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제자가 찾아오다

이청산 2014. 11. 16. 10:51

제자가 찾아오다

 

윤 군이 식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찾아왔다. 명절이나 기념할 만한 날엔 늘 잊지 않고 마음을 보내오곤 했지만, 찾아와서 얼굴을 마주하기는 참 오랜만이다.

최근에 나를 찾아온 건 4년 전 내가 정년퇴임을 하는 날이었다. 뚜렷하게 이루어놓은 것도 없으면서 퇴임식을 무어 그리 들썩하게 할 거냐며 조용히 떠나려 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간곡한 권을 사양치 못해 아이들의 학년 종업식 날에 맞추어 조촐한 식전을 가지게 되었다.

그 때 윤 군은 광역 지자체에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정책기획단의 단장을 맡고 있었다. 윤 군이 이끌고 있는 조직은 지역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균형발전을 목표로 하는 지역 산업진흥을 위한 기획기구라고 했다. 바로 싱크 탱크(think tank)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산업진흥이라 하지만 그 속에서 해야 하고 해내어야 할 일이 오죽 크고 중할까.

나의 퇴임식 날을 안 윤 군은 몇몇 동창들과 함께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근무 시간을 어렵게 축내지 말라고 해도 기어이 달려왔다. 그리고 윤 군은 몇 사람의 하객과 더불어 퇴임을 축복하는 단상에 섰다.

30여 년 전 나와 사제의 인연을 맺어 수학하고, 진학하고, 유학하고, 결혼하고, 나아가 오늘날의 자기가 있기까지 모두가 정직과 성실을 제일의 덕목으로 가르쳐주던 나의 은덕이라고 송찬했다. 그를 위해 베풀어준 것도 없는 내가 그런 기림을 듣고 있자니 민망스럽기만 했다. 정직과 성실을 말하지 않는 스승이 어디 있겠는가.

실로 나는 윤 군을 위해 가르쳐주고 베풀어준 것이 별로 없었다. 내가 달리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할 틈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눈파는 법 없이 제 스스로 모든 일에 성실을 다하는 학생이었다. 다만, 윤 군이 환경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힘 돋우는 말을 해주고, 진로를 결정하는데 생각을 함께 모아 준 것 뿐이었다.

윤 군은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관()의 학비 지원으로 지역행정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과에 진학했다. 언제나 그렇듯 윤 군은 면학에 성실히 정진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까지 들어갔다. 윤 군의 향학열은 끝이 없었다.

박사과정 재학 중에 일본 문부성 장학생 시험에 합격하여 일본으로 가서 박사과정을 계속하게 되었다. 7년간이나 유학하는 사이에 간간히 귀국하여 나를 찾아 올 때면 학문적인 성취가 눈빛에서부터 역력히 드러나 보이는 듯했다.

드디어 어느 해 4, 윤 군은 박사 학위기와 사사(謝辭)에 내 이름을 얹은 논문을 들고 찾아왔다. 갖은 시련 이겨내고 얻는 성취라 생각하니 한없이 기쁘고도 고마웠다. 기쁨은 그것뿐만 아니었다. 같이 유학생활을 하며 인연을 맺은 중국 한인교포 여학생을 신부감으로 데려왔다. 학업에 매진하느라 결혼할 겨를도 갖지 못하다가 학업을 마치면서 혼약을 한 것이다.

내 자식이 이런 성취를 했다 한들 기쁨이 이보다 더 클까.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런데 윤 군은 나를 참 난감하게 했다. 주례를 서 달라는 것이다. 대학의 스승들이 많을 터인데도 그럴만한 경륜도 갖추지 못한 나에게 왜 그런 청을 하는가. 윤 군의 완강한 고집을 못 이겨 결국 내 생애 처음으로 주례대에 섰다.

그 때 나는 주례사에서 …… 두 지성의 결합으로 훌륭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물론, 두 사람이 이룩한 학문적인 성과를 이웃, 나라, 인류를 위해 이바지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 후 윤 군은 두 딸을 둔 가장이 되어 훌륭한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인 성취를 거듭하면서 사회와 나라의 발전을 위한 중책 수행에 매진하고 있고, 지명(知命)의 나이도 채 되기 전에 윤군의 결혼식을 주례했던 나는 많은 변화와 곡절 끝에 한 생애를 마감하면서 속사(俗事)를 뒤로 하고 궁벽한 한촌으로 우거하여 몇 해째 살고 있다.

