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세상에 외치는 소리

이청산 2014. 12. 12. 09:49

세상에 외치는 소리

 

바뀌는 달력장을 따라 겨울의 시작을 알리려는 듯 12월이 이틀째로 들던 날, 세찬 고추바람이 하늘을 맵싸하게 갈랐다. 차중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3시간여를 서둘러 달려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나서였다.

일상으로 스며드는 인문학을 지향하는 문화공간 ○○의 대표 김 박사가 반갑게 맞았다. 김 박사가 운영하는 문화공간이 장애인 문화예술 향수에 관한 국고지원 사업단체로 선정되어, 그 사업의 일환으로 정신장애인의 문화예술 역량 강화를 위한 문학콘서트를 개최한다고 했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정신의 장애를 순화하고,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보려한다는 것이다.

그 콘서트에 우리 낭송가협회가 초대를 받았다. 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문예작품을 공모하여 입상자를 시상하고, 수상자 중의 몇 사람을 콘서트에 참여하도록도 했다. 콘서트의 주제는 세상에 외치는 소리였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세상 사람들에 못지않은 예술적인 감수성을 소리치려하는 것 같았다.

극장에 들어섰을 때는 좀 이른 시각이라 관객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바빴다. 준비실로 가서 여장을 풀고 무대의상을 점검하고 마이크 상태를 살펴보았다. 여성 회원들은 얼굴이며 머리 모양에 신경을 모으면서도 각자 낭송할 시를 뇌어 보기에 분주했다.

관객들은 정신요양사회복귀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함께 하는 시민들이라고 했다. 출연 요청을 받고, 감정 조절과 사고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적절한 시의 선정이며 정감어린 낭송을 위해 애써왔다. 개막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 관객들이 서서히 입장하여, 막이 오를 무렵에는 400석 객석이 거의 다 찼다.

관객들의 박수와 함께 행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공모 작품 심사위원장이 힘든 삶을 굳건하게 이겨나가는 아름다운 정신력에 감동을 받았다는 심사평을 말하고, 이어 김 박사가 지난 시간, 가슴으로 길어 올린 삶의 무늬가 오늘의 따뜻한 시어로 태어난것을 축하하는 인사말을 했다. 모두 장애를 이겨나가는 의지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송이다. 몇 관계 인사의 축사에 이어 입상자를 시상하고, 정신장애인 자조 모임의 장애 극복을 위한 노력과 성과에 대한 발표를 끝으로 의식행사를 마치고, 드디어 문학콘서트의 막이 올랐다.

기타리스트인 회원의 기타 반주와 노래를 배경으로 회장님이 정두리 시인의 그대를 낭송하며 무대를 열었다. 잔잔한 가락으로 울려 퍼지는 기타 선율과 함께 회장님의 맑고도 따뜻한 목소리로 흐르는 시가 극장 안을 덮어나갈 때 객석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에 빠졌다. 시가 흐를 동안의 엄정한 정밀은 네가 깨끗한 얼굴로 내게로 되돌아오는 길/ 그대와 나는 내리 내리 사랑하는 일만 남겨두어야 합니다라며 끝맺는 애절하고도 간곡한 목소리에 이르러, 비로소 깊은 마취에서 풀려난 듯 박수소리가 해일처럼 터져 나왔다. 회원들은 잠시 걱정에 잠겼다. 무엇으로 감동을 더해갈 수 있을 것인가.

두 회원의 듀엣 낭송으로 이기철 시인의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가 포근하고 다감한 목소리로 이어지면서 콘서트의 열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아름다움 앞에서 누군들, 어떤 사람인들 감동에 젖지 않을 수 있으랴.

이어지는 순서 속에 공모전 입상자들도 간간이 등장하여 그들의 삶과 심경을 담은 시들을 낭송했다. 그들 나름의 그리운 사랑, 목마른 삶, 간곡한 희망을 애잔하고도 간절한 목소리로 외어 나갈 때마다, 관객들은 모두 자신의 심정인 듯 열렬한 함성과 박수로 뜨거운 호응을 모아갔다.

