈 객석이 피워내는 쓸쓸함은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이 허전함과 쓸쓸함을 위하여 우리는 그토록 열심히 시를 외고 설레게 무대를 준비해 온지도 모른다. 쏟아내기 위하여 살아오고, 쓸쓸하기 위하여 열정을 다해 왔다고 할까.

우리는 사랑을 타고 흘러가는 시 속에서 시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사랑법을 보여주겠다고 호기에 찼었다. 오늘 관객들은 우리의 사랑 콘서트에서 사랑법을 깨쳤을까.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 우리가 어찌 세상의 마음을 바꿀 수 있으랴만, 오늘 인연을 나눈 사람들과 아주 작은 따뜻함이라도 함께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그간의 노심을 다 녹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그 허전함과 쓸쓸함 속에 많은 것을 담았다. 사랑의 뜨거운 환호를 담고 희망의 열렬한 갈채를 담았다. 시 낭송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삶의 소중한 힘이 될 수 있을 것들이다.

모두 끝났다. 기념사진 촬영도 끝나고 객석도 다 비었다. 소도구들을 챙겨 공연장을 빠져 나간다. 내년에는 더욱 허전하고 더욱 쓸쓸하자며, 그 바구니에 더욱 뜨거운 갈채를 담자며 공연장을 나선다. 초가을 맑은 바람이 귓불을 쓸며 지나간다.(201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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