뒷산의 찬란한 단풍이 고비를 넘어가던 만추의 어느 날, 윤 군은 부인과 중학생 두 딸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아이들이 벌써 이렇게 자랐구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온 식구 함께 엎드려 절을 했다. 누가 찾아온들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있을까. 윤 군은 나와 아내를 위해서는 물론 이웃을 위한 선물까지 준비해 왔다.

나를 더욱 고맙게 한 것은, 학창 때의 반짝이던 그 눈동자를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지적인 사회활동으로 자아실현을 해가고 있는 다정한 모습의 부인과 예쁘고 예절 바르게 잘 자라준 두 딸도 고마웠다. 윤 군의 성실한 생활 자세가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하고, 가족들을 이리 아름답고 반듯하게 만들어준 것 같았다.

윤 군도 우리 부부가 좋은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기쁘고 고맙다고 했다. 자기도 좋아하는 윤 군을 위해 아내가 딴은 마음 모아 준비한 상에 모두 둘러앉았다. 소찬으로 차린 상이지만 연신 맛있다고 하며, 나와 함께 했던 학창시절을 회억하고, 그간의 지내온 이력들을 풀어내며 감회에 젖어들었다.

먼 길을 달려왔는데 집에서만 있을 것이냐며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나섰다. 창연한 옛 성이며 아름다운 숲길이 있는 곳으로 갔다. 곱게 물든 단풍이 운치 있는 고성(古城)과 어울려 찬연한 풍경을 자아낸다. 윤 군의 딸들이 할아버지 선생님은 참 좋은 곳에 사신다.’며 감탄했다. 맞아, 할아버지 선생님이지! 아버지의 선생님이니까 할아버지 선생님이 맞네-.

손주들에게 말고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 조금은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할아버지란 말이 오늘은 참으로 정겹게 들린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할아버지가 되는 세월이 흘렀구나. 저 아이들 만하던 윤 군이 벌써 반평생을 넘어가며 보람된 일들을 이루어가고 있고, 그 속에서 저 아이들이 저리 듬직이 자라는 동안에,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루어 내었던가.

해내고 이루어놓은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 헛헛한 기운이 머릿속을 감돌기도 했지만, 그러나 내 지나온 삶이 그리 허무한 것 같지는 않다. 지난날을 그리고 기리며 이 먼 곳까지 찾아와 주는 윤 군 같은 제자가 있음에야 지나온 내 삶이 어찌 허무하다 하랴. 윤 군과 그의 권솔들을 다시 보는 순간 가슴속에 따뜻한 기운이 잉걸불처럼 피어났다.

해가 저물어 어디에 가서 맛난 걸 대접하고 싶다는 윤 군을 설득하여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다. 또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유학시절에 얽힌 사연이며, 간난을 겪어내고 살림을 일궈온 내력이며,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텃밭을 장만하여 틈틈이 여러 가지 작물들을 가꾸며 삶의 여유도 함께 가꾸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 들로 담소하는 사이에 밤이 소록소록 깊어갔다.

윤 군 식구들에게 하룻밤 유해 갈 것을 권했다. 윤 군은 오랜만에 나와 만난 정리로 밤을 함께 보내고 싶지만, 낯선 잠자리를 익숙해 하지 않는 딸들을 보아 일어서야겠다고 했다. 늦은 밤 먼 길을 떠나보내기가 서운하고 안타까웠지만, 가족을 아끼는 마음도 가상하여 더 만류하지 못했다.

뒷산의 봄꽃이며 앞 강둑의 벚꽃이 좋을 때 다시 한 번 오라며, 그 때 꼭 찾아뵙겠다며 서로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른다. 윤 군은 선생님, 사모님! 건강하셔야 합니다.”하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차창 밖으로 흔들던 윤 군의 손길이 어둠 속으로 잦아든 자리에 늦가을 찬바람이 스며왔지만, 아내와 나의 가슴속에는 불잉걸이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었다.

세상은 역시 살만하지?” 아내가 미소를 머금었다.(201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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