한 회원이 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로 시작되는 성찬경 시인의 보석밭을 낭송할 때는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그야말로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 같다. 그 눈동자로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회원들과 함께 나도 참여하는 윤송 순서다. 내가 직접 무대에서 받아 보는 관객의 눈길은 어떠할까. 정호승 시인의 시 중에서 사랑과 위안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다섯 편의 시를 골라,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이라는 한 주제로 묶은 것을 다섯 사람이 돌아가며 낭송한다. 한 회원이 먼저 꽃을 보려면의 한 연을 낭송하면서 등장하여 무대에 선다. 뒤이어 내가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로 시작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낭송하면서 무대로 걸어 나간다.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며 무대에 섰을 때, , 세상은 눈물겹도록 부셨다. 관객들의 표정이 어쩌면 저리 진지하고도 정겨울 수 있는가. 눈동자만 반짝일 뿐 미동도 하지 않는 저 몰입은 무대에 선 사람의 모습을 다 빨아들일 것만 같다. 다음 회원이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며 등장하고, 나는 관객들을 응시한다. 마치 정든 어느 이웃에 와 있는 것 같다. 참 편안하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벙글어진다. 앞자리에서 보고 있던 김 박사도 빙긋이 미소 짓고, 저 뒤 어느 여성 관객은 살며시 손을 흔든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하는 순간 눈앞에 무엇이 어린다. 햇살 받은 이슬방울 같다. 무대는 흘러가고 다섯이 모두 호흡을 모아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그대여 잠들지 말아라/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을 합송하며 끝내는 순간 객석에서 탄성과 박수소리가 분출하는 용암처럼 터져 나왔다. 우리의 낭송 시간보다 더 길게 이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가 관객들의 심정을 너무 젖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입상자가 나의 희망은 나다/ 나의 생각에 맞게 나를 완성시키려 한다.’라며 자작시 희망을 힘차게 낭독하는 순서에 이어, 우렁차고 박력 있는 템포의 음악과 함께 시 퍼포먼스 독도 만세를 부르자가 어우러진다. 어느 종교의식의 신성한 차림 같은 의상의 세 여인이 등장하여, 현란한 몸짓과 함께 독도 사랑을 외치는 소리에 관객들은 모두들 신명에 찬 듯 음악의 흐름을 따라 손뼉을 치기도 하고 환호를 터뜨리기도 한다. 심신의 때를 모두 털어버리는 듯했다. 퍼포먼스가 끝나자마자 폭발음 같은 박수소리는 장내를 휘덮었다.

세상살이가 험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정일근 시인의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을 자비로운 어머니 모습을 한 여회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낭송하면서 장내는 다시 아늑한 평화에 젖으며 콘서트는 막바지를 향해갔다.

마지막 순서로 다시 회장님과 기타리스트 회원이 함께 등장하여 기타 노래 사랑으로를 고운 선율로 연주하고 노래하며 분위기를 정리해 나가는데, 노래가 끝나자마자 앙코르가 터져 나와 바다의 고장인 부산을 그리며 바다에 누워를 신나는 리듬과 함께 열창해 나갔다.

출연자 모두가 등장하여 환호하는 관객들과 함께 숨결과 손뼉을 모았다. 관객들은 잊고 있었다. 박수를 칠 일만 생각할 뿐 일어설 일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다 끝나고 나서도 떠나지 않는 관객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손을 흔들었다. 어떤 관객들은 무대 앞으로 뛰쳐나와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손들이 뜨거웠다. 모두 이런 무대, 이런 장면들을 오래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 같았다. 관객들이 빠져나간 무대 위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아직도 박수소리며 그 열기는 그대로 객석을 끓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을 누가 장애인이라 하는가. 어느 비장애인이 시를, 낭송소리를 이토록 깊은 가슴으로 안을 수 있는가. 관객이 우리에게 도취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객에게 도취한 것 같았다. 감동을 안겨준 것이 아니라, 큰 감동을 안은 것 같았다.

그들에게서, 그들의 도취에서 얻은 우리의 감동은 겨울을 알리는 오늘의 세찬 추위를 흔적도 없이 녹여버렸다. 가슴과 얼굴에는 선홍빛 열기가 화끈거린다.

귀로의 여장을 꾸려 극장을 나설 때, 김 박사가 외쳤다.

오늘 우리 관객들 보셨지요? 내년에도 꼭 와주셔야 합니다. 이 보다 더 좋은 힐링이 어디 있습니까?”(2014.12.7.)

 

'청우헌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유의 산을 오른다  (0) 2015.01.11
신발의 여정  (0) 2014.12.24
가을 산의 물음  (0) 2014.11.24
제자가 찾아오다  (0) 2014.11.16
부부목  (0) 2014.11.10