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행복할 일밖에

이청산 2015. 2. 9. 21:14

행복할 일밖에

 

오랜만에 다시 뵙고 싶다며 가까이 살고 있는 미숙이랑 같이 다음 주말쯤 찾아오겠다고 희영이가 전화를 했다. 이태 전 이맘때도 곳곳의 동기 몇 사람을 수소문하여 함께 찾아왔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담임한 아이들과 꼭 21년 만에 상봉을 하여 나도 저희들도 모두 깊은 감회와 감격에 젖었었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떨치고 찾아와 주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도 반가운 일인가. 어서 오라 했다. 집에서 머잖은 문경새재에서 만나자고 했다.

희영이는 중학생 딸을 데리고 미숙이와 함께 달려왔다. 이태 전의 살가운 모습 그대로다. 반갑게 손을 잡았다. 나를 보고는 더 젊어진 것 같다고 했다. 함께 활짝 웃었다.

은자도 곧 도착할 거라고 했다. , 예쁜 글씨와 그림으로 학급신문을 곧잘 만들어내던 그 은자-. 23년 만에 만나는 은자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윽고 은자가 차를 몰고 나타났다. 원숙한 중년부인이 되어 있었지만, 얼굴에는 소녀 적 앳된 모습이 은은히 비쳐났다.

이 게 얼마만이야-!” 차에서 내리자마자 와락 안겼다. 저들도 서로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다. 그 멀고 깊은 세월의 간극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굳게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른다.

점심 자리에 함께 앉았다. 밥 먹기보다 그간의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 바빴다. 언제 퇴임하셨느냐, 어떻게 지내고 계시느냐, 건강은 어떠시냐며 가쁘게 물었다. 산수 좋은 곳에서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저희들끼리도 어떻게 살고 있느냐, 아이가 몇이냐, 친구 누구누구 소식은 듣느냐며 연거푸 물음을 쏟아낸다. 희영이는 사남매, 미숙이는 아들 둘, 은자는 딸 둘을 두고 있다고 했다. 희영이는 국가유공자(?)라며 웃음꽃을 피우는데, 희영이 딸도 엄마를 보며 방긋 미소를 짓는다.

은자는 대학 영어교육과를 나왔지만 중등 교사로 임용되기가 어려워, 다시 교육대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초등 교사로 근무 중이라 했다. 그 의지가 대단하다 했더니 희영이와 미숙이도 감탄했다. 은자는 그렇게 교직에 든지 13년이 되었고, 미숙이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면서 중견 간부가 되어 19년 직장생활을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했다. 희영이는 아이들 넷이 잘 커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라며 맑게 웃었다.

문득 생각나서 가져왔다며 은자가 내어놓는 책은 교지 선암(船巖)’이었다. 그 시절이 그리울 때마다 펼쳐보며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고 했다. 학교 역사 처음으로 내가 아이들과 함께 만든 책인데, 이듬해 내가 다른 학교로 전근한 뒤로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은자의 글도 실려 있고, 학급자랑 난에 같이 부르던 반가도 실려 있는 교지를 보며 그 시절 속으로 잠겨들었다.

한참 추억담을 수놓다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이라는 문경새재 길을 걸어보자 했다. 1관문 주흘관 옛 성문을 지나 옛날 선비들의 과거 길로 이름났던 유서도 새기며 그윽한 숲길을 함께 걷는데, 그 유서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탄하면서도 다시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던 김춘수의 이라는 시가 생각 난다기도 하고, 책에 나오는 희곡을 연극으로 꾸며보던 일이 참 재미있었다고도 했다. 처음으로 교지도 내고, 전시회도 하고, 합창대회를 했던 일을 잊을 수 없다며, 그런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했다.

우리 반 합창 지휘는 은자가 했었잖아! 은자는 그때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했었지.”

어머, 그 걸 기억하고 계세요?” 은자는 피아노가 무척 배우고 싶었지만, 가르쳐 줄 선생님도 없고, 형편도 되지 않아 교회에 가서 책을 보며 혼자 어렵게 피아노 공부를 했다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나그네들이 쉬어갔던 주막에서 희영이가 준비해온 향기로운 차를 마시고, 신구 관찰사가 임무교대를 했던 교귀정을 지나 제2관문 조곡관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조령산 마루를 향해 달음 하고 있었다. 관문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오는 길에서도 추억담은 잦아들 줄 몰랐다. 그 때 누구는 누구와 친했고, 그래서 누구누구는 동기끼리 결혼도 하고, 누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그러는 사이에 만났던 곳에 이르렀지만 이대로 헤어지기는 너무 아쉽다고 했다. 잠시 차를 달려 근처 유적지로 갔다. 함께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유적이 말해주는 과거를 보며 우리의 그리운 과거를 다시 떠올리는데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어느 식당으로 가서 따뜻한 국밥으로 저녁을 먹으며 사는 게 아무리 바빠도 가끔씩 만나 마음 나누며 살자고 했다.

이제 헤어져야 한다. 미숙이와 희영이는 서울로 가고, 은자는 대구로 가야한다.

잘 가! 다음에 꼭 다시 만나!” 손을 몇 번씩이나 잡고 흔들다가 기약 없는 기약을 맺으며 차를 돌렸다. 돌아서는 차 뒤의 연통이 짙은 아쉬움을 연기로 뿜어냈다. 두어 시간 뒤에 모두들 집에 잘 도착했다며 전화를 했다. 오늘 참 기쁘고 고마웠다며,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튿날 희영이가 제 폰에 담은 사진과 함께 친구와 나를 만난 감회를 메일로 보내왔다. 메일을 읽는 순간 이들의 삶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은자도 미숙이도 직장 일하랴 가정 지키랴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그 어려움을 잘 이겨내어 왔기 때문에 오늘 같은 자기실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희영이도 그들에 못지않게 나름의 골몰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아이들 넷을 반듯하게 키우며 가정을 잘 건사해낸 일이 얼마나 크고도 보람된 일인가. 때로는 집안일만이 아닌 나름의 성취에 대한 소망도 없지 않았겠지만, 희영이가 해낸 일도 누구나 그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 같다.

저들에 대한 나의 가르침은 변변찮았을지라도, 저들과의 만남을 생각하면 참 흐뭇하다. 열심히 살아왔고, 성실히 살고 있는 모습들이 흐뭇하다. 그 번다한 삶의 와중에서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주니 이 또한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아직은 이들에게는 할 일이며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이 남아 있겠지만, 지금까지 잘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열심히 사는 오늘이 바로 보람된 과거가 되고 빛나는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마지막 남을 것이란 행복할 일밖에 없을 것 같다.(20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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